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 시장에서 콘텐츠 ‘양’으로 승부…상장 후 신사업 투자 확대

KT의 지니뮤직·밀리의서재가 협업한 오디오 드라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제작 발표회. / 자료 = KT
KT의 지니뮤직·밀리의서재가 협업한 오디오 드라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제작 발표회. / 자료 = KT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서재’가 11월 코스닥시장 상장에 도전한다. 2016년 설립된 이 회사는 약 12만 권의 독서 콘텐츠를 보유한 한국 최대 독서 플랫폼이다. 전자책 분야에 구독 경제를 도입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전자책 외에도 오디오북과 챗북, 오디오 드라마 등 새로운 형태의 독서 콘텐츠를 시도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 새로운 독서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평가다.

밀리의서재는 전자책 플랫폼 중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단시간에 브랜드 인지도 1위를 달성했다. 업계 1위인 리디가 2009년 사업을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출발이 7년이나 늦었다. 교보문고와 예스24처럼 온·오프라인 서점을 갖추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대표 전자책 플랫폼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격적인 콘텐츠 확대 정책과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
이 회사는 사업 초기 경쟁사보다 압도적인 양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1500곳의 출판사와 제휴했고 매월 2000~3000권의 신규 계약을 하고 있다. 3개월 이내 출간되는 신규 도서의 약 40%, 서점가 베스트셀러의 70% 이상이 밀리의서재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출판사와 동반 성장하며 윈-윈하는 전략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밀리의서재는 출판사와 포괄 계약하고 선급 형태의 전자책 대여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전자책 출간으로 종이책 판매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동반 성장하는 사업 모델이다. 회사 관계자는 “밀리의서재를 통해 얻은 이익이 일반 전자책 단권 판매와 종이책 판매 수익을 넘긴 출판사도 있다”고 말했다. 5년 전만 해도 공급 계약을 꺼렸던 출판사들이 이제는 출간과 동시에 전자책 발매를 준비할 정도로 전자책 플랫폼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
◆TV 광고 등 공격적 마케팅 펼쳐
밀리의서재는 콘텐츠 확보와 동시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서비스 초반부터 대대적인 TV 광고를 펼쳤다. 2019년 배우 이병헌·변요한 씨를 기용한 TV CF를 송출했고 지난해엔 배우 조정석 씨를 모델로 중독성 강한 CM송을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독서와 무제한 친해지리’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독서 캠페인을 통해 독서 문화 정착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광고 효과에 따라 밀리의서재는 입소문을 탔고 회원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 누적 회원 수는 약 550만 명이다. 구독 회원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45분이다.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유사한 수준이다. 재구독률은 80% 이상으로 집계됐다.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는 “넷플릭스를 이용한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없지만 밀리의서재를 구독한다고 SNS에 올리는 사람들은 많다”며 “OTT 플랫폼과 달리 독서는 자랑할 만한 취미라는 점에서 자동으로 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자책 플랫폼으로 입지를 구축한 밀리의서재는 넷플릭스처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었다.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한 뒤 반응이 좋으면 종이책을 제작하는 것이다. 최근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도서가 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책은 밀리의서재에서 전자책으로 나온 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종이책으로 출간됐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 인기를 끈 ‘불편한 편의점’도 플랫폼에서 먼저 입소문을 탄 후 종이책이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밀리의서재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좌우할 정도로 출판업계에서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밀리의서재는 최근 3년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설립 3년째인 2019년 전년 대비 585% 성장한 112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이후 2020년 180억원, 2021년 289억원으로 전년 대비 60% 이상 매출이 증가했다. 올 상반기 매출은 210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매출이 증가하는 만큼 손실도 늘었다. 2019년과 2020년 각각 109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고 지난해는 145억원으로 손실 규모가 확대됐다. 광고 선전비가 급격히 늘어난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광고 선전비로 127억원을 지출했다. 그해 매출의 절반에 달하는 금액을 광고비로 쓴 셈이다. 올해부터 광고비를 줄이고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올 3분기 매출은 124억원, 영업이익은 19억원을 거뒀다. 올 상반기 영업익 10억원을 올린 데 이어 흑자를 이어 갔다.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335억원, 영업이익은 30억원으로 지난해 실적을 넘어섰다.

지난해 9월 KT그룹에 편입된 이후 시너지 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밀리의서재는 KT그룹 산하 지니뮤직에 인수된 이후 KT그룹의 미디어 콘텐츠 회사들과 협업하고 있다. 올 2월에는 KT와 서비스 공급 계약을 하고 요금제와 구독권을 결합한 상품을 선보였고 KT 고객이 유입되면서 회원 수가 급증했다. 지난해 말 누적 회원 수는 418만 명이었지만 올 8월 기준 547만 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구독자 수는 39만 명에서 91만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구독자가 직접 참여하는 콘텐츠를 늘린 것도 회원 수를 늘리는 데 주효했다. 이 회사는 2017년 10월 월정액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채팅형 독서 콘텐츠 챗북, 밀리 라이브 등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하고 있다. 2019년 10월에는 ‘밀리 오리지널 종이책 정기구독’ 상품을 출시하고 회원 참여형 코너를 신설했다. 단순히 책을 읽기만 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구독자가 직접 참여하는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지난해 1월 출시한 ‘내가 만든 오디오북’ 서비스도 참신하다는 반응을 끌어냈다. 사용자 참여형 오디오북으로 구독자가 독서 콘텐츠에 특화된 인공지능(AI) 보이스를 통해 직접 오디오북을 만들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독서와 관련된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밀리의서재는 신규 사업 아이템으로 출간 플랫폼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기성 작가나 아마추어 작가들이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연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고객에게 인기가 많은 작품은 출판사와 연계해 종이책으로 발매할 수 있다. 책에 국한되지 않고 독자와 소통을 통해 전자책으로 만들 수도 있다. 회사 측은 스타 작가를 발굴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아카데미 형태의 지원 시스템도 준비하고 있다. 출간 플랫폼을 통해 확보한 작품은 2차 콘텐츠로 제작할 수 있다.

이 밖에 장르물과 키즈 콘텐츠 등 서비스 영역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밀리의서재는 현재 로맨스와 무협 등 가볍게 읽을 만한 장르물을 제공하는 수준이지만 유명 작가의 작품은 제공하지 않고 있다. 웹 소설 시장에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사업자들이 포진해 있어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회사 측은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기보다 다른 사업자와 제휴하거나 이미 확보한 로맨스 작가를 활용해 단계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IPO로 도약 발판…기업 가치 2000억원 목표
후발 주자였지만 한국의 대표 전자책 플랫폼으로…밀리의서재 성공 비결[전예진의 마켓 인사이트]
밀리의서재는 11월 기업공개(IPO)를 통해 200만 주를 공모한다. 희망 공모가 기준 430억~500억원 규모다. 이 중 약 100억원은 HB인베스트먼트·스틱·나이스투자파트너스 등 재무적 투자자가 가져간다. 나머지 330억~400억원은 운영 자금과 사업 다각화에 사용할 예정이다. 상장에 성공한다면 재무 안정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상장 주간사 회사인 미래에셋증권은 밀리의서재의 기업 가치를 2761억원으로 평가했다. 기업 가치 평가 시 비교 기업은 키다리스튜디오·디앤씨미디어·미스터블루 등 3곳을 선정했다. 밀리의서재가 내년 당기순익 130억원을 올린다고 가정하고 비교 기업의 평균 주가수익률(PER) 27.98배를 적용해 기업 가치를 산출했다. 여기에 21.65~32.62%를 할인해 공모가를 산정했다. 희망 공모가는 2만1500~2만5000원으로, 공모가 기준 시가 총액은 1771억~2059억원이다.

투자은행(IB)업계는 밀리의서재가 기업 가치 2000억원을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쏘카 등 최근 상장한 플랫폼 기업들의 주가가 부진하다는 점이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