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마지막으로 공중파 TV에서 개그 프로그램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하시는지요. 꽤 오래됐을 겁니다. 2020년 6월 ‘개그콘서트’를 끝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폐지됐습니다. 2010년대 들어 예능과 버라이어티쇼 열풍이 불자 개그 프로그램은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예능 버라이어티쇼도 남성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개그우먼들은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련의 시간은 이를 이겨 낸 스타를 만들어 내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그들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송은이·김민경·김신영 씨가 그들입니다.

먼저 김신영 씨. 송해 선생님의 뒤를 이어 그는 ‘전국노래자랑’ MC 자리에 올랐습니다. 워낙 관심이 컸던 이벤트인 만큼 안티도 좀 있을 것 같았지만 아무런 잡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에일리 등 유명 가수들이 ‘전국노래자랑’에 등장, 국민 MC의 등극을 축하했습니다. 그만큼 잘살아 왔다는 얘기겠지요. 아마도 국민들은 그가 견뎌 낸 고난의 시간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김신영 씨는 한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살을 빼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말렸습니다. 개성이 사라지면 인기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살이 찐 이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빼고 싶습니다.” 그에게 살은 가난의 증거였습니다. 엄마·아빠·오빠가 모두 흩어져 살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먹을 것이 생기면 끝까지 먹은 결과가 살이었고 이제 결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찢어진 가난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주변을 밝게 해주는 그의 삶에 대한 선물이 국민 MC였습니다.

다음은 요즘 가장 핫한 개그우먼 김민경 씨입니다. 유민상 씨 등과 먹방을 하던 그는 최근 사격 국가 대표가 됐습니다. 예능이 아니라 진짜 사격 국가 대표 말입니다. 운동을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가 운동을 하는 예능에 출연하면서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그중 재밌다고 느낀 사격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가 ‘개그우먼 사격 국가 대표’였습니다. 네티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기억을 잃어 버린 전직 국정원 요원 아닐까”, “언니를 보고 용기를 내 다시 삶을 살려고 합니다” 등등. 개그우먼이 되는 길은 처음부터 고난이었습니다. 8년간 공채 시험을 봤지만 떨어졌습니다. 생활을 위해 저녁 6시부터 새벽 6시까지 문제집을 편집하는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마지막 시험 보고 안 되면 대구로 돌아가 엄마와 함께 추어탕이나 끓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응시, 2008년 공채로 개그맨이 됩니다. 개인적인 큰 아픔도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는 노력은 잃지 않았습니다. 아, 그는 나이키 모델이 됐다는 것도 빠뜨리면 안 될 듯합니다.

이들에 앞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개그우먼은 송은이 씨입니다. 2015년 그는 암흑 같은 해를 보냈습니다. 부름, 즉 방송국으로부터 1년 가까이 출연 요청을 받지 못했습니다. ‘든든한 기획사 소속이 아니어서? 홍보를 안 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그냥 하자’였습니다. 남들이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을 직접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동료인 김숙 씨와 함께 팟캐스트를 시작합니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이어 기획한 김생민 씨의 ‘국민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도 대박을 쳤습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판 대신 스스로 판을 벌인 결과였습니다.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를 불러내자 동료 개그우먼들이 하나둘 찾아오고 이는 기획사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초기 회사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 있었습니다. ‘가벼워져야 날 수 있다. 파트너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우리의 날개짓이 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새로운 비상이 되길.’ 요즘은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만들다 보니 응원해 함께 즐겨주시는 분들이 많아졌고 이제는 그분들과 함께 즐기며 따뜻한 의미도 나눌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일의 의미에 대한 뜻밖의 통찰이 들어 있는 문장이어서 그대로 옮겨 왔습니다.

세 사람의 성공은 개인의 삶과 경영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역경을 이겨 낼 수 있고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헌신, 의미를 찾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도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은 기사와 관련 없는 얘기를 했습니다. 하도 좋지 않은 사건만 터지고 있어 작은 희망이라도 찾고 싶었음을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김신영·김민경·송은이 씨가 주는 희망의 메시지가 헌신적으로 일하는 직장인과 자영업자 그리고 청년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글을 닫습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