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제2의 6·25전쟁 될 수도’…미궁으로 가는 전쟁 이후의 세계 질서
[비즈니스 포커스] 2022년 2월 24일 아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별 군사 작전’의 개시를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몇 개월에 걸쳐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집결시켜 왔다. 오직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극소수만 알고 있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이를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평화롭던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은 순식간에 폐허가 됐고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고 밀리는 접전이 1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의 초반 압승이 예상되던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만만치 않은 반격에 교착 상태에 접어들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6분의 1을 점령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 등 서구의 무기 지원을 등에 업고 잃어버린 영토의 일부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전선의 돈바스 지역에서 바흐무트 등 핵심 거점을 탈환하기 위해 치열한 교전을 진행 중이다.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 ‘출구 전략’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승자 없는 전쟁…가능성 모두 열려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발한 최대 규모의 무력 전쟁이다. 전쟁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 대 러시아로 대변되는 반(反)서방의 대결 구도를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신(新)냉전 시대’의 본격화다.
전쟁이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전쟁에 대한 피로감도 높아지는 중이다.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와 식량 위기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이미 전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의 장기화는 세계 경제에 더욱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이 전쟁이 단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후 시나리오는 결국 세 가지 중 하나다. 장기전 혹은 종전, 아니면 휴전이다. 현재로서는 이 세 가지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는 상황이다.
먼저 전쟁의 장기화다. 푸틴 대통령은 현재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고 우크라이나 또한 목숨을 건 싸움이 계속되는 중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3월 대공세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지난 2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군의 전투기와 헬리콥터가 접경 지역에 집결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며 “지상전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러시아군이 전세 역전을 위해 공중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또한 반격을 준비 중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군사 원조를 약속했다. 유럽연합(EU)은 지대공 미사일 등 방공 시스템과 대전차 무기 등 군사 물자를 지원할 계획이고 미국도 추가로 미사일 등 각종 무기와 탄약을 지원할 방침이다.
마이클 클라크 영국 엑시터대 전략연구소장은 최근 영국의 BBC와의 인터뷰에서 “3월 양측의 총공세 이후 향후 판세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양측 모두 전장에서 이들의 운명이 결정되기 전까지 전쟁을 계속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느 한쪽으로 판세가 기울어지기 힘들 만큼 양측이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승자 없는 이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러시아는 이미 병력 규모 면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향후 추가 군사력을 동원하더라도 큰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우크라이나 또한 인력과 물자 부족 등으로 힘든 상황이다. 양측이 모두 봄철 대공세를 준비 중이지만 향후 전쟁 강도는 점차 낮아질 것이고 이에 따라 양측이 전선에서 진퇴를 반복하는 교착 상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종전 협상’과 관련한 논의도 점차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2022년 12월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 철수와 영토 회복 등을 담은 평화 공식 10개조를 제안한 바 있다. 이에 G7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 또한 이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의지를 명확히 하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화 협상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지만 러시아는 “평화 계획이 아닌 적대 계획”이라는 비난과 함께 즉각 반발에 나섰다. 점령지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면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오는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논하고 종결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평화 협상의 가능성은 현재로선 요원해 보인다. 영국 시사 주간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 분석 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우크라이나가 내민 ‘10대 조건’ 협상안을 러시아가 이미 걷어찼기 때문에 향후 양측이 향후 테이블에 마주 앉더라도 곡물 수출 협정 정도로만 주제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며 “어느 쪽도 양보가 필요한 종전안에 동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인 만큼 평화 협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구 전략으로 ‘휴전 협상’ 부각되는 이유
최근 들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제3의 시나리오는 한국식 ‘동결 전쟁’ 모델과 같은 휴전 협상이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이 발행하는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돌아온 6·25전쟁”이라는 칼럼을 기고해 큰 관심을 모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6·25전쟁은 기원과 규모 측면에서 매우 다르다. 하지만 이 두 전쟁은 ‘새로운 세계 질서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그 유사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3년간의 6·25전쟁은 세계 정치를 미국과 소련의 분열로 이끄는 분수령이 됐다. 냉전이 가속화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이 결성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또 다른 지정학적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미국과 중국이 그 중심이다. 포린폴리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특히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파트너십은 지난 10여 년 동안 경제·첨단 기술·군사·정치 분야까지 꾸준히 확대돼 왔다. 특히 전쟁 이후 러시아가 서방에서 고립된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중국과의 강력한 유대 관계는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을 구심점으로 한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만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향후 ‘한국식 동결 전쟁’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식 ‘휴전 협상’ 시나리오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한국의 38도선’과 같은 군사 분계선을 그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분할 통치하는 방식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어느 한쪽도 완벽한 승리는 아니지만 어느 한쪽도 완벽한 패배 또한 맛보지 않는 시나리오다. 지금과 같은 전쟁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한국식 동결 전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선이다.
신냉전 체제의 양 축인 미국과 중국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도 ‘휴전 협상’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높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현재 우크라이나에 ‘흔들림 없는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얻은 것도 많다. 이번 전쟁으로 유럽은 에너지 등 경제 협력 분야에서 러시아와 더 이상 협력을 이어 갈 수 없게 됐고, 유럽은 전쟁의 공포를 실감한 뒤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국가들의 국가 보안이 강화되며 미국산 무기 수출도 늘었다. 특히 NATO 국가들은 군비 지출을 늘리며 미국산 무기로 무장하고 있고 중국 견제에도 동참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내부의 압박 또한 그만큼 거세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의회 중간 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 의원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 이상 납세자의 돈을 대외 전쟁에 퍼부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인 부담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의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 전쟁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노리고 있는 중국 또한 전쟁에서 얻은 이익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원유를 싼값에 사들여 비축하며 큰 경제적 이득을 챙겼다. 중국은 제재로 고립된 러시아의 필수품 공급처가 됐고 그 결과 러시아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중국은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존재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전쟁에서 얻는 이익을 지속하면서도 지금과 같은 소모전을 끝내기 위한 적절한 명분이 필요한 상황이다.
포린폴리시는 “6·25전쟁 후 전 세계는 고도로 양극화되고 냉전은 심화됐지만 상대적으로 정적이고 안정적이었다”며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신냉전 체제는 과거와 비교해 덜 양극화될 것이지만 그만큼 덜 안정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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