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약화하며 실적 부진하자 M&A·모델 변화 등 시도

 아모레퍼시픽이 창립 77주년을 맞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사진=최수진 기자)
아모레퍼시픽이 창립 77주년을 맞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사진=최수진 기자)
올해 들어 아모레퍼시픽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럭셔리 브랜드이자 대표작인 설화수에 ‘아이돌 가수’를 모델로 발탁하고 해외에서 인수·합병(M&A)을 하는 등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아모레퍼시픽의 변화는 창립 77주년을 맞아 ‘비즈니스를 재정의하겠다’고 선언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발언과 맥이 닿아 있다.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고객에 두고 사업 전반을 돌아보겠다는 것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수익성이 떨어지자 내놓은 해결책이다.

경쟁사인 LG생활건강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영업이익(연결 기준)을 뛰어넘었고 포트폴리오를 안정화하기 위해 생활용품·식음료 사업에서도 적극적으로 M&A를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 지난해부터 기업 평판 조사까지 LG생활건강에 밀리자 아모레퍼시픽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비즈니스 재정의’ 이유 있다?…고꾸라진 실적 회복 위해=위기는 실적에서부터 나타난다. 아모레퍼시픽 실적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의 영업이익은 2013년(3699억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귀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조8632억원, 3434억원이다. 전년과 비교하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개선됐지만 2019년 실적에 미치지 못한다. 2019년 아모레퍼시픽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조5801억원, 4278억원이었다. 지난해 매출은 2019년 대비 12.8% 감소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9.7% 줄었다.

아모레퍼시픽의 영업이익은 2016년 8481억원을 기록한 이후 지속 하락세다. 이후 연도별 영업이익은 2017년 5964억원, 2018년 4820억원, 2019년 4278억원, 2020년 1430억원, 2021년 3434억원 등이다.

심지어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385억원으로, 전년 동기(2675억원)의 절반 수준에 그치면서 올해 연간 기준 실적도 부정적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LG생활건강은 2019년 실적을 회복한 상태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조915억원, 1조2896억원이다. 2019년 매출은 7조6854억원, 영업이익은 1조1764억원인데,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도 이 기록을 뛰어넘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까지 17년 연속 성장을 이어 왔다.

아모레퍼시픽은 실적뿐만 아니라 기업 평판까지 LG생활건강에 밀리고 있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발표한 ‘8월 화장품 상장 기업 브랜드 평판’ 조사 결과 LG생활건강이 1위를 차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위다. 조사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활동 빅데이터를 참여 가치, 소통 가치, 소셜 가치, 시장 가치, 재무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

연구소는 매월 평판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데 올해 아모레퍼시픽은 1월과 4월을 제외한 모든 달에서 LG생활건강에 밀려 2위에 그쳤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총 14번의 조사가 진행됐는데 아모레퍼시픽이 1위를 기록한 횟수는 3번(2021년 7월, 2022년 1·4월)에 불과한 반면 LG생활건강의 1위 횟수는 11번이다. 브랜드 이미지 제고, 해외 사업 경쟁력 강화 속도전이 같은 상황에 아모레퍼시픽의 변화된 전략은 ‘브랜드 모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8월 자사 대표 브랜드인 설화수의 브랜드 앰배서더(홍보대사)로 여성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 씨를 발탁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정진한 로제
씨의 진취적인 면모가 설화수의 선구자적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설화수 모델로 아이돌 그룹 멤버를 기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화수는 아모레퍼시픽의 대표적인 ‘노(NO) 모델’ 브랜드였다. 1997년 론칭한 이후 약 20년 가까이 모델 없이 사업을 전개했다. 모델 없이 제품력만으로 고급 화장품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제품력을 앞세워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8년 처음으로 배우 송혜교 씨를 모델로 발탁했고 약 4년간 같은 모델을 유지해 왔다. 로제 씨는 아모레퍼시픽이 설화수에 기용한 첫 20대 모델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럭셔리 브랜드에 젊은 아이돌을 기용했다는 것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미·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라며 “마케팅이 성공한다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소비자를 신규 고객으로 확보할 좋은 기회다. 성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파격적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올 들어 M&A와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9월 초 미국의 뷰티 브랜드 ‘타타 하퍼’를 확보하기 위해 타타 하퍼 운영사 ‘타타스 내추럴 알케미’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아모레퍼시픽은 LG생활건강에 비해 M&A를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않았다. 최근 10년간 진행한 주요 투자로는 구딸 파리(2011년), 밀크 메이크업(2019년), 래셔널(2020년), 코스알엑스(2021년), 타타하퍼(2022년) 등 5개가 전부다. 50% 이상 지분을 인수하는 ‘다수 지분’ 투자는 구딸 파리와 타타 하퍼가 전부다.

반면 같은 기간 LG생활건강이 진행한 M&A는 24건에 달한다. 더크렘샵, 존슨앤드존슨 도미니카 치실공장, 보인카, 리치·유씨몰, 피지오겔, 아본, 루치펠로코리아, 에바메루, CNP코스메틱스, 제니스(에프엠지), 긴자스테파니, 에바라이프 등이다.

아모레퍼시픽은 M&A 속도를 높여 북미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에 인수한 타타 하퍼는 네타포르테·컬트 뷰티 등 온라인 채널과 세포라·니만마커스 등 800개 이상의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돼 있어 이미 북미에서 인지도가 높은 상태다. 아모레퍼시픽은 타타 하퍼와 함께 강도 높은 마케팅 활동을 진행하고 공동 연구를 통한 제품 경쟁력 강화와 신규 카테고리 확장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 시장 의존도도 낮출 계획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매출 가운데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달한다. 과도하게 높은 중국 매출은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 중국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직후인 2017년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일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라네즈를 일본 시장에 내놓으며 영향력을 제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해외 사업 매출을 안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아모레퍼시픽, 창립 77주년 맞아 ‘변화’ 선언서경배 회장은 근본적 변화를 주문했다. 서 회장은 최근 창립 77주년 기념사를 통해 ‘고객과 세상, 우리 모두를 진화시키는 아름다움의 미래를 열어가자’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는 “현재는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고객’에게 두고 비즈니스를 재정의(redefine)하고 재조정(rebalance)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은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에 국내외 고객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며 “고객의 일상 전반으로 시야를 확장하고 디지털과 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고객 가까이에 자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객에게 선택 받기 위해 비즈니스를 ‘재정의’하는 등 기존 사업 방식에서 벗어나 변해야 한다는 것이 서 회장 기념사의 핵심이다.

서 회장은 올 들어 ‘새로움’과 ‘도전’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 1월 발표한 신년사의 내용도 이번 창립 기념사와 같은 내용이다.

당시 서 회장은 “전통적 뷰티의 영역을 넘어 일상 전반을 포괄하는 ‘라이프 뷰티’로 업을 확장하자”며 “뉴 뷰티의 여정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올해 강한 브랜드, 디지털 대전환, 사업 체질 혁신 등 세 가지 전략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브랜드 가치를 명확히 하고 성장을 견인할 엔진 상품의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며 “MZ세대 고객과의 유대감을 형성해 강한 팬덤을 구축하고 비즈니스 전반의 비효율을 점검하고 개선해 수익적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서 회장은 속도를 주문했다. “그동안의 관성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자”고 강조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