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과 전쟁 나선 미국…’강달러’에 선진국도 흔들, 경기 침체 가능성 98%

[스페셜 리포트]
선진국도 위험지대…최악의 경기 침체 온다 [먹구름 낀 글로벌 경제①]
글로벌 경제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40여 년 만의 고물가에 미국은 강력한 긴축 정책에 돌입했고 이는 강달러를 부추기며 전 세계 금융 시장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경고음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의 금융 정보 업체 네드데이비스는 글로벌 경기가 침체에 빠질 확률이 98.1%에 이른다고 예측했다. 2008년 금융 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높은 확률이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9월 29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불안한 세계 경제는 2008년 8월 금융 위기 직전과 유사하다”며 “지진 발생 직전에 나타나는 여러 진동을 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헛발질에 혼돈 휩싸인 세계 경제
9월 26일 영국 파운드화의 미 달러화 대비 환율이 한때 파운드당 1.03달러까지 떨어졌다. 이전 최저치는 1985년 2월 26일 1.05달러였다. 파운드화의 가치가 역대 최저로 떨어진 것이다. 올 초만 해도 1.3달러 수준을 유지하던 파운드화의 가치는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1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파운드화의 급락은 영국의 국가 부채 상환이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다고 시장이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무엇보다 파운드화는 준(準)기축 통화다. 달러화와 유로화에 이어 국제 결제 비율이 높다. ‘영국발(發) 금융 위기’에 대한 경고가 터져 나온 배경이다.

‘파운드화 쇼크’에 시장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먼저 미국 증시가 흔들렸다. 9월 27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일보다 0.21% 떨어진 3647.29까지 내려갔다. 다우존스지수도 0.43% 하락하며 29134.99를 기록, 연저점을 경신했다. 아시아 증시 또한 맥을 추지 못했다. 9월 28일 홍콩과 대만 증시는 각각 3.41%, 2.61%씩 떨어졌고 한국 코스피지수는 2169.29로 마감됐다. 코스피지수가 2200선 아래로 무너진 것은 코로나19 사태에서 회복되고 있던 2020년 7월 20일(2198.20) 이후 2년 2개월 만이다.
선진국도 위험지대…최악의 경기 침체 온다 [먹구름 낀 글로벌 경제①]
전 세계 금융 시장을 한순간에 긴장시킨 ‘파운드화 쇼크’는 9월 21일 영국 보수당의 엘리자베스 트러스 신임 총리와 쿼지 콰텡 재무장관이 내놓은 ‘성장 계획 2022(The Growth Plan 2022)’라는 경기 부양 정책이 도화선이 됐다.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2016년(2.3%)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은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 투표가 있던 해다. 이후 영국은 유럽 지역의 금융 허브로서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영국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에너지난이 심각해졌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0%에 달했다.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도 영향을 미쳤다. 여왕의 서거는 전 세계에 경제적·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영국의 지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트러스 총리로서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그 결과물이 경제 성장 촉진 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영국의 경제성장률 2.5%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재정 지출 확대와 대규모 감세다. 먼저 향후 2년간 영국 가계에서 지불해야 하는 에너지 가격이 연간 2500파운드(약 400만원)가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각 가계당 400파운드(약 64만원)의 에너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포함해 막대한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450억 파운드(약 69조원) 규모의 감세 정책을 내놓았다. 50년 만의 최대 규모 감세 정책이다. 의료보험 등 대규모 복지 정책 철폐도 포함됐다.
‘급한 불’ 껐지만…유럽은 이미 ‘위기 현재 진행형’
문제는 여기에서 벌어졌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긴축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 또한 9월 22일 통화 정책 회의에서 정책 금리를 1.75%에서 2.25%로 50bp(1bp=0.01%포인트) 인상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높여 시장에서 돈을 거둬들이고 있는데 영국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시장에 돈을 푸는’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정책에 ‘어디에서 이와 같은 막대한 재정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빠져 있었다. 영국 정부가 엄청난 금액의 국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시장은 내다봤다. 통상 영국과 같은 선진국의 국채는 ‘안전 자산’이지만 파운드화의 가치가 폭락한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위험 요인이 높은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가 기대하는 것만큼 경기 부양 정책이 효과적이지 않고 세수가 걷히지 않는다면 재정 적자가 확대될 우려가 컸다. 이미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20년 기준 102.6%에 육박하고 있었다.

결국 영국의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영국의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8월 1일 기준 연 2.3% 수준이었지만 9월 28일 연 5.1%를 넘어서기도 했다. 5년 만기 국채 금리도 연 4.5%를 넘겼다. ‘유럽의 병자’로 일컬어지는 그리스(4%)와 이탈리아(4%)보다 높다.

국채 금리가 급등하며 시중 주택 담보 대출 금리도 급등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영국 은행들은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주택 담보 대출을 사실상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혼란이 가중되면서 국제통화기금(IMF)까지 경고에 나섰다. 영국의 대규모 감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며 정책 철회를 요구한 것이다. IMF가 선진국의 경제 정책 변경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9월 29일 영국 중앙은행이 긴급 처방에 들어갔다. 파운드화 급락에 대처하기 위해 하루 50억 파운드(약 7조8000억원)씩 13일간 장기 국채를 매입할 것을 밝혔다. 최대 650억 파운드(약 101조원) 규모다.

영국 정부도 한 발 물러났다. 10월 2일 부자 감세안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미봉책이기는 하지만 영국은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하며 시장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10월 5일 기준 파운드화의 미 달러화 대비 환율은 1.14달러까지 상승했고 영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236%를 기록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엘리자베스 트러스 신임 총리와 쿼지 콰텡 재무장관. 사진=연합뉴스
영국 보수당의 엘리자베스 트러스 신임 총리와 쿼지 콰텡 재무장관.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위험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영국 정부가 감세를 철회하기는 했지만 이번 경기 부양책과 관련한 정책안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내 심각해지는 에너지난 등을 고려할 때 ‘에너지 지원금’ 등의 정책은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트러스 총리는 이번 정책안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유럽은 이미 경제 위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기관차 역할을 하던 독일 또한 안전하지 않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2020년 기준 독일의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는 28.3%에 달한다. 실제 독일은 영국만큼이나 유럽 내에서도 에너지 지원 정책에 적극적인 국가다. 독일의 전기 가격은 지난 7월까지 1년간 600% 이상 급등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물론 기업들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독일 생산자 물가 인플레이션은 지난 8월 45.8%까지 치솟았다. 1949년 기록이 시작된 후 가장 급격한 상승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심상치 않다. 지난 9월 기준 10%를 돌파했다. 이 역시 사상 최고 기록이다. 분기별 GDP 성장률도 떨어졌다. 지난 1분기 0.8%에서 2분기에는 0.1%를 기록했다.

상황이 심각하기는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정부는 최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자 올해 초 에너지 가격의 상승을 막는 데 발벗고 나섰다. 지난 1월 국영 에너지 공급 업체인 EDF에 1년 동안 전기 가격의 인상을 4%로 제한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84억 유로(약 11조원)의 자금을 투자했다. 그럼에도 최근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2023년까지 에너지 가격 상한제를 지속할 것을 지난 9월 공식화했다. 총 450억 유로(약 63조원)를 들여 가계와 기업을 지원하고 가스와 전기 가격의 상승률을 15%로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프랑스 정부의 ‘에너지 가격 상한제’와 같은 정책의 영향으로 프랑스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는 지난 9월 기준 5.6%를 기록하고 있다. 영국·독일 등과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에너지 가격의 상승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자금을 쏟아부어 ‘에너지 가격 상한제’와 같은 정책을 지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프랑스는 부채 위험 또한 크다. 특히 프랑스의 부채 비율은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상승해 왔는데 지난 6월 기준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113.3% 수준이다.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67.1%, 기업 부채 비율은 167.3%로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도 높은 수준이다.

특히 미국의 고강도 긴축 정책에 따라 ‘강달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비용 부담까지 급증하면서 유럽 내 국가들의 재정 건전성과 관련한 취약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실제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이 위험도가 높은 대표적인 국가들로 꼽힌다. 이탈리아 정부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2022년 1분기 기준 148%에 달하는 데다 에너지 비용을 보전하는 데도 영국만큼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신임 총리 또한 영국처럼 대규모 감세 및 재정 자극 확대를 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영국처럼 이탈리아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 유로화 약세 등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중앙은행이 긴급 처방에 나서며 무사히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내 국가들 가운데 언제든 이번과 같은 위기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vs 모두, 강달러의 악몽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한 곳은 유럽 국가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에 제2의 금융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도 쏟아지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이 높은 엔화와 위안화의 가치가 심각한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5일 기준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44.47엔이다. 연초 대비 20% 이상 엔화 가치가 하락했다. 이에 일본 중앙은행은 9월 22일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한 엔화 매입에 나섰다고 밝혔다. 정부와 일본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은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도 심상치 않다.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불리며 미국에 필적할 만한 경쟁 상대로 압축 성장을 이뤄 낸 중국은 최근 들어 급격히 성장 동력이 꺾이고 있다. 장기간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공장 가동이 중단된 데다 지난해 부동산 재벌 헝다그룹의 부도 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 붕괴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10월 4일 “중국 부동산 시장 위기가 속도는 느리지만 금융 위기를 촉발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급격한 위안화의 가치 하락은 자본 이탈을 가속화하며 중국 경제의 골칫거리로 작용할 수 있다. 위안·달러 환율 역시 지난 9월 28일 달러당 7.20위안을 돌파하기도 했다. 14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의 위기 역시 핵심은 ‘강달러’다. 유로와 엔 등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일컫는 ‘달러 인덱스’는 10월 5일 기준 110.88을 기록했다. 1년 전인 지난해 10월 5일 달러 인덱스는 93.97이었다.

세계은행 출신의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는 현재의 ‘달러 초강세’ 현상을 4가지 충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2020년 이후 팬데믹과 이로 인해 억제됐던 수요의 폭발과 공급망의 붕괴 그리고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인플레이션이 심화된 상황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은 제때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한 채 뒤늦게 금리 인상에 드라이브를 걸며 ‘강달러’를 부추기고 있다. 세계 경제가 위기를 겪을 때 달러는 모든 자산의 피난처다. 미국이 금리를 높일수록 전 세계의 달러는 점점 더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시장에서 달러의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선진국도 위험지대…최악의 경기 침체 온다 [먹구름 낀 글로벌 경제①]
강달러 현상은 신흥국에 특히 치명적이다. 신흥국의 자금 이탈을 부추기는 강력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위기와 1990년대 중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 위기도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강달러 현상’이 지속된 결과였다. 하지만 강달러 현상에 타격을 받는 것은 신흥국만이 아니다. 지금의 강달러 현상은 영국·일본과 같은 선진국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흥국과 달리 선진국의 신용 위험은 그 파급력이 다르다”며 “신흥국의 위기는 그 위기를 겪는 나라에는 고통이 크지만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선진국의 신용 위험은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 금융 시장은 세계화의 영향으로 이미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전 세계 금융 시장의 연결을 주도한 선진국(주요 통화국) 금융 시장이 타격을 받으면 전 세계에 뿌려져 있는 유동성 흐름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전 세계 증시를 한순간 출렁이게 만든 이번 영국 사태는 바로 그 위험성을 보여 준 대표적인 예다.
블랙록 “당분간 주식 투자 안 해”
“달러는 우리의 돈이지만, 당신들의 문제다(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that’s your problem).”

1971년 존 코널리 당시 미 재무장관이 주요 10개국(G10) 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당시 ‘인플레이션을 수출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던 미국의 응수였다. 로이터는 9월 26일 현재 전 세계 금융 시장의 분위기를 이 한 줄의 말로 요약했다.

실제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9월 이례적으로 3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올 들어서만 5회째 금리 인상이다. 파월 의장은 “물가를 확실히 잡기 전까지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하고 있다. 현재 그의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2%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Fed는 1990년대 앨런 그린스펀 스타일의 성공을 바라보고 있다. 당시 미국은 경기 침체 없이 금리를 3% 인상했다. 하지만 당시는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경제 호황이 바탕이 된 것을 감안한다면 복합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과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지적이다.
제롬 파월 미 Fed 의장. 사진=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Fed 의장. 사진=연합뉴스
시장에서는 이미 금리 인상 이후 ‘연착륙(경기가 짧은 시간 동안 완만하게 하강하다가 다시 상승)’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 분위기다. 모간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경제에 아무런 타격 없이 물가 상승률 2% 수준으로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연착륙 가능성은 없다”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은 9월 28일 보고서를 통해 “Fed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 침체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주식 시장이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고 현재 블랙록은 주식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증시가 지금보다 더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과거에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된 적이 있었다. 1980년대 인플레이션이 미국 경제를 강타하자 폴 볼커 당시 Fed 의장은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했다. 전 세계가 ‘강달러’에 신음했고 1985년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선진 5개국(G5)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만나 달러화의 약세를 유도한다는 데 합의했다. ‘플라자 합의’다.

문제는 과거와 달리 국제적인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라는 데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까지 더해지며 세계화의 균열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지속적인 ‘강달러’를 부추기는 미국을 향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파월 의장의 최근 발언은 ‘최악의 상황’에 대해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 세계 국가들의 경제 상황은 잘 알고 있습니다. … 각 국가마다 기준금리 수준이 매우 다른 상황에서 전 세계적인 협력을 논의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