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닷컴, 블록파이 등 연쇄 파산 현실화…암호화폐 투자한 VC 등 금융계 영향도 촉각

[비즈니스 포커스]
무너져 내린 FTX…크립토 멜트다운 돌입?
지난 5월 루나 사태에 이어 11월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인 FTX 사태까지 벌어지며 암호화폐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FTX 사태 이전에도 암호화폐 시장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중이었다. 투자자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낙관론마저 사라지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후폭풍이다. FTX 사태 이후 유동성 위기가 더욱 심화되면서 암호화폐업계 내 연쇄 파산 우려가 높아지는 중이다. 단순히 암호화폐 시장을 넘어 전통적 금융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암호화폐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파산인 만큼 연쇄 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경고다. ‘코인판 리먼 사태’로 불리는 FTX 사태의 후폭풍을 짚어 봤다.
커지는 FTX발 연쇄 파산 우려
“암호화폐는 위험성이 높은 자산이다(Crypto is high risk).”

11월 5일 전 세계 1위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에 올린 글의 내용이다. 당시 암호화폐 시장은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인 FTX에 대한 의혹으로 들썩이던 때였다. 미국의 코인데스크가 11월 2일 FTX 거래소의 계열사인 알라메다리서치의 대차대조표를 살펴본 결과 FTX가 발행한 코인인 FTT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알라메다리서치의 자산 총 146억 달러 가운데 약 58억 달러가 FTT였다. 자본의 약 40%가 FTX가 자체 발행한 FTT로 채워진 상황에서 FTT의 가격이 하락할 경우를 고려한다면 사실상 알라메다리서치의 자산에는 큰 구멍이 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11월 4일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이 암호화폐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더티버블미디어를 통해 제기된다. FTX는 그동안 자전 거래(cross trading) 방식을 통해 FTT의 자산 가치를 부풀려 왔다는 점이다. 자전 거래는 특정 종목을 동일 수량, 동일 가격에 동시 매수·매도하는 거래다. 자전 거래로 FTT의 거래량을 부풀리며 가격 또한 높여 온 것이다.

자오 CEO는 11월 7일 다시 한 번 트윗을 날린다. “바이낸스가 보유하고 있는 FTT를 청산할 것이다. 이는 ‘루나’ 사태로부터 배운 위험 관리 전략일 뿐이다.” 자오 CEO의 이 트윗 직후 FTX에서 돈을 빼는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1월 9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FTX는 바이낸스에 구조 요청을 보냈고 바이낸스는 이를 수락하며 FTX 인수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11월 10일 자오 CEO는 트윗을 통해 “실사 결과 FTX를 인수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지한다. FTX가 알라메다리서치를 지원하는데 고객들의 자금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며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법무부(DOJ)·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유동성 위기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였다.

혼란은 더욱 커졌고 FTX에서 돈을 빼려는 뱅크런은 더욱 거세졌다. 72시간 동안 무려 60억 달러(약 8조2000여억원)의 돈이 빠져나갔다. FTX는 결국 11월 11일 미국 델라웨어 주 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 11)에 따른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이날 FTX의 샘 뱅크먼 프리드 최고경영자(CEO)는 트윗을 통해 “미안하다. 내가 모든 것을 망쳤다”는 트윗으로 공지를 전했다.

열흘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벌어진 급박한 전개를 지켜본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암호화폐 시장의 대장주라고 할 수 있는 비트코인 가격은 11월 7일까지만 해도 2만 달러(약 2900만원)대에서 거래됐다. 하지만 FTX 사태에 충격을 받으며 11월 9일 1만5000달러(약 2000만원) 선으로 급락했다. 11월 16일 현재 약 1만600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 오재영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주춤하던 비트코인 가격이 11월 들어 2만 달러를 돌파하면서 단기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상황에서 FTX 사태로 인한 실망과 충격이 더욱 컸다”고 설명했다.

이미 암호화폐업계의 연쇄 파산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5월 루나 사태 이후 암호화폐업계는 미국 암호화폐 대출 업체 셀시우스와 암호화폐 헤지펀드 스리애로즈캐피털(3AC), 암호화폐 중개·대출 업체 보이저디지털의 잇단 파산으로 한 차례 큰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인 FTX의 파산은 위태롭던 시장에 결정타가 됐다.

당장 세계 15위 거래소인 크립토닷컴의 파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며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 FTX의 파산 신청 직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가격이 일제히 폭락하며 크립토닷컴이 발행한 크로노스의 가격 역시 20% 정도 급락했다. 이 와중에 11월 13일 크립토닷컴 계좌에서 이더리움 32만 개가 또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인 게이트아이오 거래소로 송금된 사실이 알려졌다. 거래소의 기반 자산인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한 상황에서 고객 자금의 인출에 대비하는 ‘준비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해 암호화폐 거래소 간 부족한 자금을 ‘돌려 막기’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거세지고 있다.

이틀 뒤인 11월 15일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암호화폐 대출 업체인 블록파이가 직원 감축과 함께 파산 보호 신청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블록파이는 지난 6월 암호화폐 가격의 폭락 이후 FTX에서 4억 달러(약 5314억원)를 대출받은 바 있다. FTX 사태가 불거진 뒤 블로그 게시물을 통해 FTX에 ‘상당한 노출(Significant exposure)’이 있었다고 밝혔다. FTX 관련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고객들에게 블록파이 디지털 지갑이나 계정에 입금하지 말 것을 요청한 상태였다. FTX 사태가 블록파이를 비롯해 FTX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다른 업체에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무너져 내린 FTX…크립토 멜트다운 돌입?
FTX 후폭풍에 컴투스 휘청, 왜?
FTX 사태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는 곳은 암호화폐뿐만이 아니다. 세계 3위 거래소였던 FTX의 파산은 그 규모가 큰 만큼 실물 금융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FTX의 기업 가치는 한때 320억 달러(약 42조4320억원)에 달했다.

FTX 측의 파산 신청서에 따르면 부채 규모는 100억∼500억 달러(약 13조2000억∼66조2000억원)로 추산된다. 암호화폐업계 최대 규모다. 당시 FTX 측은 채권자를 10만 명 정도로 밝혔다. 하지만 최근 FTX 변호사들이 업데이트해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채권자가 100만 명 이상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소비자 피해의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다.

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FTX는 루나 사태보다 기관투자가를 비롯해 은행·벤처캐피털(VC) 등과의 연결고리가 많다”며 “후폭풍이 루나 사태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실제 FTX의 유동성 위기가 기존 금융사들과 글로벌 VC를 비롯한 기관투자가들로 전이될 가능성이 낮지 않다. FTX는 지난 5월 미국의 주식 거래 애플리케이션인 로빈후드의 지분 7.6%를 취득한 데 이어 ‘로빈후드’ 인수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실제 로빈후드의 주가는 11월 7일 FTX 사태로 하루 만에 12달러대에서 8달러대로 급락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게임 업체 컴투스 등이 FTX 사태에 직격탄을 맞았다. 컴투스가 발행한 암호화폐인 C2X를 처음 판매한 거래소가 FTX였기 때문이다. 컴투스는 지난 3월 FTX에서 자체 암호화폐인 C2X의 코인 거래소 공개(IEO)를 진행했다. 이 때문에 컴투스가 발행한 C2X 코인의 상당량이 FTX 거래소에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불안 심리가 높아지며 컴투스의 주가는 11월 11일 이후 다음 거래일인 14일 하루 만에 14% 정도 급락했다. 컴투스홀딩스 측은 현재 FTX와 관련해 재무적 손실이 없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무너져 내린 FTX…크립토 멜트다운 돌입?
FTX발 연쇄 유동성 위기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FTX의 채권자는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캐나다 온타리온교직원연기금, 블랙록, 세콰이어캐피털 등을 비롯해 전 세계 10만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에서 셋째로 큰 연기금인 온타리안교직원연기금은 FTX 투자 금액이 총자산의 0.05% 미만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나섰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FTX에 투자한 1억 달러를 이미 손실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VC인 세콰이어캐피털은 FTX에 총 2억1400만 달러(약 2800억원)를 투자했는데 투자금 회수가 요원해진 상황에서 전액 손실 처리했다.

FTX 사태로 월가 등에서는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비관론이 짙어지고 있다. 지난 5월 루나 사태 이후 6개월 만에 FTX 사태까지 불거진 상황에서 암호화폐를 더 이상 잠재적인 투자 자산으로 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결과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를 배제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암호화폐 거래소가 발행하는 있는 암호화폐에 대한 압박 움직임이 거세졌다.

마이클 바 미국 중앙은행(Fed) 부의장은 11월 15일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우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비은행권의 위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암호화폐 관련 활동에도 전통적인 금융회사와 유사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FTX 파산 이후 백악관을 비롯해 SEC·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 많은 규제 기관들이 관련 사항을 논의 중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