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시대에 주목해야 할 기후 변화 브랜딩의 ‘3P 법칙’
[브랜드 인사이트] “우린 지금 전 지구가 파괴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우린 100% 다 죽을 거라고요!”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서 제니퍼 로렌스(케이트 디비아스키 역)는 지구를 멸망시킬 혜성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현실에도 이런 답답함과 절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기후 변화로 지구의 종말이 다가옴을 경고하는 기상학자들이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22년 발행한 제6차 평가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줄여야 대기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은 1.5도를 임계점으로 보고 이를 넘기면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를 되돌릴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다행히 이 같은 위기를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인식하고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을 경영상의 큰 목표로 설정했다.
다만 기업들이 이런 노력을 소비자에게 알림으로써 공감과 지지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의 노력이 소비자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어 브랜드를 선택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기업의 노력을 성공적으로 알릴 수 있는 브랜딩은 무엇일까. 기후 변화 브랜딩의 3P(Proactive, Positive, Participative) 법칙을 소개한다.
① 사전에 해결하라(Be Proactive)
기업의 사회적 책임 패러다임은 CSR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로 진화해 왔다. 두 개념의 가장 큰 차이점은 CSR이 주주 이익 극대화로 인해 발생한 시장 실패를 사후적으로 바로잡는 반면 ESG는 ‘이해관계인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시장 실패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것이다.
이 흐름은 기후 변화 문제에도 반영되고 있다. 발생시킨 탄소를 후행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탄소 배출량이 높은 업종은 어디일까. 철강·석유화학 산업과 함께 데이터센터 산업도 탄소 배출량이 높은 업종이다. 데이터센터의 서버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전력이 과다하게 사용되면서 탄소 배출량이 증가하는 구조다. 대표적인 정보통신 산업인 데이터센터 산업이 소위 굴뚝 산업들과 유사한 수준의 탄소를 배출한다는 것이 아이로니컬하지만 이 같은 사실 때문에 데이터센터 산업에서는 탄소 배출량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해저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나틱 프로젝트’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해저에 구축함으로써 조력·풍력과 같은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하고 바닷물을 통해 낮은 온도를 유지함으로써 전력 소비에 따른 탄소 배출량을 줄인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탄소 배출량을 구조적으로 사전에 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데이터센터를 물속에 구축해 기술력을 선보인 것은 덤이다. 소를 잃은 뒤에는 이미 늦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망양보뢰(亡羊補牢)하지 않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② 긍정적으로 해결하라(Be Positive)
검색창에 기후 변화를 검색하면 ‘말라버린 지구’, ‘녹아버린 북극’과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주로 검색된다. 인간의 행동 변화를 위해 공포 마케팅이 효과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다만 이런 접근법이 기후 변화 브랜딩을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기업들에는 옳은 접근법이 아니다.
어떤 기업에 관해 온통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오른다면 그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소비자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기후 변화 브랜딩은 정부와 공공 기관과 달리 긍정적 이미지를 전달해야 한다.
정유 기업들은 대표적인 ‘기후 악당’으로 인식된다.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수단인 내연기관차에 연료를 제공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두바이에서 열릴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8) 의장으로 술탄 알 자베르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 회장이 임명됐을 때 수많은 환경 단체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고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정유 기업 중 하나이면서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운 기업이 있는데 바로 글로벌 정유 기업 쉘이다. 쉘은 탄소 순배출량 제로 달성을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설정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실행하고 있다.
쉘의 긍정적인 이미지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에코 마라톤’이다. 에코 마라톤은 쉘이 1985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자동차 대회로, 석유 1갤런으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 경주한다.
쉘은 대회 자체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대회를 통해 파악한 잠재 인력들을 친환경 구현을 위한 인재로 성장시킴으로써 정유 기업임에도 긍정적이고 희망찬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긍정주의는 성취를 불러오는 믿음이라고 했다. 긍정적인 기후 변화 브랜딩은 기후 변화에도, 기업의 비즈니스에도 성과를 가져온다. ③ 참여를 유도해 해결하라(Be Participative)
최근 마케팅과 브랜드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문제 중 하나는 ESG에 대해 언론에서 말하는 소비자 인식과 실제로 경험하는 소비자 인식의 간극이다. 언론에서는 소비자들이 가치 소비를 지향하며 기업들의 ESG 실행 여부를 중요 지표 중 하나로 고려한다고 하지만 실제 기업의 ESG 활동에 대한 소비자 민감도는 높지 않다.
이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기업들의 ESG 활동이 지나치게 ‘공급자 중심적’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업의 ESG 활동에 민감한 소위 깨어 있는 소비자들은 기업이 단독으로 하는 ESG 활동이 아닌 자신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소비자 참여형 ESG’를 원한다.
스웨덴의 핀테크 스타트업 두코노미는 마스터카드와 함께 ‘두 블랙(Do Black)’, ‘두 화이트(Do White)’라는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두 카드 모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연동해 카드로 구매하는 상품의 탄소 배출량을 추적한다.
두 블랙은 탄소 배출량이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결제가 불가능해지고 두 화이트는 저탄소 배출을 약속한 브랜드 상품을 구매하면 포인트 등의 보상을 제공한다. 두코노미는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수단을 제공할 뿐 탄소 배출량 감소의 주체는 소비자가 된다.
두코노미는 이런 소비자 참여형 ESG를 통해 업계에 반향을 일으키며 2019년 칸 라이언즈 e커머스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기후 변화 브랜딩의 3P는 결국 어떤 문제에 대해 미리(Proactive) 고민하고 긍정적(Positive)으로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Participative) 해결하라는 보편적인 문제 해결법을 담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위기에 처한 시점에서 기업의 기후 변화 브랜딩이 이 같은 보편적 원칙을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이 필요한 때다. 황교정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책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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