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초과 노동자, 2년 만근 노동자와 연차 일수 같다” 대법원 첫 판단
[법알못 판례 읽기]
근로기준법에 따라 최초 1년에는 11일의 연차 휴가를 줘야 하고 1년이 지난 다음 날 일하면 15일의 연차 휴가를 쓸 권리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
1년을 초과한 기간제 노동자나 2년 만기 근로를 하고 퇴직한 노동자나 연차 휴가일은 원칙적으로 동일하다는 기준이 세워졌다는 평가다.
“연차 쓸 권리는 전년 근로의 대가”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22년 9월 7일 경비 인력 파견 업체 A 사가 B 산업진흥재단을 상대로 “연차 수당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사와 B 재단은 2017년 12월 경비 용역 계약을 했다. 양측의 계약은 6개월씩 두 차례 연장돼 2019년 말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연차 수당을 놓고 갈등이 빚어졌다. 경비원마다 고용 기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4명은 계약 기간인 2년을 끝까지 채웠지만 나머지 2명은 중도에 그만뒀다. 한 명은 2019년 1년간 일했고 다른 한 명은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 말까지 1년 3개월간 근무했다. 이들 6명은 모두 2019년 말 퇴직했다.
A 사는 노동자 6명에게 일단 2018~2019년 연차 수당을 지급한 뒤 B 재단에 보전을 요구했지만 B 재단은 “2019년 12월 31일 용역 계약이 종료돼 2019년 연차 수당은 줄 의무가 없다”며 일부만 지급했다. 이에 반발한 A 사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적 분쟁이 본격화했다.
이번 소송을 관통하는 가장 큰 쟁점은 1년 초과 2년 이하 기간 일한 노동자에게는 최대 며칠까지 연차 휴가를 제공할 수 있느냐였다. 근로기준법 60조 1항에 따르면 사용자는 1년간 80% 이상 출근한 노동자에게 15일의 연차 휴가를 줘야 한다.
같은 법 60조 2항은 근로 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 1년 동안 80% 미만으로 출근한 노동자에게도 1개월 개근 시 1일씩 계산해 총 11일의 유급 휴가를 줘야 한다고 규정한다.
A 사는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은 B 재단 손을 들어줬다. A 사가 이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이번 사건은 대법원의 심리를 받게 됐다. 대법원은 근로 기간 2년을 모두 채운 경비원 4명은 2020년 이후엔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2019년 연차 수당은 받을 수 없다고 본 2심 판단이 맞다고 봤다. 다만 1년 3개월간 일했던 경비원이 쓸 수 있는 연차 휴가는 11일이라고 본 원심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1년 초과 2년 이하 기간 동안 일한 노동자의 경우 최초 1년간 근로 제공에 대해 11일의 연차 휴가가 발생하고 최초 1년 근로를 마친 다음 날 연차 휴가 15일을 쓸 권리를 갖는다”며 “1년 3개월간 근무한 경비원이 쓸 수 있는 연차 휴가는 총 26일”이라고 판단했다. 연차 휴가를 쓸 권리는 휴가를 써야 하는 연도가 아니라 그 전년도 동안 일한 데 대한 대가라고 본 것이다.
용역 업체들, 도급비 인상 요구 줄 잇나
대법원은 과거 1년 기간제 계약을 하고 일한 노동자의 연차 휴가 권리에 대한 판결을 내릴 때도 이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대법원은 2021년 10월 1년 기간제 노동자는 최대 11일의 연차 휴가를 쓸 수 있다고 판결했다. 2년 차 때 받는 유급 휴가 15일은 최초 1년간 80% 이상 출근했던 노동자가 그다음 해에도 일할 것이란 전제로 부여된다는 이유에서다.
산업계에선 이번 판결 이후 하도급 업체들이 용역비 인상에 나설지 주목하고 있다. 하청 용역 업체들은 그동안 원청에 연간 도급비를 청구할 때 15일 치 연차 휴가비를 포함해 왔다. 법적으로는 최초 1년간 근로에 대해 부여되는 연차 휴가는 최대 11일이지만 15일을 적용하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 판례를 적용하면 노동자가 도급 계약을 갱신한 뒤 얼마 안 돼 그만두는 경우에도 지금보다 더 많은 연차 휴가비를 지급해야 한다. 예를 들어 1년간 일하고 도급 계약을 갱신했는데 2년 차 때는 1개월만 일하다가 그만둬도 최초 1년간 근로에 대한 11일 치 연차 휴가비와 2년 차 때 15일 치 연차 휴가비를 모두 줘야 한다.
용역 업체들은 벌써부터 연차 휴가비 증가를 반영해 도급비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주요 기업들의 인사 관리자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도급비 인상 가능성에 대비해 어떻게 연차 휴가 사용을 촉진하는지 등에 대한 문의가 늘고 있다.
일부 원청 사이에선 “연차 사용을 독려하면 수당을 안 줘도 되는데 용역 업체들이 이번 판결 내용을 핑계 삼아 도급비 인상 목소리를 높이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한 유통 업체 인사 관리자는 “도급 계약 갱신 시점이 다가오는 연말에 용역 업체들이 도급비를 올려 달라고 할 것 같다”며 “원청들 중에선 1년 이하 용역 계약을 한 번 한 뒤 계약 기간 종료 후 다른 용역 업체를 택하는 곳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1년 계약직 연차 11일”…고용부 해석 뒤집었던 대법원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다루면서 2021년 “1년 기간제 노동자가 쓸 수 있는 최대 연차 휴가는 11일”이라고 규정한 판결을 주요 판단 근거로 삼았다. 이 판결은 당시 고용노동부의 해석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산업계와 노동부의 관심이 컸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이동원)은 2021년 10월 14일 노인 요양 복지 시설 운영자 A 씨가 대한민국과 이 시설에서 근무했던 요양 보호사 B 씨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 배상 소송에서 A 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
B 씨는 A 씨가 운영하는 요양원에서 2017년 8월 1일부터 2018년 7월 31일까지 정확히 1년 동안 기간제 요양 보호사로 근무했다. B 씨가 요양원에서 일하던 2017년 11월 28일 연차 휴가 관련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1년 미만 노동자라도 1개월 개근하면 1일씩 적용해 11일까지 연차 휴가를 쓸 수 있게 됐다. 그 이전엔 1년 차 노동자는 별도 연차 휴가가 없고 다음 해에 발생하는 15일의 연차 휴가를 당겨 써야 했다.
고용부는 당시 근로기준법 개정 내용을 두고 “1년 계약직 노동자에게도 2년 차와 마찬가지로 총 26일의 연차 휴가를 쓸 권리가 주어진다”고 해석했다. B 씨는 이 해석을 근거로 A 씨에게 ‘미사용 연차 휴가 수당’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사용한 15일 연차 휴가를 제외하고 11일 치 연차 휴가에 대한 수당 71만원을 달라는 내용이다.
A 씨는 일단 B 씨에게 수당을 지급했지만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B 씨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B 씨에겐 “71만원을 돌려달라”는 부당 이득 반환 청구를, 국가를 상대로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잘못 해석했다”며 불법 행위에 따른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A 씨는 “근로감독관이 형사 처분하겠다고 겁박해 어쩔 수 없이 B 씨에게 수당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1심에선 패소했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면서 승기를 잡았다. 대법원에서도 2심 판단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승소를 확정지었다. 대법원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에서는 (아무리 장기 근속을 해도) 1년 최대 휴가 일수를 25일로 제한하고 있다”며 “B 씨의 주장대로라면 1년 기간제 노동자에게 26일의 휴가가 발생하는데, 이는 장기 근속자보다 1년 기간제 노동자를 더 우대하는 결과가 돼 형평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어 “2017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한 것은 1년 차 노동자에게도 11일의 유급 휴가를 주려는 의도에서였다”며 “이를 근거로 ‘1년만’ 일한 노동자에게 15일의 연차 휴가까지 중첩 지급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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