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품목 추가되며 가격 상승…고금리에 할부 구입도 부담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박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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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추 모(32) 씨는 올해 1월 현대자동차 아반떼를 계약했다. 부분 변경(페이스 리프트)된 아반떼가 한두 달 뒤 나온다고 딜러가 귀띔해 줬지만 결국 기존 모델로 샀다. 그는 “주변에서 ‘신형 사는 게 낫지 않나’라는 조언이 있었지만 기존 모델은 할인율이 있는 반면 신형은 100만원 정도 가격이 올라간다더라. 기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고금리의 여파로 신차 할부 이자가 부담인 상황에서 예산이 덜 드는 쪽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보통 완전 변경(풀 체인지) 또는 부분 변경 소식이 알려지면 현세대 모델 판매는 감소한다. 큰맘 먹고 사는 만큼 신형 모델을 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변했다. 고물가 행진에 신차 가격도 고공 행진하고 있다.

여기에 고금리도 덮쳤다. 지난해 초 연 2~3%(36개월 기준) 수준이었던 신차 할부 금리는 현재 8% 내외로 뛰었다. 지난해보다 이자 부담이 3~4배 커져 실제 구매 가격이 늘어나게 됐다. 자동차 할부 금리는 계약 시점이 아닌 출고 당시 고정 금리로 정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이자가 얼마나 더 늘지 알 수 없다.

비용 부담이 높아지면서 추 씨처럼 신형 모델이 나오기 전 기존 모델을 구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구모델 선택하는 소비자 증가
숫자로도 나타난다. 올해 하반기 부분 변경 모델을 준비 중인 기아 카니발은 기존 모델 판매량이 줄지 않고 있다. 기아에 따르면 올해 1~2월 판매량은 각 6904대, 6039대로 2022년 1~2월(각 4114대, 3127대)과 비교하면 오히려 2배 정도 증가했다.

최근 완전 변경 모델과 부분 변경 모델을 내놓은 현대자동차의 그랜저와 아반떼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에 따르면 그랜저는 2022년 11월 7세대 모델을 출시했는데 10월에도 기존 모델의 차량을 4661대 팔았다. 이는 지난해 월평균 판매량 약 5175대를 조금 밑도는 수준이었다. 1년간 기존 모델의 판매 대수는 5만7367대로 월평균 판매량은 4780대다.

아반떼는 신차 출시 직전인 올해 2월 판매량 6257대, 1월에는 6018대를 기록했다. 2022년 아반떼의 월평균 판매량(약 4600대)을 훌쩍 뛰어넘는다. 부분 변경된 신형 아반떼는 적게는 90만원에서 크게는 150만원까지 돈을 더 주고 구입해야 한다.
◆신차 가격, 얼마나 왜 올랐나
‘카플레이션(자동차+인플레이션).’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자동차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2021년 말 언론에 등장한 단어다.

당초 카플레이션의 원인은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었다. 신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많은데 출고 대기는 길어지면서 자동차 시장 내 공급자 우위가 생겼다. 여기에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이 신차 가격 인상을 부추겼다.

완성차업계에선 최근 몇 년간 몇 가지 품목 변화만으로도 가격이 수백만원씩 큰 폭으로 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컨대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는 2022년 7월 연식 변경을 하면서 롱레인지 모델 가격을 4980만원에서 5410만원으로 인상했다. 직전 모델보다 8.6%(430만원) 올린 것이다. 1회 충전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가 29km(429km→458km) 늘었고 배터리 충전 효율성을 높인 기능이 탑재된 게 바뀐 부분이다.

고급 품목을 처음부터 탑재하거나 하위 트림을 없애면서 결과적으로 해당 차종의 평균 판매가가 높아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현대차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브랜드 중에선 전기차 GV60가 2022년 12월 연식 변경된 모델을 출시하면서 실제 구매가가 6000만원을 훌쩍 넘게 됐다. ‘페이스 커넥트(운전자 얼굴 인식으로 차량 도어 잠금 및 해제)’를 전체 트림에 기본으로 적용하는 등 고급 안전·편의 품목을 탑재했다.

현대차의 그랜저도 2022년 5월 연식을 변경하면서 전체 트림의 가격을 90만~100만원 정도 올렸다. 예컨대 인기 트림인 르블랑에는 기존 상위 트림에만 적용했던 스웨이드 내장재와 뒷좌석 수동 커튼 등을 기본 품목으로 추가했고 최상위 트림인 캘리그래피에는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기본으로 탑재되는 식이다.

한국GM도 2022년 5월 인기 모델인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의 연식 변경 모델을 출시하면서 고가 모델을 중심으로 트림을 축소했다. 하위 트림이던 LS, LT 트림은 사라지고 상위 3개 트림인 프리미어·액티브·RS만 남았다. 트림 축소에 따라 시작 가격은 종전 1959만원에서 2489만원으로 530만원 상승했다.
◆전동화 고급화 바람도 가격 상승 견인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일각에선 전동화 전환도 카플레이션을 이끄는 요인으로 꼽힌다. 차량용 반도체가 내연기관 대비 두 배 이상 많이 소요되고, 전기차 제조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값이 더해지면서 출고가도 더 비싸게 책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급화 바람도 가격 상승을 견인하는 요인이다. 수입 자동차 중에서는 1억원 이상 고가형 모델의 판매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고가 수입차는 2022년 7만1899대 팔렸다. 전년(6만5148대)보다 10% 정도 성장했다. 2018년 4%대였던 판매 비율이 4년 새 두 배 넘게 뛰었다.

제네시스가 현대차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판매 비율(국내·승용차)은 2020년 19.43%(7만4069대), 2021년 24.34%(7만1982대), 2022년 29.18%(7만6470대)를 기록했다. 제네시스는 4310만원에서 시작하는 G70 슈팅 브레이크, 5154만원부터 시작하는 GV70 등 일부 모델을 제외하면 모두 5500만원 이상의 가격이 책정돼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승용 부문 평균 가격은 5031만원6000원으로 처음으로 5000만원대를 돌파했다. 전년도의 4758만7000원과 비교해 300만원 가까이 인상된 수치다. 2021년(4182만3000원)과 비교하면 849만3000원이 올랐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20년에는 3046만원이던 국산 승용차 평균값이 2021년에는 3277만원, 2022년 상반기(1∼6월)에는 3511만원으로 오름세를 보였다. 신규 등록된 수입 승용차 가격도 같은 기간 6309만원에서 7834만원으로 2년 사이 약 1500만원이 올랐다.

올해도 차량 가격 인상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올해 초 대형 전기차 더 뉴 EQS SUV(1억5270만원 시작)를 선보였고 기아는 상반기 중 현대차그룹의 첫 대형 전기 SUV인 ‘EV9’을 내놓을 예정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