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을 위한 '신체 지분구조 독해법'

연재를 시작하며 [최정봉의 '몸의 정치경제학']
몸의 정치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최근까지 이어진 장애와 퀴어에 대한 논쟁도 그렇거니와 배꼽티·크롭톱·레깅스·탈코르셋 운동 등 여성의 신체와 의상을 둘러싼 시각 충돌이 꽤나 지속돼 왔다.

타투·야동·대마·임신 중절 수술처럼 찬과 반, 규제와 자율이 팽팽히 맞서는 이슈들도 즐비하다. 그래서인지 신체 정치(body politics)나 생명 정치(biopolitics) 같은 현대 철학의 주요 개념도 각종 매체에 오르내리고 이를 이론화한 미셀 푸코, 조르지오 아감벤 그리고 페미니즘과 연동시킨 주디스 버틀러의 고난도 레퍼런스도 빈번히 언급된다.

반면 몸의 정치학에 비해 몸의 경제학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해 보인다. 신체와 관련된 경제 담론은 노동 혹은 소비 영역으로 치환되는 경향이 짙다. 또 몸이라는 육중한 개념 대신 먹거리나 건강·의료·운동 등 경쾌하고 미세화된 범주로 분할돼 다뤄져 왔다. 이렇게 경량화된 서사들은 대체로 시장의 상황과 주요 트렌드에 초점이 제한되므로 몸이라는 총체적 개념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인식되고 규정되는지에 대한 거시적 관점을 결여하기 십상이다.

이 연재는 몸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담론·실천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조형되고 변동하는지를 정치 경제학적 틀로 읽어 보려는 시도다. 정치 경제학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딱딱한 학술적 논의는 피하려고 한다. 굳이 이 용어를 쓰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회 현상에서 정치와 경제가 분리돼 작동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정치가 힘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면 경제는 돈의 흐름에 대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돈과 무관한 힘의 작용이 어디 있으며 힘과 무관한 돈의 흐름이 어디 있겠는가. 생로병사, 의식주, 커뮤니케이션의 기초 단위인 몸에 힘과 돈이 집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와 경제가 합성돼 몸에 관한 특정한 관점·태도·행동으로 구조화되는 것을 몸의 문화라고 칭하자. 이렇게 정치·경제·문화를 관통하는 통합적 고찰이 아니고서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몸이 지니는 비중·지위·역할에 대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몸의 정치 경제학은 몸의 사회적 구성과 변동에 대한 관찰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사회적 개념으로서의 몸은 생물학적 유기체로서의 신체와 구별된다. 사실 인간에게 사회적 요소가 기생하지 않는 순수 신체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 갓 태어난 아기도, 뱃속의 태아까지도,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인 연애와 사랑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인간에게 몸은 숙명적으로 사회적 구성물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복잡해질수록 몸의 사회적 농도는 짙어진다.
연재를 시작하며 [최정봉의 '몸의 정치경제학']
편의상 이번 연재에서는 몸의 가치, 몸을 바라보는 시선과 담론, 몸의 관리 및 통제 방식 변화를 열 개의 소주제로 나눠 다룬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겪은 정치·경제·문화적 변동의 궤적과 몸의 상관관계를 톺아 볼 예정이다.

선정된 열 개의 소주제는 크게 두 개의 테마로 나눠진다. 첫째 테마는 트랜스 휴머니즘(포스트 휴머니즘과 결부된)으로, 그 아래 네 개의 소주제들이 있다.

‘트랜스 휴머니즘의 도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몸이란 과연 무엇을 지칭하는지 질문한다. 또 역으로 인간 신체와 결합, 신체에 침투, 신체를 변화시킨 테크놀로지는 인간이란 존재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포스트 휴먼 가족의 멤버십’은 최근 한국 사회의 가족 체계에 실질적으로(de-facto) 편입된 비인간 종(種·species)으로서의 펫(반려동물)에 주목한다. 엄밀히 말해 법적 테두리 안에 있지도, 분류학적으로 종(種)적 지위를 가지지 않는 펫이 인간과 맺고 있는 밀도 깊은 관계의 의미를 포스트 휴머니즘의 렌즈를 통해 점검해 본다.

‘강남 조물주와 트랜스 휴먼들’에서는 성형 수술에서 출발해 생명공학·유전공학에 걸친 인간에 의한 ‘인간 만들기’ 이슈를 다룬다. 한국 사회에 보편 수용된 성형의 정치 경제학과 이에 반해 윤리적 공회전만 거듭하는 생명공학을 트랜스 휴머니즘이라는 틀거리로 재점검해 본다.

‘짝퉁 경제와 증강 신체 정치’는 확장적 몸의 대표적 사례로 의상과 액세서리를 살펴본다. 명품과 짝퉁을 몸에 입히고 소지하는 경제 문화적 행위를 권위의 현시와 평등의 방어라는 정치적 욕구 간의 공방으로 재해석한다.

둘째 테마는 몸의 통치권이다. 총 여섯 개의 소주제들이 있는데 모두 하나의 주제 의식으로 연결돼 있다.

신체의 보유자는 개인이지만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몸에는 다양한 힘들이 상이한 형태로 개입하고 차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힘’은 공식적 강제권을 지닌 기관(행정 부처·법·경찰·병원·학교 등)과 비공식적 압력을 행사하는 기관 또는 집단(언론·SNS·가족·또래집단·셀럽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에 더해 우리 몸에 대한 지분 행사는 비물질적이고 비인격적 힘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정보와 상식, 광고와 유행, 철학과 가치관, 관습과 윤리, 통계와 이념, 기술과 자본, 과학과 미신 등이 그것이다.

몸은 이 세 종류의 힘들이 우리 신체에 얹혀지고 뒤엉켜 구축된 사회적 텍스트다. 따라서 몸의 일상적 경영 관리권은 개인에게 있겠지만 그 개인의 자유 의지란 특정 범주 안에서만 제한적 효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난 30여 개월간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겪으며 몸에 대한 사회적 강제력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다. 소주제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웰빙(well-being) vs 비잉웰(being-well)’은 금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웰빙과 힐링 열풍을 되짚어 본다. 삶과 몸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의 계기가 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그 후로 파생된 몸 문화의 변동을 추적하며 그것의 상업적 편향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줬고 무엇을 감췄는지 비잉웰이라는 역개념을 통해 반추해 본다.

‘100세 시대 괴담과 불안의 산업화’는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대한 준비가 토끼몰이식 반공 캠페인과 닮았다는 불편함에서 시작한다. 공적 히스테리를 자극하는 정부와 언론의 행태가 전 국민에게 건강 협심증이라고 불릴 법한 새로운 질병을 안겨주는 동시에 비이성적 불안을 밑거름으로 성장하는 보험과 건강보조식품 같은 걱정 산업군의 무분별한 팽창에 기여했다는 진단을 내린다.

‘식탁 위 점령군, 건강보조식품’은 과도한 건강 집착과 날로 커져만 가는 건강보조식품 시장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본다. 또 영양소별, 제조 방법별, 계층 연령별 차별성을 강조한 트렌드 분화와 변동을 추적해 단순 건강보조식품이 어떻게 단숨에 범국민적 필수 소비재로 등극했는지를 풀어본다.

‘신체 관리 : 정량화의 딜레마’는 우리 몸 상태와 활동이 전면적으로 수치화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신체질량지수에서부터 걸음 수까지, 수면의 깊이와 호흡 주기에서 일별 소비 칼로리까지 모든 것이 정량화되고 이 데이터들을 기준으로 자기 자신의 몸과 행동을 평가한다. 이렇게 모인 신체 데이터는 절대 과학이 되고 종교가 돼 우리 자신을 부정하고 처벌하며 혐오하게 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딜레마를 지적한다.

‘몸에 대한 국가 통치권’에서는 개인 신체에 가해진 국가의 검열과 통치권의 역사를 점검한다.
그리고 타투·마약·포르노그래피·임신 중절 수술 등을 둘러싼 신체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는 쪽과 공적 이익을 위해 국가 권력의 제약과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상반된 논리를 법리적 접근이 아닌 정치적·문화적 관점에서 검토한다.

‘비지네스(busy-ness), 혹은 속도의 정치’는 바쁘다는 것 그리고 빠르다는 것의 사회적 함의를 생각하는 코너다. 바쁜 것과 빠른 것의 등식 관계를 의심하는 한편 바쁨이 어떻게 몸으로 연출되고 행위적으로 구체화되는지 그리고 사실로서의 바쁨이 아니라 강박적 의식으로서의 바쁨으로 인해 발생되는 경쟁과 배제 그리고 이기의 문화 행태들이 무엇인지 짚어 본다.

물론 소주제들은 순서와 내용이 조정될 수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