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핵 대량 생산”…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여차하면 핵 만들 수 있게 잠재력 확보를”

홍영식의 정치판


북한 핵·미사일 위협 방식이 갈수록 다양화·노골화하고 있다. 2023년 들어서만 새해 첫날부터 초대형 방사포를 쏘더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차례, 순항 미사일 잠수함 발사, 미국 항공모함을 겨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이 잇따랐다. 지난해엔 극초음속 미사일에 8자형·파장 형태의 회피 기동을 선보였다. 모두 한국군이 구축 중인 ‘3축 체계’로 방어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핵·미사일 실전 운용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3월 19일 전술탄도미사일(KN-23·이스칸데르)을 800m 표적 상공에서, 3월 22일 전략순항미사일을 600m 상공에서, 3월 27일 탄도미사일을 500m 상공에서 각각 핵 폭발 시험을 했다.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전술핵은 폭발력이 보통 10~20kt(1kt은 TNT 1000톤 파괴력) 정도 된다. 미군이 1945년 8월 히로시마 상공 570m에서 터뜨린 16kt 규모의 원자폭탄은 사망자 14만 명을 낳았다. 전술핵이 서울시청 800m 위에서 터지면 사상자가 40만~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20kt 규모의 핵폭탄이 서울 용산 상공 100m에서 폭발할 때는 사망자가 61만여 명, 부상자가 55만여 명에 달한다는 게 군 당국의 분석이다. 고공 핵폭발 방식의 전자기 충격파(EMP) 공격을 한다면 한국 전역의 전자 기기를 불능 상태로 만들고 군 지휘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을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
◆히로시마급 서울 상공에서 터지면 사상자 100만 명

여기에 더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월 28일 “상상 초월의 핵무력이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게 완벽하게 준비돼야 한다”며 기하급수적인 핵무기 생산까지 선언했다. 여러 종류의 ‘전술 핵탄두’도 처음 공개했는데, 핵탄두 소형화·경량화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핵 어뢰 등에 범용 가능하다. 핵무기를 실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으로, 안보 지형을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북한은 7차 핵실험에서 ICBM, 중거리·단거리 미사일에 적합한 다(多)탄두 실험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kt 폭발력의 소형 전술핵부터 전략 핵탄두까지 실험에 성공한다면 ‘핵무기 풀 세트’를 갖추게 된다. 북한은 ‘핵 무인 수중 공격정’의 수중 폭발 실험을 한 사실도 잇따라 공개했다. 80∼150m의 바닷속에서 59시간 12분간 타원·8자 형태로 잠항해 가상 항구 수역에서 수중 폭발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11년 전부터 개발에 착수해 50여 차례 시험한 결과 치명적인 타격 능력을 완벽하게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초강력 방사능 해일을 일으켜 우리 함선과 작전항 파괴, 소멸을 목적으로 한다고 공언했다.

북한 스스로 신종 비밀 병기라고 한 이런 방식의 핵 위협 공개는 처음으로, 전력화 단계에 이르렀다면 여간 위협적인 일이 아니다. 더욱이 북한 잠수함·잠수정 능력은 한국보다 훨씬 뛰어나다. 잠수함 탐지도 어려운데 초소형 무인 공격정은 더 그렇다. 결국 ICBM과 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 방사포, 핵 어뢰에 핵탄두를 얹으면 한국은 물론 미국 본토, 주일미군 기지, 미 항공모함 등이 북핵 사정권에 들게 된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러시아도 핵 위협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방국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 배치를 선언했다. 이 말대로 된다면 러시아가 냉전 후 국외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처음이다. 러시아는 앞서 2월 핵군축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공식화하며 핵무기 경쟁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2010년 실전 배치 전략 핵탄두와 운반체를 각각 1550기, 700기로 제한하는 뉴스타트에 합의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여러 차례 핵 사용 위협을 했다. 핵 타격 훈련을 올해 두 차례 실시했고 충돌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러시아는 세계 1위 핵탄두(약 6000기) 보유국이다. 3월 28일엔 동해에서 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해 북한을 측면 지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2년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 연설에서 ‘강대한 전략적 억지력 체계 구축’을 선언했다. 시 주석은 지난 3년간 핵·미사일 부대를 33% 늘렸다. 중국은 200~300기인 핵탄두를 2030년 1000기로 늘릴 것으로 미국 국방부는 예상하고 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3월 21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에 미국이 호응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대치 전선을 가파르게 하면서 북한과 밀착하고 있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 규정을 어기고 ICBM을 쏴도 제재는커녕 의장 성명조차 막고 있다. 북한으로선 중국과 러시아가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 주고 있어 핵·미사일 개발에 거리낌 없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북·중·러가 뭉치고 있는 데다 북한은 수중·공중·지상에서 핵 실전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방어 역량을 보면 갑갑하다. 북한은 장사정포, 핵 배낭에 실을 수 있는 미니 핵탄두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발사 장소도 열차·땅속·저수지·절벽·이동식 차량·바지선 등 다양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형 3축 체계는 지상의 미사일 공격만 막을 수 있는 데다 구축 완료까지 수년이 더 걸린다. 불시에 여러 곳에서 공격한다면 킬 체인 원점 타격 능력을 분산시키는 등 3축 체계로도 막기 힘들다.
◆일본은 美와 원전 협정 개정 통해 6개월 내 핵 개발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3축 체계 획기적 강화뿐만 아니라 사이버전 등으로 미사일 발사 전 교란, 파괴하는 이른바 ‘발사의 왼편 전략’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핵 무인 수중 공격’ 방어를 위해선 북한 해군 기지 부근 물속에서 장시간 상시 감시가 가능한 핵추진 잠수함을 갖는 것도 시급해졌다.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은 한·미 핵전력 ‘공동기획·공동연습’을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체 핵무장이 한·미 동맹 훼손과 국제 제재 등 감수해야 할 비용이 커 당장은 실현하기 어렵다면 핵 잠재력 확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 위협이 다급한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핵무장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짜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기술 및 시설 확보, 전술핵 배치 장소 구축 등을 사전에 준비해 둘 수 있다.

일본은 미국의 동의를 얻어 핵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 47톤을 확보해 6개월이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20% 미만의 우라늄 저농축 허용을 받았고 1988년 미·일 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일본 내 재처리와 플루토늄 전환 시설, 플루토늄 핵연료 제작 공장 등을 두고 플루토늄을 보관할 수 있는 포괄적 사전 동의를 얻었다. 반면 한국은 2015년 미국과 원자력협정 개정 당시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지만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원전 연료인 5% 저농축 우라늄조차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4월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와 함께 핵 공유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지 주목된다.

[돋보기]발사의 왼편 전략
한국형 3축 체계는 선제 타격하는 킬 체인(kill chain), 미사일 방어(KAMD), 공격받은 후 압도적 전력으로 대규모 보복에 나서는 대량 응징 보복(KMPR)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북한이 불시에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미사일을 쏜다면 3축 체계로 막기 어렵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레프트 오브 론치(left of launch)’, 즉 ‘발사의 왼편’ 전략이다. 사이버 전자전과 통신망 교란 등을 통해 북한이 발사하기 전 또는 직후 미사일이 폭파되도록 하거나 기지·이동식 발사대를 무력화한다는 개념이다. 2016~2017년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8차례 중 7차례가 실패했는데 이때 미군이 ‘발사의 왼편 전략’을 활용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