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확실시된다” 했지만 결론은 대부분 교체…이제 지주 이사회 장악 나선 금융 당국

[비즈니스 포커스]
‘다시 온 관치의 시대’ 4개 금융지주 수장 인선 끝
2023년 들어 5대 금융지주 회장 중 세 자리의 주인이 바뀌었다. 지난해만 해도 전임 회장들의 연임이 가능성 높게 거론됐지만 모두 새 얼굴이 등장했다. 특히 회장 자리 3개 중 2개는 외부 인사가 차지하게 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연임’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금융 당국이 최고경영자(CEO) 선임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금융지주 이사회를 겨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 자진 사임한 CEO들 역시 명분은 세대교체였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권력의 입김이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곳은 금융지주뿐만이 아니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연임 보장은 옛말…‘새 얼굴’ 택한 금융지주

금융지주 차기 회장 인사가 우리금융지주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우리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2월 3일 회의를 개최하고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을 차기 대표이사 회장 후보자로 추천했다.

임 후보자는 2월 정기 이사회에서 후보 확정 결의 후 3월 24일 개최 예정인 정기 주주 총회에서 임기 3년의 대표이사 회장에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임 후보자는 “아직 주주 총회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제가 회장에 취임하면 조직 혁신과 신기업 문화 정립을 통해 우리금융그룹이 시장·고객·임직원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그룹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손태승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았지만 손 회장이 우리은행이 라임펀드 불완전 판매(부당 권유)와 관련해 금융 당국에서 문책 경고 상당의 징계를 받음으로써 변수가 생겨났다. 징계에 부담을 느낀 손 회장은 우리은행 이사회에 연임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앞서 3연임이 확실시됐던 조용병 신한금융회장도 용퇴 의사를 밝혔다. 후임자는 진옥동 신한은행장으로 오는 3월 취임한다.

인사가 가장 일렀던 NH농협금융지주 역시 새 인물로 교체됐다. 손병환 전 회장의 연임을 예상하는 여론이 높았지만 ‘외부 인사’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새로운 CEO로 낙점됐다.

부산 최대 금융지주인 BNK금융지주는 전임 김지완 회장이 자녀와 관련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11월 조기 사임했다. 이에 따라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이 새 회장 후보로 추천됐다.

이번 금융지주 회장 인사는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단행되는 대규모 인사로 금융권의 큰 관심을 모았다. 당초 연임이 확실시됐던 금융지주 회장들이 자진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반복됐던 ‘연임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간 금융지주 회장직은 연임에 성공하는 비율이 높았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4연임에 성공하면서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10년간 하나금융지주를 이끌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현재 3연임 중이다. 조용병 회장과 손태승 회장도 자연스럽게 ‘장기 CEO’ 대열에 합류하나 싶었지만 세대교체를 명분 삼아 물러났다.

하지만 조 회장과 손 회장 모두 연임 도전을 포기한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두 사람은 라임펀드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징계를 받은 전적이 있다. 이에 따라 연임을 이어 가기에는 다소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지속된 금융권의 횡령 등 내부 사고로 인해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금융지주는 외부인인 임 후보자를 선임하면서 “우리금융이 조직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직을 진단하고 쇄신을 이끌 수 있는 인사가 적합하다는 판단도 더해졌다”고 밝혔다.

‘은행은 공공재’…압박 더해 가는 금융권

더 중요한 배경을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금융지주 회장 인사와 관련해 권력 주변에서 쏟아져 나온 ‘말’은 관치 금융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금융지주를 향해 “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 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이 직접 은행지주 이사회를 향해 경영진 선임과 관련한 발언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인사를 앞두고 이러한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이 원장은 손 회장이 징계를 받은 시점에서 제기된 효력 정지 가처분 및 징계 무효 행정 소송 가능성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 원장의 입에서 시작된 관치 금융 논란은 농협금융지주 인사에서 정점을 이뤘다. 이석준 신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2차관, 미래부 1차관에 이어 박근혜 정부 당시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 초기 좌장을 맡아 초반 정책 작업에 관여한 이력도 있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은행은 공공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1월 30일 “은행이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게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공재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을 관치라고 하는데 이를 관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모순적 발언이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은행을 향한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 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2월 6일 열린 ‘2023 업무 계획’ 기자 간담회에서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내정과 관련한 이사회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지배 구조나 내부 통제 관련된 것에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지주가 경제에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해 CEO 선임이 ‘깜깜이’로 이뤄진다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덧붙였다.

인사는 마무리됐지만 ‘관치 금융’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시작으로 금융 당국이 금융지주사의 지배 구조를 겨냥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2월 6일 금융지주 CEO들이 장기 집권에만 몰두하는 관행을 바꾸기 위해 이사회의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금융지주 이사회 운영 현황에 대한 실태 점검을 추진하고 이사회와의 직접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지배 구조 자정에 대해서는 금융권 스스로에게 맡겨 놓는 게 낫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금융지주의 ‘셀프 연임’을 막을 수 있는 제도는 이미 갖춰져 있는데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은행이 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다면 은행의 의사 결정과 관련해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사록을 공개하는 것도 투명 경영의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