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1970년 4.53명에서 지난해 3분기 0.79명으로
여성 사회 진출 늘면 출산율도 함께 증가한 다른 국가와 정반대

[편집자주] 한국의 저출산 인구 감소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아포리아(aporia)’가 되고 있다. 해외 언론과 싱크탱크들도 한국 출산율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한국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제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며 남의 나라 저출산을 걱정해 줄 정도다. 영국 BBC와 이코노미스트, 미국 CNN,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이 최근 한국의 저출산 문제와 실효성 없는 정책을 꼬집는 보도를 했다. 한국은 2020년 ‘인구 감소’ 국가가 됐다.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처음 나타났고 지난해 3분기 합계 출산율(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 수)은 0.8명대가 붕괴돼 0.79명을 기록했다.세계 최저 수준이다. 저출산의 나비 효과는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5년 전 예상보다 2년이나 앞당기기도 했다. 들리지 않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붕괴돼 가는 대한민국의 5가지 장면을 살펴봤다.
서울 한 초등학교 입학식 전경./연합뉴스
서울 한 초등학교 입학식 전경./연합뉴스
4. 돌봄공백 채우려 육아도우미 스카웃 경쟁까지 “애를 낳아도 누가 키워야 될지 모르겠어요.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친정 엄마가 애를 봐주는 게 일반적이에요. 애 낳고 친정 근처로 이사가는 친구들도 많아요. 한평생 고생하고 늙은 엄마한테 내 애까지 키워 달라고 할 수 없어 임신 생각을 접었죠.”

유통 대기업에 다니는 A(33) 씨는 2021년 3년 연애 끝에 남편과 결혼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가 확산됐을 때는 진지하게 임신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남편과 본인 모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아이를 키울 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끝나고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임신 계획을 접었다. 아이를 낳더라도 맡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A 씨의 옆자리 선배는 어린이집 등·하원 도우미가 2주 새 2번이나 바뀌었다. 골머리를 앓으며 연차를 내고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니 임신과 출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전세 대출금에 양육비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시터(육아 도우미)가 ‘갑’이에요. 잘한다고 소문난 도우미들은 그 지역에서 웃돈을 얹어서라도 모셔 가려고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해 중간중간 상품권도 챙겨 주고 휴가와 명절 선물, 생일 선물까지 다 아쉽지 않게 챙겨야 해요. 돈 올려 달라고 하면 더 줘야 뺏기지 않죠.”

패션회사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B(41) 씨는 지난해 출산 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서 입소문을 탄 육아 도우미를 잡기 위해 다섯 달을 기다렸다.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해당 도우미를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출산 전까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까지만 일과 육아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면 되는 줄 알았던 B 씨.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다시 하교 전쟁이 시작됐다. 유치원에서는 4시에서 6시에 하원하던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자 오후 1시에 하교했기 때문이다.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여덟 살 아이를 고생시키느니 월급을 고스란히 양육비로 쓰더라도 믿을 수 있는 도우미를 구하는 쪽을 택했다.

아이를 낳는 것도 힘든데 키우는 것은 더 큰일이다.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돌봄 공백을 채우는 일이다. 매달 70만원씩 현금성 지원을 받고 육아 휴직이 제도화되더라도 현실은 순탄하지 않다. ‘믿고 맡길 만한’ 도우미를 찾아야 하고 하루아침에 구해지지 않는다. 대기업은 그나마 육아 휴직이 제도화돼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에서는 여전히 눈치를 봐야 한다.

부부 공동 육아를 위한 남성 육아 휴직은 꿈도 꿀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복직 후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육아 휴직자 수는 13만1087명으로 그중 남성은 28.9%(3만7885명)로 집계됐다. 그런데 남성 육아 휴직자의 71%가 종사자 규모 300명 이상인 대기업 종사자였다. 중견·중소기업에서 남성 육아 휴직은 여전히 낯선 일인 것이다. 결국 아이의 조부모, 특히 할머니들이 또다시 육아의 굴레에 들어온다. 미안함은 아이를 낳은 부부의 몫이다.
“아이 낳아도 키울 사람 없다”…저출산에서 무출산 향해 가는 한국[저출산 아포리아②]
5. “적게 낳기? 아예 안 낳기”…저출산에서 무출산으로출산율과 관련해 당연한 명제처럼 여겨지던 문장이 있다.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늘면서 출산율이 낮아졌다’는 통념이다. 고학력 여성일수록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로 포기하는 기회비용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의 학력과 출산율의 음의 상관 고리가 약해지고 있다. 미국·스웨덴·핀란드 등 서구 국가뿐만 아니라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다른 선진국과 한국과의 뚜렷한 차이가 있다. 선진국은 고학력 여성들의 출산율이 회복된 반면 한국은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뿐만 아니라 저학력 여성의 출산율이 함께 낮아지면서 학력과 출산의 상관관계가 낮아졌다. 여성의 학력과 상관없이 모두가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황지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더 늦게, 더 적게, 아예 안 낳기 : 대한민국 세대별 출산 추세(Later, Fewer, None? Recent Trends in Cohort Fertility in South Korea)’를 발표했다. 황 교수에 따르면 젊은 세대 집단일수록 출산율과 학력의 상관관계가 낮아지고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생 이전까지는 고학력일수록 결혼율과 출산율이 낮아졌지만 1970년대생부터는 고학력과 저학력에서도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었다.

특히 1970년대 후반생부터는 학력이 가장 낮은 집단과 학력이 가장 높은 집단의 ‘무자녀’ 비율이 가장 높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력이 가장 낮은 고졸 미만 여성의 19%가 40대까지 무자녀였고 학력이 가장 높은 석사 이상 학위를 지닌 여성의 24%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 그 사이 고졸 집단은 14%, 4년제 대졸 18%가 40대까지 자녀가 없었다.

황 교수는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이 높아진 선진국에서는 가족 정책이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수월하게 하는 환경 변화가 논의됨에 따라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문화적 발전이 이뤄졌다”며 “반면 한국은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실질비용과 기회비용이 저학력과 고학력 집단 모두에게 가중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부 모두 대기업에 종사하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다면 그나마 경제적 부담이라도 덜할 수 있다. 반면 맞벌이가 필수인 저소득층 부부는 경제적 부담에 따른 돌봄 공백을 채우기 더 힘들어진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경제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민간 기업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결혼 정보 회사 듀오가 25세에서 39세의 미혼 남녀 1000명(남성 500명,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출산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44.8%가, 남성은 29.2%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또 연소득이 낮을수록 출산 기피 현상이 두드러졌다. 연소득 2000만원 미만 미혼 남녀의 49.2%가, 2000만원 이상 3000만원 미만 미혼 남녀의 35%가, 3000만원 이상 4000만원 미만 미혼 남녀의 34.6%가, 40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 미혼 남녀의 29.2%가, 5000만원 이상 미혼 남녀의 26.5%가 각각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황 교수는 일회적인 현금성 지원보다 나라가 일하는 여성의 실질적인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고학력 여성이든 저학력 여성이든 일을 하고자 하거나 해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금성 지원도 당연히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현금성 지원으로 한국이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아이가 0세에서 1세만 지난 다음 부모 손을 떠나는 게 아닌 만큼 단순히 출산 직후나 신생아 때만 가정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사회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저출산은 국가의 가장 큰 난제인 만큼 나라에서 돌봄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공공 보육과 공교육 환경의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맞벌이 부부도 자녀와 일정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도록 노동 시간이 유연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부인과 진료부터 산후조리원·어린이집·육아 도우미까지 퀄리티가 높은 곳은 저출산 시대에도 여전히 대기해야 할 만큼 육아 전 과정에 걸쳐 퀄리티에 따른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며 “공공 보육과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노동 시간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나아가야 다음 세대에게 일을 해도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는 나라’라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이 낳아도 키울 사람 없다”…저출산에서 무출산 향해 가는 한국[저출산 아포리아②]
육아 휴직이 아니라 부모 휴가입니다…스웨덴 출산율 상승의 마법
“아이 낳아도 키울 사람 없다”…저출산에서 무출산 향해 가는 한국[저출산 아포리아②]
스웨덴에서 육아 휴직은 ‘부모 휴가(parental leave)’로 불린다. 한국에서 아빠가 육아 휴직을 갈 때는 여전히 ‘남성 육아 휴직’이라는 이름이 붙고 이에 대한 통계도 따로 나오는 것과 전혀 다르다. 스웨덴은 1974년 여성과 남성 모두가 6개월간 사용할 수 있는 육아 휴직을 도입했다. 세계 최초였다. 동시에 아픈 아이를 집에서 돌보고 월급의 80%는 정부가 지급하는 VAB(Vard av barn : 아픈 자녀 돌보기) 등 양육을 보조하는 정책을 전면 도입했다.

여성을 위한 핀셋 정책으로 여성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라 ‘가족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분위기를 바꿨다. 스웨덴의 출산율은 경제 성장을 따라 움직였다. 호황이 이어진 1960년대 중반까지 스웨덴의 합계 출산율은 2.5명이었지만 경기 곡선이 하강하면서 출산율도 서서히 추락, 1970년대 말에는 1.6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가 각종 대책을 펼쳤고 이 효과로 출산율은 1990년대에 다시 2.1명 수준으로 올랐다. 2021년 스웨덴 출산율은 1.67명이다.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스웨덴이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던 것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제도의 정착이다. 스웨덴에선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다. 사용 가능한 기간은 480일이다. 엄마와 아빠가 이 휴가 기간을 나눠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이를 낳은 부모라면 누구든 최소 1개월 이상 휴가를 쓰도록 의무 사용 기간도 정해져 있다.

휴가 역시 당연히 유급이다. 3개월간은 휴가 직전 자기 월급의 80%가 나오고 남은 3개월 동안은 매달 4000크로나(약 50만원)가 주어진다. 아빠가 쉬면 아빠 월급의 80%를, 엄마가 쉬면 엄마 월급의 80%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은 육아 휴직 기간 4~12개월째에 통상임금의 80%를 받을 수 있다. 비율로 보면 높아보이지만 월 상한액이 15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월급이 300만원이든 400만원이든 월 150만원밖에 못 받는다. 스웨덴의 상한액은 월 1030만원이다. 인근 국가 노르웨이(월 704만원)와 아이슬란드(월 547만원) 역시 부모가 육아 휴직 기간 동안 경제 상황이 나빠질까봐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는 “한국 역시 애를 1, 2년 키울 돈을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지속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육아와 일의 병행을 지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 매체 이코노미스트 역시 “여성의 육아와 일의 병행을 지지하는 제도적·사회적 분위기가 출산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미국·노르웨이 등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혼외 출산을 인정하는 제도로 출산율이 급증한 나라도 있다. 프랑스다. 지난해 유럽연합(EU) 지역 인구 전체가 17만1700명 줄었는데 프랑스 인구는 18만5900명 늘었다. 2021년 프랑스 합계 출산율은 1.83명이었다. 선진국 중 단연 최고 수준이다. 합계 출산율에서 이민자가 기여하는 수치는 0.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자국 여성이 낳은 아이다.

프랑스는 꼭 결혼하지 않더라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있다. 단순 동거는 아니고 결혼도 아닌 PACS 제도다. PACS는 시민연대계약의 준말(Pacte civil de solidarite)로 성인이 서로의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다. PACS는 원래 동성 결혼을 인정하기 위해 1999년 제정됐지만 동성 커플의 비율은 약 4.5%(2010년)에 불과하다. 95%는 이성 커플이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이미 프랑스 내에서는 숫자 면에서 PACS가 결혼을 앞질렀다.

PACS는 결혼과 마찬가지로 소득세와 부채, 사회 보장 급여, 휴가권에서 결혼과 동등한 혜택이 주어진다. 외국인과 결혼하더라도 외국인 파트너에게 1년마다 갱신이 필요한 임시 거주권이 발급된다. 그 대신 5년이 지나면 10년간 유효한 영주권 지원 기회가 주어진다. 재산과 상속은 결혼과 달리 공동 소유로 간주하지 않고 각각의 재산을 독립적으로 인정한다.

한국에서는 실패 요인으로 꼽히는 ‘현금성 지원’이 프랑스에서는 출산율을 회복시킨 주요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한국과 달리 혼외 출산에도 적용되는 등 대상 범위가 높고 지원액이 높기 때문이다. 우선 자녀 1명이면서 외벌이 가정일 경우 출산하거나 입양하면 부모에게 총액 3만2520유로(약 4360만원)를 준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기초수당도 준다. 1명의 자녀와 외벌이 가정이라면 총 2만7219유로(약 3650만원)를, 맞벌이 가정이라면 총 3만5971유로(약 4900만원)를 받을 수 있다. 맞벌이 가정은 세금을 더 내기 때문에 수당도 더 받는다. 또 아이를 키우는 모든 과정에서 가족 상황에 따라 액수가 조금씩 달라지는 매우 촘촘하고 세밀한 가족 수당 체계를 갖추고 있다.

배정원 교수는 “한국에서는 혼외 출산을 인정하는 문화나 제도 마련보다 한국의 상황과 사회적 인식에 맞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의 변화가 저출산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