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랜드 신드롬에 매해 커지는 키덜트 시장

사진:한소희 인스타그램
사진:한소희 인스타그램
요즘 2030세대 생일파티에 빠질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 있다. 인스타그램에 #생일을 검색하면 쏟아지는 수십만 개의 게시글 중 대다수가 ‘이걸’ 착용하고 찍은 인증사진이다. 작년 품절 대란까지 일으켰던 주인공은 바로 1~3천 원짜리 공주 목걸이 세트. 유아동을 대상으로 출시한 제품이지만, 여러 셀럽의 인증샷이 SNS에서 화제를 모으며 MZ세대의 파티 소품으로 자리 잡게 됐다.
번개장터 웨딩피치 요술봉 판매글 갈무리
번개장터 웨딩피치 요술봉 판매글 갈무리
네이버 웨딩피치 요술봉 판매글 갈무리
네이버 웨딩피치 요술봉 판매글 갈무리
1990년대 말 어린 소녀들을 티비 앞에 집합시켰던 애니메이션 ‘웨딩피치’를 기억하는가? 웨딩피치는 매회 요술봉에 주문을 걸고 악마들을 물리치며 ‘사랑의 힘’을 교훈처럼 전파하곤 했다. 당시 완구 업체가 같은 디자인의 요술봉 장난감을 만들어 출시했고, 어린 딸이 있는 집의 필수품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20년도 훌쩍 지난 현재, 다시 웨딩피치 요술봉 열풍이 불고 있다. 절판된 상태라 중고마켓에서만 제품을 구할 수 있는데, 요술봉 단품이 160~200만 원대로 판매되고 있으며 박스 구성품까지 갖춰져 있는 경우 98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웨딩피치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현재 20대 후반~30대 초중반. 이제 구매력까지 갖춘 그들은 소비를 통해 추억을 회상하고 동시에 마음껏 동심을 펼치고 있다.

초기 버전으로 출시된 미미 인형도 중고마켓에서 최고 120만 원에 판매되고 있는 걸 보면 동심을 소비하는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닌 게 확실하다.

이처럼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어릴 적 감성과 분위기를 간직하고 싶어 하는 ‘키덜트(Kidult)’가 늘고 있다. 이들은 장난감뿐만 아니라 문화, 패션 등 전 분야에서 적극적인 소비를 통해 키덜트 문화를 즐긴다. 철없는 취급을 받던 이전과 달리, 현재 키덜트는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특히 MZ세대는 키덜트 문화를 트렌디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이를 즐기는 것을 SNS에 인증하는 등 자랑스레 여긴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미지. 사진=NEW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미지. 사진=NEW
키덜트 파급력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9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슬램덩크’를 영화관에서 개봉했는데, 석 달 만에 429만여 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이는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중 역대 흥행 1위 수치다. 또 슬램덩크 한정판 유니폼과 피규어를 구하기 위한 소비자들의 대기행렬이 이어졌고, 팝업스토어 매출은 하루 평균 1억 원을 달성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추억을 회상하러, Z세대는 뉴트로 감성에 호기심을 느끼며 극장에 향한 것으로 분석된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나이 들기를 거부하며 취향에 맞는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는 MZ들의 성향은 피터팬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그 때문에 키덜트들의 문화는 ‘네버랜드 신드롬’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네버랜드는 피터팬이 영원한 아이로 살아가는 공간이자, 억압되지 않고 마음껏 열망을 표출하고 자유를 누리는 공간으로, 키덜트의 이상향으로 볼 수 있다.

결혼 및 출산을 하는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자기관리를 하며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이들이 늘어났다.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MZ세대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대로 라이프스타일을 즐긴다. 또 OTT를 통해 애니메이션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과 SNS로 취향을 공유하는 문화도 키덜트 문화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키덜트 시장이 2014년 5,000억 원 규모에서 지난해 1조 6,000억 원까지 확대됐으며, 향후 최대 11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