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인터뷰
“중국이 G2로 고속 성장할 때 신기술 개발 게을리해 역전 허용”

[스페셜 리포트] 메이드 인 차이나의 안방 공습, 우리가 몰랐던 중국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주요 약력 : 중국 칭화대 경영학 석사. 중국 푸단대 경영학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현).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현). 사진=서범세 기자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주요 약력 : 중국 칭화대 경영학 석사. 중국 푸단대 경영학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현).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현). 사진=서범세 기자
중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만들면 팔리던’ 그 시장이 아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0.5% 수준이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점유율이 1%대로 추락했다. 제품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나가던 K-뷰티의 성장세도 꺾였다. 한국이 점점 중국 시장에서 돈 벌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30년간 ‘수출 강국 코리아’를 가능하게 했던 대중 무역 수지도 4개월 연속 적자 행진이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맞서 추진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은 역설적이게도 대중 의존도를 높였고 한국은 ‘제2 요소수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맺은 30년간 양국 관계도 달라졌고 대중 무역의 양상도 달라졌다.

‘짝퉁’, ‘저품질’ 제품을 만들던 ‘세계의 공장’은 이제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을 위협하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우위가 역전됐다는 말도 나온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패권 전쟁을 치를 만큼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30년 동안 한국이 놓친 것은 뭘까. ‘중국통’인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에게 중국의 위협에 맞설 한국의 대응 방법과 전략을 들어봤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코로나19가 중국의 4차 산업혁명(4IR)을 10년이나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사진=서범세 기자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코로나19가 중국의 4차 산업혁명(4IR)을 10년이나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사진=서범세 기자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 무역 적자가 4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중 무역 적자의 첫째 의미는 공급망의 복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첨단 산업의 핵심 소재로 쓰이는 희토류, 리튬 이온 배터리의 원자재 대중 의존도가 각각 40%, 52%, 93%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대중국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이 무역 적자를 만든 주범이죠. 반도체가 만든 무역 흑자를 배터리·무선통신·컴퓨터가 깎아 먹었어요.

둘째로는 한국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를 들 수 있습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이미 2021년부터 대중 무역이 적자 상태였죠. 중국에서는 반도체를 제외한 한국 전통 제조업의 퇴출이 이미 추세화되고 있습니다. 대중 무역 적자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지, 굳어질지는 반도체에 달려 있어요. 중국의 반도체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반도체 가격이 반등하면 다시 흑자 전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이 G2 반열에 올라설 정도로 급성장한 30년 동안 한국이 놓친 것은 무엇입니까.

“선발자 이익에 탐닉하다가 신기술 개발을 게을리했습니다. 한국은 1992년 수교 이후 대중 무역에서 7088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내며 같은 기간 미국의 무역 흑자인 3064억 달러의 2배가 넘는 돈을 벌었어요.

2002년 한국의 대중 수출 비율이 대미 수출 비율을 넘어섰지만 2002년부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세계 평균을 밑돌았습니다. 한국은 중국에서 돈은 벌었지만 기술을 잃었죠. 한국은 30년간 대중 관계에서 뼈를 주고 살을 얻는 우를 범했어요.”

-중진국 반열에 오른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요.

“거대 소비 국가에 걸맞은 전략으로 전환해야 해요. 중국은 지금 제조 국가가 아닌 소비 국가입니다. GDP에서 소비의 기여도가 65%나 돼요. 1인당 소득 1만2000달러지만 상위 10%의 소득은 미국의 평균보다 높아요. 중국은 전 세계에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가 32%, 명품의 35%가 팔리는 세계 최대의 럭셔리 시장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통 제조업은 ‘탈중국’하고 소비·서비스업은 서둘러 ‘진중국’ 해야 합니다. 경쟁력이 떨어진 한국의 전통 산업은 빨리 중국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경쟁력 있는 중국 기업에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요. 소비재 산업은 빨리 중국에 들어가지 않으면 시장을 장악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어느 정도입니까.

“한국의 대중 기술 경쟁력은 반도체와 사물인터넷(IoT) 정도를 빼고는 중국보다 앞서 있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한국이 자랑했던 ICT는 이미 2017년부터 중국에 역전당했어요. 중국의 5세대 이동통신(5G) 통신 장비 세계 석권은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중국은 현재 양자통신 분야에서 미국보다 기술이 앞서 있어요. 중국은 독자 개발한 세계 첫 양자통신 위성인 묵자(墨子·Micius)호를 쏘아 올려 상용 테스트도 할 정도입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한경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다윗(한국)이 골리앗(중국)을 이기는 전략을 세우고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서범세 기자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한경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다윗(한국)이 골리앗(중국)을 이기는 전략을 세우고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서범세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중국 경제의 디지털 전환을 견인했다는 말도 나옵니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19 사태로 3년간 전 세계가 고통받았지만 역설적으로 중국의 4차 산업혁명(4IR)을 10년이나 앞당긴 것으로 판단됩니다. 원격 진료, 온라인 강의, 온라인 비즈니스, 쇼트 비디오, 메타버스는 코로나19 사태가 만든 신문명입니다.

전 세계에서 사회 통제와 코로나19 통제를 가장 강력하게 추진한 중국은 아이러니지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BCDR, 즉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Cloud), 드론(Dron), 로봇(Robot)을 도시·사회 봉쇄를 핑계로 완벽하게 테스트해 본 나라예요. 감염 우려를 내세워 모든 일상 용품을 온라인 구매로 전환하면서 드론 배송과 감시 시스템을 운영했고 감염자 색출과 방역에 드론·로봇을 활용했죠.

원격 진료와 업무를 통해 클라우드 서비스도 보편화했습니다. 미래 산업의 핵심인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에서도 중국의 전기차는 세계 시장의 53%를 차지하고 있고 배터리도 세계 1위입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중국 플랫폼의 힘은 더 강력해졌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엄청난 빅데이터와 지식재산권(IP)은 중국을 4차 산업혁명의 선진국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아요.”

-미·중 간 공급망 재편 문제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도체 공급망 재편은 아이러니하지만 한국이 어부지리로 얻을 수 있는 수입니다. 미·중의 보복을 과도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미국은 첨단 반도체 생산을 하지 못하고 중국은 반도체 기술이 없죠.

미·중이 모두 한국에 유혹의 손짓을 보내는 기간은 적어도 3~5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 기간에 한국은 최대한 이익을 챙기고 미·중이 따라올 수 없도록 기술 격차를 더 벌리는 데 주력하면 됩니다. 미·중 모두 한국의 기술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에 위협할 수는 있어도 보복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미래 30년 한·중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까.

“지난 30년은 산업의 수직적 계열 관계 속에서 한국이 협력자와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미래 30년은 4차 산업혁명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쟁자로 바뀔 수밖에 없어요. 한국은 첨단 기술이 없으면 버림받고 있으면 대접받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국가의 번영과 평화는 구걸로 지킬 수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세계의 판도가 바뀌는 시대예요. 다윗(한국)이 골리앗(중국)을 이기는 전략을 세우고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국의 결핍과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공략해야 합니다.”

-중국의 전방위 위협에 대해 한국은 어떤 대응책을 준비해야 할까요.

“3차 산업혁명에서는 한국은 중국의 시각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선생님’이자 중국에 하청을 주는 ‘사장님’이었지만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4차 산업혁명에서는 반대의 처지가 될 수 있어요. 거대한 빅데이터와 플랫폼을 가진 중국이 한국을 하청 국가로 전락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되는 3가지만 골라 중국을 넘어서는 기술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영리한 토끼는 은신처로 굴을 세 개 파 놓는다(교토삼굴)’는 말처럼 한국은 반도체 이외에 중국이 갖지 못한 첨단 기술 분야를 선점해야 해요.

예를 들면 바이오와 클린테크 산업입니다. 중국이 꼭 필요하지만 아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분야이기 때문이에요. 한국은 반도체 하나만 들고 4차 산업혁명을 맞기에는 너무 약합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