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기술 스타트업 - 루트에너지

[ESG 리뷰]
“재생에너지 투자 대중화…주민 참여로 수용성도 높였죠”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꼭 따르는 문제가 주민 수용성이다. 주민 수용성은 지역 주민이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들어서는 것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주민 수용성을 고려하지 않은 사업은 시작하기조차 쉽지 않고 시공을 마치더라도 운영 과정에서 잦은 민원으로 갈등이 생기기 쉽다. 매년 수용성을 해결하지 못해 무산되거나 지연된 재생에너지 사업이 절반이 넘는다.

최근 거론되는 이익 공유제나 주민 참여제 역시 근본적 해결 방안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업자가 단순히 주민 반대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익 공유와 주민 참여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마을 여론을 주도하는 일부에게만 이익이 돌아가거나 주민 투자 없이 대출로만 사업이 이뤄지는 등 실질적 ‘주민 참여’가 실종되기도 한다.

루트에너지는 주민 수용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에너지 리터러시(문해력) 제고’에 초점을 맞춘다. 루트에너지의 ‘커뮤니티펀드’는 에너지 문해력이 높은 ‘에너지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커뮤니티펀드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중 안정성이 가장 높은 곳을 대상으로 해당 지역 주민이 우선적으로 펀딩에 참여하도록 지원한다. 태백 가덕산 풍력사업 주민참여펀드, 안성맞춤햇빛펀드 등이 바로 그 예다.

“재생에너지 투자는 고관여 금융 상품이에요. 투자자의 구매 결정이 오래 걸리는 고부가 가치 상품이죠. 시골에 있는 부모님이 재생에너지 상품에 투자한다고 가정해 보면 이해하기 쉬워요. 부모님은 투자를 위해 자식인 저를 설득하고 말리는 주변 사람을 설득하겠죠. 설득 과정에서 투자자인 주민은 재생에너지에 대해 공부하게 되고 그 정보가 주변에 전파되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인식 수준은 자연스럽게 높아집니다. 이것이 바로 상향식(bottom-up) 재생에너지 확산입니다.”

사업 지속 위해선 수용성 제고 필수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는 이러한 접근이 재생에너지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에서는 인구 8000만 명 중 10%인 약 800만 명이 재생에너지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재생에너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가족과 친구 등을 포함하면 약 2000만~3000만 명의 에너지 시민이 육성된 셈이다. 시민들의 수용성과 문해력이 높아지면 재생에너지 사업 확대는 한층 쉬워진다. 개발 기간이 단축되고 에너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재생에너지 산업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수용성 이전에 재생에너지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전력이 소매를 독점하는 한국에서는 사용 전력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는 개념 역시 낯선 상황이다. 그럼에도 루트에너지가 수용성에 집중하는 이유는 하나다. 수용성 제고 없는 재생에너지 개발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트에너지 역시 펀드 운영 과정에서 현장의 갈등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윤 대표가 말하는 갈등 최소화 방안은 3가지 ‘정의’에 있다. 절차적 정의, 분배의 정의, 환경적 정의다. 다시 말해 사업 진행 절차, 사업 이익 분배, 환경 부담에 대한 인식 차를 줄이는 것이다.

먼저 진행 절차에서는 투명성이 문제가 된다. 사업 초기부터 투명하게 진행 절차와 상황을 공개하고 주민이 의사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대부분 사업자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결론 단계에서만 주민의 의견을 수렴한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주민을 배제하다 보니 수용성이 확보될 가능성도 낮아진다.

둘째는 분배의 형평성이다. 발전소 가까이 사는 주민과 멀리 사는 주민의 피해 정도가 다른데 금액을 동일하게 분배하거나 별다른 기준 없이 이익의 절대 액수가 달라지는 일이 빈발하면 신뢰도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적절하고 공정한 이익 배분이 이뤄져야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마지막 환경적 정의는 발전소가 들어섰을 때 받을 수 있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에 대한 인식 개선과 관련이 있다. 해상 풍력 발전기를 예로 들어보자. 발전기가 처음 바다에 들어서면 해양 생태계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구조물이 산호초처럼 자리 잡아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기도 한다. 유독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이런 정보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양측의 정보를 모두 공유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루트에너지는 재생에너지 발전 단지의 개발·시공·운영에 모두 관여한다. 인허가·설계·민원(주민 수용성), 환경 영향 평가 등 개발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갈등 상황에서 중재 역할을 한다. 어떻게 이익을 공유할지, 발전 단지가 어떻게 지역 상생을 이룰 수 있을지 소통한다.

펀딩은 허가가 끝난 후 시공 단계에서 진행된다. 루트에너지는 공인된 테크핀 플랫폼으로 금융감독원의 감시·감독 아래 주민들이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사 이후에는 사후 관리가 계속된다. 발전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당하고 운영 상황과 리스크를 꾸준히 공개하는 것이 포인트다. 재생에너지 사업의 주민 상생 모델과 이익 공유 솔루션을 루트에너지가 선도하고 있는 이유다.

주민 동의 2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

루트에너지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신뢰를 구축했다. 태백 가덕산풍력발전 1단계 사업은 주민의 동의를 100% 받는 데 26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그 후 2년간 안정적 수익 공유와 소통 노력을 보여준 결과 2단계 사업은 4개월 만에 주민의 동의를 이끌어 냈다. 그만큼 개발 기간도 단축됐다. 수용성 확보와 신뢰 구축으로 ‘주민과 함께 개발하는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다.

태백 가덕산풍력발전 2단계 사업은 대출금 없이 약 27억원을 주민이 모두 직접 투자했다. 이는 애초 목표로 한 24억원을 훌쩍 넘은 액수다. 순수 주민 투자로 완성된 최초의 주민 참여 모델 성공 사례다.

윤 대표는 “이제는 주민 수용성이 ‘뉴노멀’이다. 재생에너지 사업 자체가 주민 참여형 사업이 됐고 조만간 의무화 수준까지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루트에너지는 지난해까지 KDB산업은행과 현대해상, 벤처캐피털 등에서 71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기업을 위한 재생에너지 조달 자문도 루트에너지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RE100(재생에너지 100%) 확산과 함께 기업 재생에너지 조달이 큰 과제가 된 상황이다. 기업과 건축물 등 RE100 이행 전략을 자문하고 실행한다. 재생에너지는 특히 제도 변화가 잦기 때문에 발빠른 대처와 전문적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

윤 대표는 “산업용 전기 요금이 당분간 매년 10~20%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으로서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탄소 감축 비용 등을 고려하면 더 경쟁력 있는 결정”이라며 “한국에서 신재생에너지와 화력 발전의 발전 단가가 같아지는 ‘그리드 패리티’의 달성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윤 대표의 재생에너지 시장 도전은 이번이 넷째다. 루트에너지는 첫 창업 아이템이던 크라우드 펀딩을 한국 시장에 맞게 커뮤니티 펀딩으로 개편했다. 덴마크에서 풍력에너지공학을 전공하던 그는 재생에너지 선도 국가로 알려진 덴마크도 수용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을 목격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 기술이나 경제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개선되지만 수용성 문제는 재생에너지가 확대될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다. 갈수록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민가와 가까워지고 어장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덴마크가 수용성을 높일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지역의 다양한 이슈를 공동체에서 함께 숙의해 결정하는 의사 결정 체계에 있었다.

윤 대표는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덴마크는 공동체의 편익을 더 중시하는 나라고 한국은 개인과 기업의 이익이 의사 결정의 더 중요한 요소다. 자본에 따른 의사 결정이 보편적인 한국이기에 재생에너지를 누구나 투자할 수 있는 소액 금융 상품으로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금융과 정보기술(IT)을 결합한 한국 최초의 재생에너지 전문 테크핀 서비스를 만들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RE100 달성 위해 제도 개선 필요

윤 대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금융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이 RE100을 달성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구매를 이어 가려면 결국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RE100 달성 수단인 전력 구매 계약(PPA)은 15~20년에 달하는 장기 계약이 기본이다.

기업은 이러한 장기 계약에 부담을 느낀다. 만약 기업이 부도나 사업 축소, 사업장 이전 등으로 전력 구매 계약을 유지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나 백업 플랜이 아직은 전무하다. 윤 대표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정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금융은 재생에너지 사업의 양성화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존 부동산 개발 시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리베이트 등 음성적 수단이 재생에너지 사업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윤 대표는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동원하는 이런 접근 방식이 오히려 개발을 더디게 하고 결국 초기 비용만 높이게 된다. 주민들의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보다 단순히 보상금만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악순환의 시작”이라며 “루트에너지는 사업 개발의 각 단계별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주민의 이해도를 높이고 금융 플랫폼을 통해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해 재생에너지 사업의 양성화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한국은 국토가 좁아 재생에너지 개발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오해라고 말한다. 지정학적 한계 등을 감안해 한국에 설치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100으로 볼 때 현재 개발된 것은 5% 미만(태양광·풍력·지력·소수력)이다. 즉 95%의 훨씬 큰 시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윤 대표는 발전소 위치가 갈수록 주민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그만큼 민원과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주민 수용성 이슈는 앞으로 최소 30년 이상 지속될 것입니다. 이익 공유나 주민 참여는 솔루션 중 하나일 뿐이죠. 덴마크도 수용성 해결을 위해 30년간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진행 중인 과제로 보고 있습니다. 사업이 진행될 때마다 그 지역에 맞는 새로운 접근 방식과 최적화된 솔루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예요. 발전소를 설치할 물리적 장소가 없어서라기보다 주민 반대로 못 짓는 곳이 더 많으니까요.”

윤 대표는 “루트에너지의 주요 핵심 성과 지표(KPI) 중 하나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 시민을 육성하는가’”라고 말한다. 혐오 시설이 주거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님비(NIMBY : Not In My Back Yard)’를 제발 우리 집 앞마당에 해 달라는 ‘핌피(PIMFY : Please In My Front Yard)’로 바꾸는 것이 루트에너지 사업의 핵심 가치인 것이다. 재생에너지도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처럼 하나의 ‘국민 문화’가 된다면 어떨까. 루트에너지가 그 시작을 마련한다. 루트에너지가 2030년까지 달성할 과제는 5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재생에너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