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월 4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프레스 컨퍼런스를 가졌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월 4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프레스 컨퍼런스를 가졌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4일 취임 2년을 맞았다.

지난 2년 글로벌 완성차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속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 산업 질서가 자국 중심주의로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도 전기차와 자율 주행차를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다.

엔진의 시대에는 유럽·미국·일본 차를 추격하기 바빴지만 미래 모빌리티 경쟁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다. 정의선 회장의 취임 2년을 숫자로 살펴봤다.
◆3위
판매량은 단순히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의 결과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329만9000대의 차량을 팔았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3위다. 일본 도요타그룹과 독일 폭스바겐그룹 다음이다. 2010년 이후 12년간 판매량 5위에 머물렀던 현대차그룹 순위가 정의선 회장 취임 2년 만에 2계단 뛰어올랐다.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는 상반기 합산 매출 106조5000억원, 영업이익 8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성과의 핵심에는 품질이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현대차의 품질은 글로벌 톱 자동차 회사들과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구성과 디자인 모두 글로벌 톱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올라왔다. 미국 소비자들이 신차를 살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제이디파워의 신차 품질 조사(IQS)와 기술 경험 지수 조사(TXI)에서 현대차와 기아는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20만 대
브랜드 파워도 커졌다. 고급차는 자동차 브랜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다. 현대차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는 고급 브랜드 경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첫 국산차가 됐다. 출범 첫해인 2015년 384대가 판매됐던 제네시스는 2020년 10만 대가 팔렸다. 2021년 20만 대가 팔렸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10만 대 넘게 판매됐다.
◆18조원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전환한다. 단순 기계에서 ‘움직이는 전자제품’으로 자동차의 변신을 본격 선언한 것이다.

2023년부터 출시하는 모든 차종에 무선(OTA)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30년까지 총 18조원을 투입한다. 커넥티비티와 자율주행 등 신사업 관련 기술 개발, 스타트업·연구기관 대상 전략 지분투자, 빅데이터 센터 구축 등에 투자한다.

새로운 모빌리티산업을 주도하기 위해 ‘글로벌 소프트웨어센터’도 만든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용 디바이스와 솔루션을 개발하는 조직이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60%
현대차·기아의 수출 물량 비중이 최근 2년간 빠르게 커졌다. 현대차의 올해 8월까지 수출 물량 비율은 60%(약 64만 대)에 육박했다. 2020년 1~8월 49.3%, 2021년 같은 기간에는 54.4%였다. 기아는 올해 8월까지 수출 비중이 62.4%로 집계됐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올해 8월 역대 최대인 13만5526대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도요타·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의 판매량이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40대
임원의 나이가 젊어졌다. 정의선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단행한 2020년 12월 인사에선 40대 젊은 임원이 이전보다 더 늘었고 여성 임원도 5명이 새로 선임됐다. 1년 뒤 세대교체는 더 가속화됐다. 신규 임원 승진자는 역대 최다인 203명이었다. 그중 40대가 3분의 1에 달했다.

정의선 회장은 외부에서 인재를 데려오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삼성그룹 공채 출신이다. 그룹 이노베이션 담당인 지영조 사장은 벨연구소 연구원, 맥킨지‧액센츄어 등 컨설턴트, 삼성전자 등을 거쳤다. 미래항공모빌리티(AAM)본부를 책임지는 신재원 사장은 미 항공우주국(NASA) 출신이다. 벤틀리·도요타·아우디 등 완성차 업체 출신 외부 인사들도 적극 등용하며 글로벌 시장을 정비했다.

내부적으로는 성과주의를 앞세우며 전통적 현대차 경영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무급이었던 이상엽 현대차 디자인담당의 부사장 승진이다. 이 부사장은 현대차 디자인센터장으로 제네시스의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5번
정몽구 명예회장은 카리스마와 용인술로 현대차의 성공을 이끌었다. 반면 정의선 회장은 아버지 시대와 달리 발로 뛰며 소통하는 리더십을 보인다. 올해 라스베이거스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2’에 직접 참석해 로보틱스 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현대차 인도네시아 공장 준공 등 굵직한 행사는 물론 제네시스 챔피언십(골프 대회) 행사 등에도 항상 얼굴을 비친다. 2020년부터 2년간 주요 행사에 참여한 횟수는 총 5번이다.

임직원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경청의 리더십으로 유명한 정의선 회장은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에도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6월 오은영 박사를 초빙하는 강연을 진행했는데 이때도 정의선 회장은 직원들과 나란히 앉아 고민을 듣고 오 박사가 제시한 해법을 경청했다.

같은 재계 3세 경영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비교하면 정의선 회장을 대표하는 경영 철학이나 CEO로서의 개인적 정체성(PI)이 자리 잡힌 모습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올해 1월 열린 CES 2022에서 로보틱스 비전 발표를 위해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위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올해 1월 열린 CES 2022에서 로보틱스 비전 발표를 위해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위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