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비만이 아니다…비만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과 해법이 문제다.

건강 염려증 4

과학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무지개는 신의 계시도, 천상으로 가는 다리도 아니다. 대기 중 수증기에 빛이 굴절돼 나타나는 프리즘 효과일 뿐. 과학이라는 실증주의 해설에 충실한 사람들은 이 건조한 정의를 신봉할 것이고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초자연의 상서로운 메시지로 수용할 터다.

이렇게 해석틀 혹은 세계관은 사물과 현상을 가공해 주관적 현실로 산출한다. 그래서 인간사에는 절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대신 차이와 대립이 그 자리를 채운다. 여성가족부 폐지, 무슬림 사원 건립, 트랜스젠더 그리고 비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해석틀을 지니느냐에 따라 그 해법 또한 확연히 달라진다.◆비만에 대한 4가지 해석틀
A 군은 비만이 ‘라이프스타일과 개인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B 양은 ‘생물학적 혹은 유전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A 군은 당사자의 의식과 생활 습관 개선에 집중할 것이고 반면 B 양은 의학적 처방과 치료를 권할 것이다.

A 군의 두 친구 A-1과 A-2가 있다. 이들은 ‘라이프스타일과 개인 의지의 문제’라는 공통된 인식에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서 충돌한다. A-1은 그것이 당사자들의 책임이니 ‘비만 낙인’이나 직간접의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A-2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신체는 존중받아야 하며 과체중을 사회적 문제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더 위협적이라고 본다. 나아가 개인들에게 억지로 변화를 강제하거나 의료적 치료를 권하는 것은 다원주의 사회의 원리를 거스르는 인권 침해라고도 주장한다.

비만을 의학적으로 접근하는 B 양의 두 친구들도 시각이 갈린다. B-1과 B-2 모두 비만이 식욕 호르몬과 포만 호르몬 간의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대사 질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B-1은 적절한 약물과 함께 수면, 음식 섭취, 운동 등 생활 개선을 주문하는 반면 B-2는 비만 수술이 최선의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중 어떤 해석이 비만의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지 위 네 가지 관점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에 따라 비만이라는 세계적 보건 위기에 대한 대처법이 심각하고 갈리고 있다는 점을 주시하자.◆허술한 의료 환원주의
최근 국제 전문 의료 집단의 컨센서스는 B-2로 모아지고 있다. 비만은 라이프스타일 문제가 아닌 질병이고 따라서 약물과 수술을 중심으로 한 치료가 급선무라는 시각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2009년에서 2019년 사이 비만율이 급증하면서(남성은 35%에서 46.2%로, 여성은 23.9%에서 27.3%로) 이러한 기술적 대증요법이 탄력을 받았다.

이에 따라 미국 비만대사수술학회(ASMBS)와 미국국립보건원(NIH)은 지난해 10월 30년 만에 비만 수술 지침을 개정한 전문가 합의문을 발표했다. 비만 수술의 범주를 대폭 완화하고 그 대상을 확대하기로 한 결정을 골자로 한다. 미국소아학회(AAP)도 올해 1월 아동 비만에 대한 조기 대처를 강조하며 13세 이상 환자에게 체중 감량 수술을 포함한 공세적 치료 방침을 밝혔다.

치료가 사명인 의료인으로서 원인 진단이나 예방보다 현실적 해법에 치중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또 라이프스타일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은 비만을 게으름과 의지 박약으로 매도하는 가학적 문화에 대한 적절한 견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과의 개연성을 부인하고 생리의학적 질병만으로 한정 짓는 것은 비상식적 억지다. 그것이 단순히 개개인의 생리 유전적 문제였다면 1975년 1000만 명에 불과했던 아동 과체중이 불과 40년 지난 2016년 1억2000만 명으로 11배 증가한 것(시러큐스대 연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류에게 호르몬 유전 대변이라도 일어났다는 것인데, 그 대변이의 책임이 당사자 개개인에게 있다는 것인가.

100년 전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오늘날 그것이 차이, 또는 이슬람권의 음식 문화와 중국인 섭생의 차이도 개개인의 선택의 결과가 아닌 사회 구조적 변동 요인으로 볼 때 더 설명력을 지닌다. 그러니 정작 그들이 부인해야 할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연계성 그 자체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개인의 독자적 선택으로 환원시키는 무개념한 자유주의 시각이다.

우리 몸은 외부 물질 조건과 사회 환경에 연결된 복합 구성물이다. 그래서 라이프스타일과의 개연성을 부정하고 비만을 생리 의료적 문제만으로 축소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진단일 뿐만 아니라 왜곡된 해법을 유발한다. 이런 의료 환원주의적 접근법을 취한다면 구조적 원인 인식과 사회적 책임이 증발하고 역으로 신체 보유자의 개인 책임만 더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위험한 수술 제일주의
이렇게 도출된 수술 제일주의의 질주는 더 위태롭다. 물론 비만 수술에 따른 심혈계 질환 예방 효과는 풍부한 임상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하지만 그 혜택만큼이나 합병증에 대한 리스크도 적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간과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위우회술을 받은 집단의 장기 관찰 결과 뇌전증·위장관질환·장폐색·영양실조·정신질환과 알코올 남용 위험들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는 공식 연구가 잇따르면서 (메디컬타임스 2022년 10월 5일) 비만 수술 확대의 속도 조절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우려와 무관하게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고도 비만을 대상으로 한 수술 치료가 확대되고 있다. 체질량지수 35 이상 또는 30~35이면서 동반 질환(제2형 당뇨병·고지혈증·고혈압 등) 대상 비만 수술에 2019년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된 것도 그 한 요인으로 보인다.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는 ‘비만 잡는 외과의사’ 캠페인을 벌이며 비만 대사 수술에 대한 인식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수술이 ‘최후가 아닌 최선의 선택’이고 안전성이 높아진 반면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확대돼 경제적 부담이 감소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런 주장에 솔깃하다가도 다음과 같은 통계를 보면 흠칫 물러서게 된다. 세계비만연맹에 따르면 2030년께 전 세계 여성 5인 중 1명, 남성은 7인 중 1명이 비만이 된다고 한다. 이 추산대로라면 대략 14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비만 질병 ‘환자’로 규정되고 만다.

그들 중 상당수(고도 비만과 제2형 당뇨 결합자)가 수술 대상으로 판정 받을 터이니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일이다. 이 어마어마한 인구가 위절제술이나 위우회술을 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전문 의료 집단의 주장이 초현실적 섬어(譫語)로 들리는 것은 필자 혼자만의 느낌일까.

◆C 씨의 등장 : 행정 규제의 공공 보건 개입의 정당성
여기서 위에 언급한 4가지 시각과 다른 C 씨를 상정해 본다. 그는 개인의 관리 책임, 의료적 조치의 절실성을 인정하면서도 비만을 사회 문화적 변동과 연계해 바라본다. 일·놀이·학습이 통합된 디지털 플랫폼이 가져온 신체 활동의 위축, 고열량·저영양 가공식품의 무제한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득 상승과 세계화에 따른 육류 소비의 급증(특히 한국에서) 등 생활과 문화 인프라를 주요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다.
국가와 비만의 상관관계[몸의 정치경제학]
C 씨의 해법은 공적 지출 확대와 보건 행정 강화로 향한다. 실제로 해외에는 공공 개입 사례가 많다. 특히 고열량·저영양 음식료 판매에 대한 규제가 중심이다. 2002년 뉴욕시 교육위원회는 초중고에 설치된 청량음료·스낵·캔디 등 자판기 퇴출을 시작했다. 그 흐름이 전국적으로 번졌고 급기야 교내 정크푸드 판매 전면 금지안이 2013년 미국연방규정집에 오르게 된다.

1인당 설탕 소비 세계 1위를 유지해 온 칠레는 2013년 이른바 ‘설탕 세금’을 전격 채택했다. 100mL당 6.25g 이상 당분을 함유한 유제품·주스·탄산음료·에너지 드링크 등에 대해 기존 세율 13%를 18%로 올려 적용한 것이다. 역으로 그 이하 함량은 10%로 감세해 준다.
2014년 멕시코가 뒤를 이었고 현재 말레이시아·이탈리아·아랍에미리트(UAE)·영국·아일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폴란드·모로코·파키스탄 등 20여 개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설탕 음료세금이 집행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더욱 공세적인 행보를 보였다. 2019년 10월 주스·요구르트·인스턴트커피·탄산음료를 포함한 일체의 가당 음료 광고가 방송·출판·온라인 모든 매체에서 전면 금지됐다.

한국에서도 비만에 대한 사회 정책적 개입이 시급하다. 사회정책적 개입은 비만을 정확히 라이프스타일의 문제로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비만 유도형 라이프스타일은 개인의 사적 선택을 뛰어넘는 구조적 (서구화·산업화·디지털화·세계화 등) 성격을 띤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그래야 공적 책임과 부담이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산업 규제보다 비만 예방 보호 지원에 방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치매관리법(법률 제17795호)처럼 법적 근거를 만들어 비만에 대한 연구 관리 및 ’환자’에 대한 보호 지원이 체계화돼야 한다. 치매센터처럼 비만센터를 국가와 지자체에서 설립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비만이 의료 대재앙이라고 외치면서 개인들에게 그 재앙을 감당하라고 한다면 국가는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이 될꼬….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