업무 중심의 ‘허슬 문화’에 지친 직장인들…기업들이 주목하는 이유

일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공감 커지는 ‘조용히 그만두기(quiet quitting)’
지친 모습의 한 남자가 지하철 역에 앉아 있다. 그리고 그가 말한다. “당신의 일이 당신의 삶은 아니다(Your work is NOT your life).”

7월 25일 글로벌 영상 플랫폼인 틱톡에 ‘조용히 그만두기(on quiet quitting)’라는 제목의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며 뮤지션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자이드 칸(@zaidleppelin)이라는 20대의 남성이 올린 이 영상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댓글에는 “나도 지금 ‘조용히 그만두기’를 실행 중”이라거나 “ ‘조용한 그만두기’에 공감한다”는 내용이 넘치고 있다. 영상이 올라온 지 한달여 만에 500만 회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유튜브 등에서 이 영상을 언급하거나 해설을 붙이는 인플루언서들이 늘어났고 월스트리트저널·워싱턴포스트·CNN방송 등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그만두기’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장인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받으며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과 삶의 경계를 명확히 하다

‘조용히 그만두기’라는 용어만 들으면 실제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는 ‘직장 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업무의 개념’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정확하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야근은 일상이 되고 퇴근 후가 휴가 기간에도 업무를 껴안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은 정해져 있는데 해야 할 업무는 끝도 없이 늘어나기만 한다. 다시 말해 조용히 그만두기는 이와 같은 ‘일 중심’, ‘회사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직장 업무와의 거리 두기에 대한 선언인 셈이다.

따라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통해 보여지는 ‘조용히 그만두기’는 몇 가지 행동으로 나타난다. ‘내 업무 이외의 일에 대한 요구는 거절하기’, ‘퇴근 후에는 업무와 관련한 전화나 e메일을 받지 않기’, ‘칼퇴하기’, ‘직장 업무에 너무 마음 쏟지 않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기’, ‘승진을 위해 업무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기’ 등이다. 다시 말해 일과 자신의 삶을 분리해 그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조용히 그만두기’의 핵심인 셈이다.

여기 까지만 들으면 조용히 그만두기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다. 최근 몇 년 새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던 ‘대사직(great resignation)’과도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중국을 휩쓸고 있는 ‘탕핑(lying flat)’ 열풍을 떠올리게 만든다. ‘열심히 일할 필요 없이 최선을 다해 눕는 게 현명하다’는 뜻의 탕핑은 지난해 중국 10대 인터넷 용어에 꼽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요즘 들어 ‘대사직’, ‘탕핑’, ‘조용히 그만두기’와 같은 말들이 주목받고 있을까. 세계 최대 직장 평가 플랫폼인 글래스도어의 질 코튼 커리어 트렌드 전문가는 이를 ‘번아웃 증후군’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인류의 일상생활을 바꿔 놓고 있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전만 해도 회사는 직원들에게 최대의 시간과 노력을 업무에 쏟아부을 것을 요구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열심히 일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그래야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사직이나 조용히 그만두기 열풍은 이처럼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무한한 열정과 노동력을 강조하는 ‘허슬 문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팬데믹을 지나며 원격근무·재택근무가 보편화되고 ‘일과 생활’의 경계선이 모호해진 것 또한 기존의 ‘허슬 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영국 노팅엄대에서 조직 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마리아 코도위츠 교수는 “팬데믹 이전에도 번아웃 증후군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은 적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팬데믹을 계기로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일 중심의 삶’에 회의를 갖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같은 경향은 특히 MZ세대라고 일컬어지는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딜로이트 글로벌이 최근 발표한 ‘2022 Z세대 및 밀레니얼 세대’ 설문 조사에 따르면 MZ세대는 자신들이 근무할 회사를 선택하는 데 ‘일과 삶의 균형(Z세대 32%, 밀레니얼 39%)’을 최우선 조건으로 여긴다. Z세대의 46%와 밀레니얼 세대의 45%가 자신들이 업무 환경으로 인해 ‘번 아웃’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고 Z세대의 44%와 밀레니얼 세대의 43%가 업무 압박으로 인해 최근 직장을 떠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당신의 업무 생산성이 당신의 가치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Your worth is not defined by your productive output)’는 문구가 MZ세대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대안은 ‘시끄럽게 버티기’?

‘조용히 그만두기’를 한때의 유행처럼 여기기보다 기업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직장과 거리를 두는 현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지금의 ‘조용히 그만두기’ 열풍은 젊은 직장인들의 주류가 된 것이다. 이들의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기업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인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업무 문화를 그대로 고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딜로이트 글로벌에 따르면 Z세대의 75%와 밀레니얼 세대의 76%가 하이브리드 근무 환경 혹은 원격 근무 환경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미래 우수한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기업들이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조사 결과인 셈이다.

이와 함께 최근 경기 침체 우려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기업 생산성에 크게 관심을 두는 분위기다. ‘조용히 그만두기’ 열풍은 직원들의 생산성과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리서치 전문 업체인 갤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직장인들의 자신의 직업에 대한 불만족은 4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몰입도가 낮은 노동자는 세계 경제에서 7조8000억 달러의 생산성 손실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직원들이 원하는 노동 환경으로 전환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조용히 그만두기’ 열풍이 거세지면서 이와 관련한 다양한 논쟁도 불붙고 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조용히 그만두기’는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업무에서 한 발짝 물러남으로써 여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조용히 그만두기’가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미디어그룹 회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용히 그만두기’는 직장 내 평판을 훼손하고 이는 동료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용어 자체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아님에도 ‘그만두기’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보니 실제 의미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직장과 삶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이 조용히 그만두기의 핵심이라면 ‘그만둔다’는 수동적이면서도 공격적인 표현은 오히려 ‘조용히 그만두는’ 직장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조용히 그만두기’가 아니라 ‘시끄럽게 버티기(loudly persisting)’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질 코튼 글래스도어 커리어 트렌드 전문가는 “팬데믹을 거치며 기업들 또한 직원들의 번아웃 증후군 등에 관심이 늘고 있고 기업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높아지고 있다”며 “아무도 모르게 직장과 거리를 두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상황을 상사 등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