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손질해 주고 위스키와 시가 주며 ‘남자들의 마음’ 움직이다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의 한 바버샵에서 남성들이 머리를 다듬고 있다.
서울의 한 바버샵에서 남성들이 머리를 다듬고 있다.
‘남성 커트 5만8000원.’

서울 한남동 작은 골목에 있는 더노블핸즈라는 바버숍 간판에 붙여진 가격표다. 예약제로 운영 중인 이곳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몇몇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의 단골 숍으로도 유명하다.

동네 미용실과 비교해 가격이 비싼 편인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궁금해 1월 27일 오전 미리 예약하고 이곳을 방문했다.

내부는 이전에 알던 이발소와 크게 달랐다. 세련되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꾸며진 공간에서 젊은 이발사(바버)들이 손님들의 머리를 손질 중이었다. 매장 한쪽에는 중고 남성 명품 의류와 가방·구두 등도 진열돼 있었다. 오로지 남성들만을 위해 공간을 꾸민 듯한 느낌이었다.

이윽고 차례가 돼 자리에 앉아 이발을 시작했다. 일반 미용실과 비교해 보면 바리캉보다 가위질을 하는 빈도수가 더 높아 인상적이었다. 사각사각 거리며 가위에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소리가 묘하게 힐링되는 느낌을 줬다.

머리를 손질하는 시간은 미용실보다 오래 걸렸다. 미용실은 대략 20분이면 커트가 끝나지만 이곳에서는 약 1시간 바리캉과 가위를 번갈아 쓰며 머리카락을 잘랐다. 눈썹과 구레나룻 부분을 면도해 주고 스킨도 뿌려 주며 커트를 마무리했다. 가르마를 타 포마드로 빗어 넘긴 스타일을 주문했는데 원했던 결과물이 나와 만족스러웠다.

바버숍이 남성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발소라는 명칭에서 벗어나 세련됨으로 무장한 공간으로 돌아온 바버숍은 미용실로 떠났던 남성들의 발길을 다시 돌리게 만들며 미용 시장의 ‘신주류’로 떠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이발소의 수는 2021년 기준 약 1만4077개로 집계됐다. 전년(1만4345개) 보다 그 수가 줄기는 했지만 실제로 과거와는 다른 개념의 ‘바버숍’ 수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 미용업계 관계자는 “동네마다 운영 중인 오래된 이발소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전체적인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업계에선 자고 일어나면 새 바버숍이 생겨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최근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최근 동네 골목 곳곳마다 간판을 내걸고 운영 중인 작은 바버숍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특급호텔·쇼핑몰에도 들어서바버숍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성들의 취향을 사로잡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서구적인 디자인과 깔끔한 내부로 방문자들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 것은 기본이다. 곳곳에 당구·위스키·시가 등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기호 제품들을 구비해 놓으며 남성들의 발길을 그러모은다.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남성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도 바버숍 성행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바버숍은 요즘 유행하는 클래식한 분위기로 머리를 잘 손질해 준다. 가르마를 타 포마드를 발라 주는 이른바 ‘포마드 컷’, 짧게 머리를 자른 뒤 앞머리를 살짝 올려주는 ‘아이비리그 컷’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미용실은 남성 손님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매우 적다. 대략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 미용실의 특성상 바리캉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가위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세심한 손질이 어렵다. 반면 바버숍은 1시간 정도를 한 손님에게만 집중하고 가위질이 많은 편이다. 남성 고객들이 만족할 만한 헤어스타일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계속해 바버숍을 찾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가격은 비싼 편이다. 평균적으로 바버숍의 커트 가격은 4만원 이상이다. 하지만 최근 이른바 ‘그루밍족(패션과 미용에 돈을 아끼지 않는 남자들)’이 많아지면서 한국에서 바버숍은 남성 전용 미용실로 점점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버숍이 인기를 끌다 보니 돈도 이 시장에 몰리고 있다. 특급 호텔과 백화점 등 쇼핑몰에서도 운영하며 사세를 확장 중인 일명 ‘브랜드 바버숍’들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곳이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 재계 인사들이 많이 찾는 바버숍으로도 잘 알려진 ‘헤아’다.

헤아는 현재 전국에 약 7개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팰리스가 들어선 역삼동 센터팰리스 건물과 광화문의 포시즌스 등 특급 호텔 등에서도 헤아 간판을 내건 바버숍이 운영 중이다.

헤아는 커트 가격만 7만7000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 바버들은 예약 자체가 어려울 만큼 인기다. 방문 고객의 구두를 손질해 주고 위스키와 시가를 제공하는 등 차별화된 서비스가 소문이 난 결과다.

프랜차이즈 바버숍도 생겼다. ‘마제스티 바버숍’이 주인공이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현대백화점 천호점, 스타필드 코엑스몰과 고양점 등 쇼핑몰 위주로 출점 중인 마제스티 바버숍은 현재 전국에서 약 20개에 달하는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다.

바버숍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업체들도 나타나고 있다. 당구장 브랜드 작당을 운영하는 올댓메이커는 ‘웸블리’라는 브랜드와 손잡고 당구장과 헤어숍을 결합한 ‘B&B클럽(Barber&Billiard)’을 론칭하기도 했다. 바버숍이 남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자 ‘당구’와 ‘이발’을 결합한 이색 점포를 선보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인터뷰
권오훈 더노블핸즈 바버숍 대표
“30대 후반에서 60대 남성이 주요 고객층…여성 손님은 없어요”
“요즘 누가 미용실 가요?”…바버숍 찾는 남성들
한남동에서 6년째 바버숍을 운영 중인 권오훈 대표는 최근 밀려드는 손님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버 기술을 익히기 위해 영국 유학까지 갔다 온 경험이 있는 그는 “처음 바버숍을 운영했을 때와 비교해 방문하는 남성들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손님들의 연령대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권 대표는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고객들이 이곳을 찾는다”며 “한국에서도 점차 남성들이 바버숍을 찾는 문화가 뿌리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바버가 됐나.
“처음에는 남성 전문 미용실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자연히 이발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남성 커트만 전문으로 하는 ‘이용사’ 자격증을 따 바버가 됐다. 한국에는 전문적으로 바버 기술을 알려주는 곳이 많지 않아 이를 배우기 위해 2015년과 2016년 영국에 있는 바버 전문 학교에 유학을 다녀와 2018년 이곳에 바버숍을 차리게 됐다.”

미용실과 바버숍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일단 자격증부터 다르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는 ‘미용사’ 자격증을 따야 하고 바버숍에서 일하는 바버는 ‘이용사’ 자격증이 필요하다. 이용사 자격증이 있어야 바버숍을 차릴 수 있다. 특히 면도의 유무는 미용실과 바버숍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이용사 자격증이 있어야만 면도날을 보유하는 것을 허용받아 손님들을 면도해 줄 수 있다. 물론 요즘에는 바버숍이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미용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 면도를 하지 않은 채 이름만 ‘바버숍’ 간판을 내걸고 운영하는 곳도 많다.”

어떤 고객이 많이 찾나.
“가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바버숍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그리고 1시간을 오로지 그 고객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데 쓴다. 시간과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보니 미용실과 비교해 가격이 비싸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넉넉한 30대 후반 이상의 고객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최근에는 60대가 넘는 고객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이가 좀 있는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단골손님이다.”

언제부터 바버숍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2013년께부터 서울 홍대를 중심으로 바버숍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최근 2~3년 전부터 그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가르마를 타 포마드를 바르는 등 클래식한 남자 머리가 유행하면서 이런 스타일로 머리카락을 잘라 주는 바버숍들 또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한국 남성 10명 중 한 명이 바버숍을 다닐 정도로 영국처럼 바버숍 문화가 한국에서 점점 뿌리 내리고 있다. 참고로 영국에선 남자는 거의 대부분이 바버숍을 찾고 미용실은 주로 여성들만 간다.”

여성 고객은 없나.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99.9%가 남성 고객이다. 자기 외모에 투자하고 관심을 갖는 남성들이 최근 급증하면서 바버숍을 찾는 이들도 시간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