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 1심 패소로 주가 20% 가까이 급락
‘매출 32.5% 잃을라’ 항소 예고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강남구 대웅제약 본사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강남구 대웅제약 본사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메디톡스가 이른바 보톡스로 불리는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출처를 두고 대웅제약과 장기간 벌인 소송전 1라운드에서 이겼다.

“대웅제약이 보툴리눔 균주를 훔쳤다”는 메디톡스 측 주장의 상당 부분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이 회사는 2년 전엔 로열티와 합의금을 받는 조건으로 미국에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판매를 허용해 주면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었다. 한국에서도 승소하면서 보톡스 전쟁에서 사실상 승기를 굳혔다는 평가다.

“대웅제약, 메디톡스에 400억원 배상”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61부(부장판사 권오석)는 2023년 2월 10일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상대로 낸 영업 비밀 침해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품의 제조·판매를 금지하고 이 회사가 보유 중인 균주를 메디톡스에 넘기라고 명령했다. 이미 만든 균주 완제품과 반제품도 모두 폐기하라고 했다. 이와 함께 메디톡스에 손해 배상금 400억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계통 분석 결과와 간접 증거 등에 비춰볼 때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와 메디톡스의 균주가 서로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 비밀 정보를 취득·사용해 제품 개발 기간을 3개월 단축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체 부분 마취와 주름 개선 등에 사용되는 보툴리눔 톡신은 독성 물질이기 때문에 균주를 다른 국가로 이동시키는 것이 금지돼 있다. 정부가 직접 균주의 출처와 제조 신고를 관리하고 있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톡스 전쟁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이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도용하고 제조 공정 기술 문서 등을 훔쳐 갔다”며 대웅제약과 이 회사의 파트너사인 에볼루스를 상대로 미국에 소송을 낸 게 시발점이었다.

메디톡스는 2019년 1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도 대웅제약을 제소했다. 미국에서 소송전을 한창 벌이던 2017년 10월 한국 법원에도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총력전을 예고했다. 대웅제약은 메디톡스의 ‘무단 도용’ 공세에 “국내 토양에서 자체적으로 얻은 균주”라고 맞서 왔다.

메디톡스는 2021년 2월 로열티를 받는 대가로 에볼루스에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품인 나보타(미국 제품명 ‘주보’)의 미국 판매를 허용해 주기로 합의하면서 보톡스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에볼루스는 나보타 매출의 일정 비율을 메디톡스와 이 회사의 파트너사인 엘러간(현 애브비)에 내고 두 회사에 합의금 3500만 달러도 2년간 분할 납부하기로 했다.

또한 메디톡스에는 자사 주식 676만 주(약 12%)를 액면가(0.00001달러)에 발행해 줬다. 메디톡스는 이 계약을 하면서 과거 미국에서 제기한 소송을 모두 철회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한국 1심에서도 완승을 거두면서 톡신업계에서의 존재감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서울 강남구 메디톡스 본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메디톡스 본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톡신 사업 위기 맞은 대웅제약

대웅제약은 보툴리눔 톡신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될 처지에 놓였다. 2020년 말 미국 ITC로부터 ‘21개월간 나보타 미국 수입 금지’ 판결을 받았을 때는 에볼루스의 합의 계약을 방패 삼아 큰 타격은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에볼루스에 합의금 명목으로 2550만 달러를 지급한 정도로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이번엔 톡신 생산 자체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대웅제약은 나보타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 62개국에서 톡신 사업을 하고 있다. 2022년 3분기 나보타 판매로 거둔 매출은 1079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32.5%를 차지했다.

대웅제약은 판결 직후 “명백한 오판”이라며 “강제 집행 정지를 신청하고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법원이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품 생산을 멈춰야 한다. 나보타가 한국(경기도 화성)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수출 역시 불가능해진다. 그나마 2년 전 에볼루스와 메디톡스가 맺은 로열티 계약으로 미국에선 사업을 이어 갈 여지가 있는 것이 위안이란 평가다.

집행 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더라도 2심에서 판결을 뒤집지 못하는 한 나보타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완전히 벗어던지기는 어렵다. 이 같은 이유로 대웅제약의 주가는 패소 판결이 나온 2월 13일 하루에만 19.35% 급락했다. 유진투자증권은 이날 대웅제약의 목표 주가를 23만원에서 17만원으로 낮췄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웅제약은 당초 내수를 넘어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했던 기업”이라면서 “한국에서의 소송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기업 가치 할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돋보기]
확전 가능성에 휴젤도 덩달아 ‘긴장’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의 소송전에서 이기자 한국의 다른 보툴리눔 톡신 제조사들도 긴장하고 있다. 메디톡스가 판결 후 자사 균주와 제조 공정을 불법으로 취득해 상업화한 다른 기업에도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뜻을 내보여서다. 특히 톡신업계 1위인 휴젤이 확전에 휘말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휴젤은 1년 가까이 보툴리눔 톡신 균주 도용 문제를 두고 메디톡스와 다투고 있다. 메디톡스가 2022년 3월 자사 균주와 제조 공정을 몰래 가져다 썼다면서 휴젤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하면서 갈등이 본격화했다. 메디톡스는 미국에서 휴젤 제품의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웅제약과의 소송전을 시작할 때와 똑같은 수순이다.

메디톡스는 치밀한 준비를 거쳐 휴젤을 제소했다. 2021년 8월 미국 대형 로펌 퀸엠마누엘을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해 소송 전략을 짰다. 그 후 8개월 정도 기다렸다가 휴젤의 미국 진출이 결정됐을 때 소송을 제기했다. 메디톡스가 소송을 건 2022년 3월 30일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휴젤의 보툴리눔 톡신 ‘레티보’에 대한 품목 허가 심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과 마찬가지로 휴젤 역시 균주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도용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외 다른 톡신 업체들도 같은 이유로 의심하고 있다. 휴젤 측은 도용 논란에 대해 “유통 기한이 지난 콩 통조림에서 보툴리눔 균주를 얻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메디톡스가 거짓 음해로 다른 기업의 성장을 막으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아직 법정 공방의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주식 시장에선 대웅제약의 패소가 휴젤에 악재로 작용했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소송 1심 판결이 나온 2월 10일 휴젤은 전 거래일보다 18.17% 추락한 13만3800원에 장을 마감했다. 2022년 메디톡스에 제소당한 직후와 똑같은 흐름이다. 제소 사실이 알려진 2022년 4월 1일부터 2거래일 동안에만 22.18% 급락했다.

휴젤이 대웅제약처럼 미국 ITC에서 보툴리눔 톡신 제품 수입 금지 판결을 받으면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국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 미국은 단일 국가 기준으로 세계 최대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다. 휴젤의 2022년 매출은 2816억원, 영업이익은 1024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21.5%, 7.2% 증가했다. 톡신 사업 매출이 1246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53.8%를 차지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