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전쟁’ 변수가 지표 혼동시켜…PMI · 장·단기 국채 금리 차 · 주택 시장 등은 ‘침체’ 신호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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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더 강력하게(좋게) 나왔다. 필요하다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고 최종 금리 수준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을 수 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3월 7일 미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한 발언이다. 파월 의장은 “최근 몇 달 동안 인플레이션이 완화됐지만 목표치인 인플레이션 2%로 낮추는 과정은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고도 했다.

지난해 연말 이후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면서 Fed는 작년 12월 빅 스텝(한 번에 0.5% 금리 인상), 올해 2월 베이비 스텝(한 번에 0.25%포인트 금리 인상)으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춰 왔다. 그런데 파월의 이번 발언은 3월 21~22일 열리는 3월 정례 통화 정책 회의에서 다시 ‘빅 스텝’을 밟게 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4.5∼4.75%에서 단번에 5.0∼5.25%로 올라가게 된다. 이와 같은 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되면 올해 최종 금리는 6%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된다.

예상 밖의 강경한 매파(통화 긴축 선호) 발언에 시장은 벌써부터 요동치고 있다. 주가지수는 급락했고 국채 금리는 급등했다. 이 발언이 나온 날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일보다 1.72% 떨어지며 올해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통화 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 금리는 12bp(1bp=0.01%포인트) 이상 올라 5%를 돌파한 상황이지만 10년물 국채 금리는 3.97% 수준을 유지하며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달러화 가치 또한 큰 폭으로 올라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ICE 달러지수는 0.91% 상승했다. ‘더 높은 금리를 더긴 시간 유지할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현실과 따로 노는 ‘경제 지표’…경기 침체는 없다?
“Fed의 금리 인상은 수백만 명의 실업자만 양산할 뿐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데 별 효과가 없다. Fed는 지금 사람들의 삶으로 도박을 하고 있는 중이다.”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 직후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이 내놓은 평가다.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해고 소식이 연이어 들리는 와중에 장바구니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제조업마저 빠르게 식어 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Fed는 그동안 한두 달간의 지표로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혀 왔다. 그런데도 Fed는 추가적인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경제 지표가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경기 침체’의 징후들이 만연함에도 경기 지표는 건재한 상황을 두고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표상으로는 오지 않는 경기 침체를 두고 ‘고도 침체(godot recession)’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의 경제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들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모두가 경기 침체를 기다리고 있지만 결국 오지 않고 있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경기 침체를 판단하는 가장 일반적인 지표는 국내총생산(GDP)이다. 일반적으로 GDP가 2분기 연속 하락하면 ‘경기 침체’로 판단한다. 지난해 미국의 GDP 성장률은 1분기와 2분기에 걸쳐 각각 마이너스 1.6%, 마이너스 0.6% 수축하며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가 커졌다. 하지만 3분기 3.2%, 4분기 2.9%로 성장하며 ‘연착륙(소프트 랜딩)’ 혹은 ‘무착륙(노 랜딩)’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던 상황이다.
 “경제 지표 좋아 금리 더 올린다”는 파월…체감 경기와 지표는 왜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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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로는 이 GDP만으로 ‘경기 침체’를 판단하는 경우는 없다. 노동 시장과 소비자 및 기업 지출, 산업 생산 및 소득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판단한다. 그중 Fed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가장 먼저 챙기는 지표는 소비자물가지수(CPI)다. 음식·주택·의료·교통·교육처럼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지불하는 가격의 변화를 측정한다. 일종의 장바구니 물가다. 지난 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전년 6.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다.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았다. PPI는 원자재 및 에너지와 같은 생산자의 투입 비용 변화를 반영하는 지표다. CPI와 PPI의 상승은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Fed가 ‘추가 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데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 지표는 바로 노동 시장의 상황을 보여주는 ‘고용 지표’다. 지난 2월 미국의 실업률은 3.4%를 기록했다. 54년 만의 최저치다. 정리 해고 이후 받는 실업 수당 역시 기록적으로 낮은 수치다.

최근 미국은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해고 사태를 겪고 있는 중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빅테크 기업들에서 시작된 정리 해고가 향후 부동산을 비롯한 다른 산업 분야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현실은 이와 같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지표상으로는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마치 미국 경제가 ‘여전히 성장 중’이라고 보이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Fed가 ‘뜨거운 고용 시장’을 경계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실업률이 낮을 때 일반적으로 고용주는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해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임금 상승률을 높이고 상품·서비스 비용이 증가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Fed가 목표로 하는 인플레이션 2%를 맞추는 데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탄탄한 경제 지표’에도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결과에 대해 더욱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거대한 두 가지 변수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지금은 특수 상황이다. CPI나 실업률과 같은 경제 지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을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CPI는 계절적 영향에 따라 가격이 떨어지는 식료품이나 제품 등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식료품 등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계절적 완화 요인이 사라진 상황이다. CPI나 PPI의 상승 요인을 보다 섬세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 밖에 팬데믹의 영향 또한 노동 시장의 구조를 상당히 바꿔 놓았다. 많은 이들이 몸이 아프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직장에서 대거 이탈해 나왔고 지금의 노동력 부족은 ‘여전히 미국 노동 시장이 팬데믹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지금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요인은 탄탄한 고용 시장과 그로 인한 임금 상승률이 아니라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른 요인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특히 오늘날의 임금은 고용주와 노동자의 계약 기간과 시차를 고려할 때 경기 상황을 반영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기 후행 지표’임에도 Fed가 마치 ‘임금 상승률 둔화’를 물가 하락의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늘어난 소비, 반등하는 주택시장…한 꺼풀 벗겨야 보이는 ‘진짜 이야기'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난 2월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하는 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7을 기록했다. PMI는 5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은 확장, 그 이하는 위축을 나타낸다. 현재 4개월 연속 기준선 50을 밑돌고 있다. 경제 지표에 따르면 이 분야에 수많은 신규 고용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산업 생산은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제조업 신규 주문 규모 또한 지난 2월 기준 6개월 연속 감소세다. ISM에 따르면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최근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미국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미국 수출 주문이 7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이 미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1%다. 하지만 경제의 뿌리나 마찬가지인 제조업의 부진은 강력한 ‘경기 침체’의 신호다. 많은 이들이 PMI를 심상치 않게 바라보고 있는 이유다.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 또한 강력한 경기 침체의 전조 현상으로 일컬어진다. 일반적으로 이자율은 단기에서 장기가 될수록 높아진다. 그런데 가끔 단기 이자율이 장기 이자율보다 높아질 때가 있다. 국채 금리는 국채 가격이 상승했을 때 하락한다. 국채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국채를 ‘팔고자 하는 사람’보다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때다. 일반적으로 향후 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면 안정성이 높은 국채 장기물에 수요가 몰리게 되고 이로 인해 금리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현재 미국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 폭은 1% 이상으로 벌어져 있다. 1981년 폴 볼커 당시 Fed 의장이 경기 후퇴에도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상쇄하기 위해 금리를 초고속으로 인상했던 이후 처음이다.
 “경제 지표 좋아 금리 더 올린다”는 파월…체감 경기와 지표는 왜 다른가
 “경제 지표 좋아 금리 더 올린다”는 파월…체감 경기와 지표는 왜 다른가
미국의 주택 시장 또한 기준금리 상승 국면에서 경제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풍향계가 된다. 지난 2월까지 미국 부동산 시장은 침체 일로를 걷고 있었다. 매매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주택을 구매하는 이들 또한 크게 줄었다. 주택 건설 기업들은 신규 프로젝트의 규모를 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예상하지 못한 반등 신호가 잡히고 있는데 오히려 이와 같은 ‘반등 신호’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월 기준 신규 주택 판매량은 10개월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년여간 부동산 거래가 가라앉으며 그동안 ‘억눌린 수요’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미국 부동산 시장에선 ‘부동산 시장 바닥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매매가 늘어나면 주택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금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동산 시장이 Fed의 긴축 강화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Fed는 보다 공격적으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와 같은 미국 부동산 시장의 지표들과 관련해 “지금 미국 주택 시장이 반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해 미국 주택 건설 투자는 5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며 “신규 주택 착공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주택 투자는 여전히 감소하고 있고 이는 경기 침체의 분명한 신호”라고 해석했다.
<돋보기> 8명의 경제 학자 손에 달린 ‘미국의 경기 침체’
미국의 경기 침체 여부는 공식적으로 미국 국가경제연구국(NBER :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이 판단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NBRE 산하의 ‘경기 사이클 판정 위원회(Business Cycle Dating Committee)’에 소속된 8명의 경제학자 그룹이다. NBER에서 이들을 직접 선정하는데 현재 이 8명 모두 60세 이상의 명문대 소속 거시 경제 및 경기 변동 전문가들로 알려져 있다. 임기는 없고 비정기적으로 회의를 하고 심의 또한 비공개다. 이 때문에 미국의 경기 침체를 판단하는 이들 8명의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 역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노동 시장과 소비자 및 기업 지출, 산업 생산 및 소득을 포함한 데이터 전반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미국의 경기 침체 여부를 판단한다. 이 때문에 NBER이 공식적으로 경기 침체를 선언하기까지는 대개 8~9개월이 소요되고 길게는 1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미국 경제의 ‘경기 침체’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NBER이 공식적으로 경기 침체를 선언하기 전까지 이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8명의 경제학자 그룹의 ‘다양성 부족’을 문제 삼는 의견도 높아지고 있다. 인종적·성적·종교적 다양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 배경마저 비슷한 이들에게 경기 침체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다. ‘경기 침체’가 현실과 괴리돼 지표만으로 결정지어지는 데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들이 경기 침체를 판단하는 지표가 대부분 ‘정부가 제공하는 통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 삼는 이들도 적지 않다. 통계가 작성되기까지 오랜 시간 차이가 존재하는 데다 민간 기관에서 현실 경제를 반영하는 다양한 지표를 제공받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환경임에도 정부 중심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 현실과 통계상의 괴리가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