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시혁 “하이브스러운 결정 내렸다”…명확해진 K팝 위기 돌파에 집중한다
하이브가 보유한 15.8% 지분 처리 방법 논의 중

SM 인수전 카카오 ‘부전승’…하이브는 글로벌 M&A 예고
“SM엔터엔터 인수 비용이 그 가치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수만 씨는 ‘이길 수 있는데 왜 그만하지?’ 이 정도 말씀만 하셨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3월 15일 SM엔터엔터테인먼트(이하 SM엔터) 인수전에 얽힌 막전막후를 직접 밝혔다. SM엔터 인수 과정에서의 출혈 경쟁과 시장 과열, 그로 인한 주주 가치 훼손과 내부 직원들의 스트레스까지 언급했다.

방 의장이 한국에서 SM엔터 인수전에 대해 직접 입을 연 것은 처음이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3월 15일 열린 관훈포럼에서 방 의장은 “이런 자리를 자주 갖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솔직하게 말씀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K팝에 대한 음악적·산업적 고민과 함께 인수 과정에서 이수만 SM엔터 전 총괄 프로듀서(PD)와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시장은 SM엔터 인수전을 카카오의 ‘승리’로 해석했다. 이미 15.8%의 지분을 확보했던 하이브가 먼저 인수 절차를 중단하고 카카오에 손을 내밀었다. SM엔터 주식 공개 매수 과정에서 SM엔터 주가가 연초 대비 2배 뛰면서 시장이 과열됐고 오히려 하이브와 카카오의 주가가 급락하자 부담을 느낀 것이다.

이 다툼을 지켜보는 주주들과 팬들의 시선 역시 냉랭해졌고 SM엔터 팬들은 피로감을 느꼈다. SM엔터 인수를 위한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가는 데다 소액 주주 설득, 공정거래위원회 심사 등 남은 절차도 부담이었다. 특히 인수 후 명확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두 회사가 3월 31일 정기 주주 총회 전까지 지분 확보 경쟁을 벌일 것이란 시장의 예상과 달리 급히 타협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인수 비용 부담 느낀 하이브, 카카오는 부전승
SM 인수전 카카오 ‘부전승’…하이브는 글로벌 M&A 예고
3월 3일까지는 하이브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법원이 카카오의 SM엔터 신주·전환사채 인수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카오가 3월 7일 주당 15만원에 SM엔터 주식을 공개매수해 지분 40%를 확보하겠다고 나섰다.SM엔터의 지분 4.91%를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가 이 가격에 추가로 약 35%의 SM엔터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1조2000억원 이상을 투입하겠다는 소리였다.

하이브는 추가 지분 확보 등 등 SM엔터 인수전을 이어 간다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런 피 튀기는 돈의 전쟁을 통해 SM엔터를 인수하더라도 다음 관문이 남아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독과점 심사를 넘어야 하는데 SM엔터 경영진은 하이브가 SM엔터를 인수하면 K팝 시장 매출의 66%를 차지하는 독과점적 기업이 생기게 된다고 주장했다.

금융 당국도 SM엔터 인수전을 예의주시했다. 카카오는 하이브의 공개 매수 기간이었던 2월 16일 한 단일 계좌에서 SM엔터의 지분 2.9%를 매입했고 이에 대해 하이브가 금융감독원에 시세 조종 행위가 아닌지 조사해 달라고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방 의장에 따르면 하이브가 SM엔터 인수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다. 하이브가 SM엔터측에 인수를 두 번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하이브 내부에서도 찬반 의견이 치열했다. 찬성 측은 ‘글로벌 성장 동력을 위해 K팝의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쪽이었고 반대는 ‘그 비용을 다른 분야에 쓰는게 낫다’는 의견이었다.

2023년에는 이 총괄PD가 방 의장에게 직접 연락했다. 그때 하이브 내부에서는 과거 인수를 반대했던 요인이 많이 사라졌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카카오가 뛰어들면서 인수 가치 대비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거대해졌다.

그는 “인수비용은 외부에서 볼 때는 숫자만 보이지만 인수하는 쪽에선 유무형의 비용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며 “일선 직원들이 느낀 감정 노동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그때 이건 하이브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글로벌 기업이자 혁신 기업으로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고민 끝에 그는 인수 의사를 접었다. 하이브, 또 다른 M&A 예고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SM엔터는 카카오 품에 안긴다. 카카오는 향후 공개 매수 절차를 거쳐 SM엔터의 경영권을 확보할 예정이다. 하이브는 카카오·SM엔터와 플랫폼 차원에서 협력을 이어 가기로 했다. 3월 26일까지 진행될 공개 매수에 성공하면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는 1조2500억원을 들여 SM엔터의 지분율을 4.91%에서 39.91%까지 확보하게 된다.

하이브가 이 총괄PD에게서 사들인 SM엔터 지분 15.8%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방 의장 역시 이날 “인수와 관련된 담당자들을 모두 휴가 보내서 아직 내용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이브가 SM엔터의 지분을 계속 들고 있을 수 있지만 그러면 공정위의 기업 결합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하이브에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이브가 지난 2월 공개 매수를 진행했기 때문에 향후 6개월간 블록딜(시간외 대량 매매)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하이브가 카카오의 공개 매수에 응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양측의 인수전이 마무리된 이후 15만원을 넘겼던 SM엔터의 주가가 11만원까지 떨어진 만큼 장내 거래는 손해다. 15만원에 공개 매수에 응하는 선택지가 가장 유력한 이유다.

K팝 역사상 가장 큰 인수·합병(M&A)이었던 SM엔터 인수전이 막을 내리자 이제 눈은 세 기업의 미래로 쏠린다. 카카오는 SM엔터 인수 후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가 SM엔터 인수전에 사활을 걸었던 이유는 내수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였다. 카카오가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선택한 무기는 지식재산권(IP)이다. 카카오는 카카오엔터 산하에 총 54개 자회사(지난 3분기 기준)를 두며 콘텐츠 사업을 확장해 왔다.

카카오엔터는 이들 자회사를 뮤직·스토리·미디어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운영 중이다. 하나의 IP로 영역을 확장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한류문화센터장)는 “카카오가 SM엔터를 인수하면서 기존에 보유한 유통 경쟁력과 2차 IP를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통해 수익성을 다각화 하고 콘텐츠 역량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 시장에서는 카카오가 SM엔터 인수를 통해 카카오엔터의 기업공개(IPO)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복 있다. ‘중복 상장’ 논란으로 주요 자회사 상장을 미루던 카카오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프리 IPO(상장 전 지분 투자)를 추진하며 카카오엔터 상장에 시동을 걸었다.

하이브는 올해 또 다른 M&A를 예고했다. 방 의장은 “미국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게 하이브의 첫째 목표”라며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올해 많은 기업 인수와 투자 발표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이브는 방탄소년단(BTS)을 통해 K팝이 뚫지 못하던 북미에서 입지를 다져 왔다. 하지만 BTS가 공식 활동을 중단하면서 K팝의 큰 물줄기 하나가 멈췄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K팝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는 명백한 지표들이 발표되고 있다. 하이브는 이 같은 한계를 넘기 위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을 인수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저스틴 비버 등 세계적 팝스타가 속한 미국 ‘이타카홀딩스’를 9억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올해 2월에는 힙합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미국 레이블 QC 미디어 홀딩스(QC Media Holdings)를 인수했다. 방 의장은 “지금은 라틴 음악 시장의 톱 티어 레이블과 미국에서 가장 핫한 레이블 두 군데를 지켜보고 있다”며 “장르별로 톱 티어 회사들을 인수해 미국 시장에서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로 존재감을 키워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