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만에 청약통장 가입자 수 86만 명 감소…정책 완화로 청약 문턱 낮아질 듯

[비즈니스 포커스]
 GS건설의 '영등포자이 디그니티'가 2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견본주택을 열고 본격적인 분양 일정에 돌입하고 있다. 정부가  1·3 대책을 발표한 후 서울에서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고 청약을 진행하는 첫 단지다. (사진=한국경제신문)
GS건설의 '영등포자이 디그니티'가 2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견본주택을 열고 본격적인 분양 일정에 돌입하고 있다. 정부가 1·3 대책을 발표한 후 서울에서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고 청약을 진행하는 첫 단지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이제 막 취업한 사회 초년생들에게 추천하는 금융 상품이 ‘실비 보험’과 ‘청약’이다. 두 상품 모두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들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언을 사회 초년생들에게 했다가는 ‘꼰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최근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내 집 마련이 재테크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 시대에서 청약통장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청약 이탈자’가 늘어나는 것은 청약통장이 내 집 마련과 재테크 등 두 가지 관점에서 매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청약통장, 갖고는 있는데, 언제 쓰나

실제로 청약통장 가입자는 7개월 만에 86만 명 감소했다. 2월 19일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청약통장 가입자는 지난해 6월 기준 2860만 명에서 지난 1월 2774만 명으로 7개월 만에 86만 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4대 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청약부금·청약예금·청약저축) 유형 중 주택청약종합저축만이 신규 가입이 가능하다. 청약통장 해지자는 지난해 1월 25만 명 수준이었지만 하반기부터 매월 불어나기 시작해 지난해 11월 한 달 사이 51만9000명이 해지했다.

이탈자가 늘어났으니 예치금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1월 기준으로 전국의 청약통장 예치금은 100조1849억원으로 집계됐다. 만약 해지 행렬이 이어진다면 예치금은 100조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치금이 가장 크게 줄어든 지역은 서울이었다. 서울은 지난해 6월 32조7489억원이었지만 지난 1월 31조1817억원으로 집계됐다. 7개월 만에 1조5671억원 감소했다. 서울 외에도 주요 도시에서도 청약통장 이탈자들이 늘어났다. 대구는 작년 4월 4조2241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9개월 만에 5310억원 줄어 감소율이 14.4%에 달했다. 경북은 작년 6월부터 지난 1월까지 3496억원(-11.5%) 줄었고 부산도 같은 기간 5371억원(-8.8%) 감소했다.

이처럼 청약통장 가입자가 줄어든 것은 청약통장이 갖는 가치, 즉 주택 당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2030세대에서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졌다.

이는 청약 당첨의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2017년 발표된 8·2 부동산 대책은 서울·경기·부산 등을 규제지역으로 지정하고 부양가족(35점), 무주택 기간(32점), 청약 가입 기간(17점)에 점수를 부여했다. 서울에선 전용 85㎡ 이하 아파트의 청약 가점제 비율이 100%, 조정대상지역인 경기 과천·부산에서는 가점제 비율이 75%로 높아졌다.

만약 만점을 받으려면 부양가족 6명 이상에 만 30세부터 15년간 무주택자여야만 가능했었다. 사실상 부양 가족이 없고 연령대가 젊은 2030세대에게 청약 당첨은 ‘그림의 떡’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청약통장의 금리가 다른 예금 상품들과 별 차이가 없어졌다는 것도 해지를 부추기고 있다. 주요 금융권의 청약통장은 2년 이상 상품을 유지하면 최고 금리가 1.8%다. 만 34세까지 가입할 수 있는 청년 우대형 상품의 금리는 3.30%지만 금리 상승으로 시중 은행의 예·적금 금리가 3~4%대까지 오른 시점에서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매력 없는 청약통장? “그래도 들고 있어라”

눈앞의 ‘돈’이 아닌 ‘시간’도 고려해야

물가 상승이 청약통장 이탈을 부추겼다는 해석도 있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인해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매달 청약에 붓는 돈 10만원도 부담이라는 청년층도 늘고 있다. 당장 지출해야 하는 돈의 규모가 커졌는데 언제 쓸지도 모르는 청약통장에 목돈을 예치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집값과 분양가의 괴리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있지만 분양가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분양가와 집값의 시세 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분양 주택의 매력이 떨어졌다. 올해 1월 전국 미분양 주택이 7만5000가구를 넘어섰다. 이는 10년 2개월 만의 최대치다. 봄이 되면 전국 미분양 주택이 10만 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앞서 지적한 여러 가지 요소로 인해 청약통장의 매력이 떨어졌다지만 전문가들은 “해지를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정성진 KB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주택청약종합저축은 예금과 비교해 이자가 그리 낮지 않으므로 갖고 있다면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청약통장이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단순히 돈 가치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 부센터장은 “청약통장은 금리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납입하느라 들인 시간까지 투자로 환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만약 당장 목돈이 필요해 청약통장 해지를 고려한다면 청약통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은행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청약통장 납입 금액의 90~95%를 대출받을 수 있다. 다만 금리는 은행별로 차이가 있다. 산정 방식과 가산 금리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대출 전에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금리나 부동산 정책은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요인이다. 실제로 1월 3일 발표된 부동산 정책에 따라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서울·수도권 전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하면서 청약 규제가 사라졌다.

이에 따라 규제지역을 제외한 서울의 신규 물량은 전용 85㎡ 이하의 추첨제 비율이 60%, 85㎡ 초과는 100% 추첨으로 뽑게 됐다. 가점이 사라지면서 청약에서 불리했던 2030세대에게도 어느 정도 ‘희망’이 생겨나게 됐다.

또 3월부터 무순위 청약 요건이 대폭 완화된다. 기존에는 주택이 건설되는 지역에 거주하고 가구 구성원 모두가 무주택자여야만 무순위 청약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3월부터는 지역과 보유 주택 수에 상관없이 한국에 거주한다면 누구나 무순위 청약이 가능해진다. 단 공공 주택은 무주택 가구 구성원으로 대상이 제한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