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 박사 출신 이제형 스트라티오 대표…게르마늄 활용한 적외선 카메라 센서 개발

10배 싼 적외선 카메라 개발 성공, 8년간의 결실 맺은 실리콘밸리의 한국 스타트업
8년 만의 결실이다. 이제형 스트라티오 대표는 2022년 12월 최근 게르마늄을 활용해 만든 센서를 장착한 적외선 카메라를 세상에 내놓았다. 오랜 시간 버티고 투자한 끝에 드디어 “휴대폰에 들어갈 만큼 작고 저렴한 적외선 카메라를 개발하고 싶다”는 창업 당시 그의 목표에 한발 더 가까워졌다.

적외선 카메라는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을 감지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볼 수 있게 해주는 카메라다. 야간경비 등 군사용 목적으로 쓰일 뿐 아니라 수술실 등에서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는 의료용 목적 등 쓰임새가 많지만, 실생활에 활용하는 데는 제약이 많았다. 가격이 매우 높은 데다 장비의 크기 자체도 매우 컸기 때문이다. 스트라티오는 이와 같은 제약들을 모두 극복한 적외선 카메라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공학도에서 창업가로, “석유를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버틴 8년

이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과 석박사를 졸업했다. 반도체 컨설팅밖에 몰랐던 외골수나 다름없던 그가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친구의 소개로 ‘재미있는 강의’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주 세계적인 창업가들이 직접 강단에 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의였다.

이 강의에서 ‘실제 창업에 도전’해 보는 과제가 주어졌다. 단순히 창업 아이템을 생각하고 기획안을 쓰는 단계가 아니라 실제 회사를 창업하고 법인 등록까지 하는 것이 그 과제의 목표였다. 신소재를 활용한 기기 개발을 주로 연구했던 그는 ‘휴대용 적외선 카메라’를 떠올렸다. 그것이 스트라티오의 시작이 됐다.

당시만해도 적외선 카메라의 센서는 주로 실리콘을 활용했는데 게르마늄, 다이아몬드와 같은 다른 소재를 활용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수업 과제 발표에서 그를 눈 여겨 보던 투자자를 통해 실리콘밸리의 B2B 전문 알케미스트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실제 투자를 받는 데까지 성공했다. 우연히 시작한 창업이 그의 인생을 건 ‘진지한 도전’이 된 것이다.

이 대표는 그 길로 스탠포드, MIT 등에서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친구 4명과 의기투합했다. 실리콘밸리와 한국을 베이스로 사업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 동안 공부했던 지식을 바탕으로 이론상으로는 분명히 가능한 일이지만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이론과 달랐다. 관련 기술의 전문가들이 뭉쳤지만 창업 초기 손발을 맞추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서로의 기대치를 맞추고 역할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창업 초기 함께 시작했던 동료 한 명의 자리가 비게 됐다. 당시 이 대표는 대표로서의 업무를 지속하면서 동시에 동료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직접 연구실에 들어가 관련 기술 분야의 연구자 역할을 도맡았다.

이 대표는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우리가 지금 석유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끝까지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적외선 카메라를 소형화 할 수 있다면 우리 일상생활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만큼 무궁무진한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8년이라는 오랜 세월 끝에 이제 막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성공한 이 대표는 2023년 스트라티오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적외선카메라는 평균 1대당 2만 달러(2천600만 원)가 넘는다. 이와 비교해 스트라티오에서 이제 막 판매를 시작한 제품의 가격은 1700달러(약220만원)으로 기존 제품의 10분의 1수준이다. 적외선카메라의 크기도 대폭 줄였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6.6cm, 두께는 2.8츠로, 각각 10cm가 넘는 기존 제품의 약 4분의 1 크기 정도다.

스트라티오에서 개발한 센서 덕분에 가능한 기술이다. (BeyonSense)라는 이름이 붙은 스트라티오 적외선 센서는 게르마늄(Germanium)을 이용하고 있다. 적외선 센서는 실리콘 웨이퍼에 빛을 흡수하는 물질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제조되는데, 기존 센서들의 경우 주로 사용하는 인듐갈륨비소(InGaAs)는 비싼데다가 웨이퍼와 화학적 결합이 되지 않아 두개를 수작업으로 일일이 붙여야 한다. 때문에 약간의 오차만 발생해도 에러가 발생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비교해 게르마늄은 인듐갈륨비소보다 쉽게 구할 수 있고 빛도 잘 흡수하지만, 영하 180도 이하에서만 작용하는 특성 때문에 사용하기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스트라티오는 게르마늄을 웨이퍼와 화학적으로 결합하는데 성공해 에러율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이와 함께 새로운 이미지 센서 구조를 만들었다. 빛을 전기로 바꾸는 기존 방식(포토 다이오드)이 아니라 빛을 전하로, 이를 다시 전기로 바꾸는 방식(charge modulate diviceCMD)을 개발한 것이다.이를 통해 상온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게르마늄 활용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구하기 쉬운 물질을 이용해 제품의 불량률을 크게 줄이면서 가격을 확 낮출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적외선카메라의 크기를 계속 줄여 휴대전화 일반 카메라처럼 적외선 카메라도 장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대표의 목표다. 현재 국방 등에 활용되는 적외선카메라의 시장규모는 약 2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만약 적외선카메라의 크기가 더 줄어들고 휴대폰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가 될 경우, 적외선 센서는 깜깜한 밤에 운행하거나 음식물에서 이물질을 가려내는 등 활용도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시장규모 또한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표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적외선 카메라와 센서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3~4군데 정도다”며 “기존 제품과 비교해서 스트라티오가 새롭게 개발한 적외선카메라는 제품 가격을 이 정도로 낮추면서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에 파급력이 매우 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