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쎄·레종 이어 차세대 제품 릴까지 잇따라 히트시킨 ‘미다스의 손’
임왕섭 KT&G NGP사업본부장 신년 인터뷰

서울 강남구 릴 미니멀리움 타워점에서 임왕섭 KT&G NGP사업본부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서범세 기자
서울 강남구 릴 미니멀리움 타워점에서 임왕섭 KT&G NGP사업본부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서범세 기자
전자담배 후발 주자 KT&G가 2022년 초 처음으로 한국필립모리스를 역전했다. 궐련형 전자담배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2017년 릴 솔리드로 시장에 진출한 지 5년 만의 성과다. 백복인 사장 취임 이후 담배 부문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의 결실이다. 2016년 122억원이었던 KT&G의 담배 R&D 투자 비용은 해마다 꾸준히 늘며 2021년 392억원까지 늘었다.

전자담배 관련 특허 출원 건수도 2019년 380건에서 2020년 처음으로 1000건을 돌파했다. 2021년에는 1096건에 달했다. KT&G는 2022년 11월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신제품인 ‘릴 에이블(lil AIBLE)’을 출시하며 점유율 굳히기에 들어갔다.

릴 에이블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2가지 모델 중 고가 모델인 ‘릴 에이블 프리미엄’은 20만원대인 데도 출시 첫날 초도 물량이 완판됐다. KT&G는 릴 에이블 출시 한 달 만에 판매처를 주요 도시 편의점 등 전국 2만개로 확대했다. 릴(lil)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브랜드에서 기술 경쟁으로’…패러다임 변화 읽고 릴 개발

140년에 달하는 KT&G의 담배 사업 역사에서 전자담배 사업은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임왕섭 NGP(넥스트제너레이션프로덕트) 사업본부장은 릴의 개발을 이끈 주역이다. 연초 담배만 100년 넘게 만들어온 KT&G에서 전자담배 개발에 착수하게 된 배경은 담배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 때문이다. “전통 담배만이 존재하던 시장에선 브랜드가 경쟁 우위를 창출했지만, 전자담배 출시 이후부터는 ‘혁신 기술에 기반한 플랫폼의 경쟁’으로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화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플랫폼은 ‘배타적 커뮤니티(Exclusive Community)’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경쟁자보다 먼저 다수의 배타적 커뮤니티를 소유할 것인가’가 시장의 경쟁력인 시대로 변화할 것이라고 봤어요. 쉽게 말해 릴 하이브리드, 릴 에이블로 아이코스(한국필립모리스)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임 본부장은 미래 담배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선 혁신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읽고,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는 플랫폼 비즈니스 중심으로 전략을 세웠죠. 혁신적 NGP 제품 중심으로요.” 그의 전략은 전자담배 개발 조직 설립 후 만 5년 만에 KT&G가 전자담배 점유율 1위에 올라서며 현실화했다.

한국의 전자담배 시장은 한국필립모리스가 87.4%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후발 주자인 KT&G가 꾸준히 신제품을 출시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자 전세가 역전됐다. KT&G는 2022년 1분기 처음으로 한국필립모리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릴 출시 첫해인 2017년 2.5%에 그쳤던 KT&G의 점유율은 2022년 3분기 48.5%로 치솟았다.

전자담배 시장 1위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전자담배 개발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만한 사업을 고민하던 KT&G는 2016년 마케팅본부 산하에 소규모 조직인 제품혁신실을 만들고 임 본부장에게 차세대 제품인 전자담배 개발을 맡겼다. 지금의 NGP사업본부다.

임 본부장은 2017년 릴을 세상에 내놓으며 ‘이게 되겠어?’라는 세간의 의심을 ‘된다’는 확신으로 바꿨다. 출범 초기에는 8명의 소규모 조직이었지만 지금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포함해 90여 명이 넘는 대규모 조직으로 커졌다. 릴의 성공 덕분이다.
서울 강남구 릴 미니멀리움 타워점에서 임왕섭 KT&G NGP사업본부장. 사진=서범세 기자
서울 강남구 릴 미니멀리움 타워점에서 임왕섭 KT&G NGP사업본부장. 사진=서범세 기자
흥행 가도 달리는 ‘릴 에이블’, 글로벌 100대 신규 브랜드에 올라

임 본부장은 ‘히트 브랜드 제조기’로 통한다. 에쎄(ESSE)·레종(RAISON)·후파(HOOPA) 등 주요 히트작들이 임 본부장의 손을 거쳤다. KT&G는 담배의 품질과 혁신 기술 못지않게 고급스럽고 세련된 담배 이름으로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임 본부장은 “성과 측면에선 에쎄 순(현 ‘에쎄 수’), 에쎄 체인지가 기억에 남고, 콘셉트 측면에선 프랑스 감성을 담은 레종 프렌치 블랙과 왕의 담배로 불리는 에쎄 로얄팰리스가 기억에 남는다”며 “콘셉트가 독특했는데 성과도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쎄는 처음 타깃층을 여성으로 정하면서 이탈리아어로 ‘아가씨들’이라는 의미의 이름이 붙여졌고, 프랑스어로 ‘(존재) 이유’라는 뜻을 가진 레종은 고양이 캐릭터로 젊은 층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인디언 부족의 추장 이름에서 따온 후파의 브랜딩도 임 본부장의 작품이다.

임 본부장의 경력 상당 부분은 고가 브랜드와 신규 브랜드 개발 태스크포스(TF) 업무로 채워져 있다. TF는 혁신 제품과 브랜드 개발처럼 특수한 업무 수행을 위해 프로젝트식으로 운영하는 조직이다.

1996년 출시된 에쎄는 한국 담배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2005년 임 본부장이 담당하면서 점유율이 상승해 2021년 기준 약 29.7%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손대는 것마다 흥행해 내부에선 ‘믿을맨’으로 통한다. KT&G가 새로운 과제가 생길 때마다 임 본부장을 TF로 부르고 전자담배라는 차세대 제품 개발을 맡겼던 이유다.

임 본부장의 노력에 힘입어 릴 에이블의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릴 에이블은 2022년 글로벌 특허정보 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가 선정한 ‘글로벌 100대 신규 브랜드’에 뽑히며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한국 브랜드로는 릴 에이블이 유일하다. 그에게 브랜드 철학을 물었다.

“‘릴 에이블’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기초 단계에서부터 공을 들였습니다. 브랜드는 제품에 가치를 더한 거예요. 그 가치는 고객의 머릿속에 인지된 가치일 때만 의미가 있죠. 고객의 머릿속에 브랜드에 대한 좋은 가치를 만들고 잘 관리해야 구매로 이어질 수 있어요. 브랜드는 구매의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해요. 그만큼 기업이 브랜드를 잘 설계하고 효과적인 마케팅 활동을 통해 고객의 머릿속에 독특하고 호의적이고 강력한 가치 인식을 각인시켜야 합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