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나 관계에서 비롯된 화는 혼자 조절하거나 해결하기 어려워…소통과 업무 조절로 원인 줄여야

[안주연의 ‘다시, 연결’]
“화낼 일이 아닌데…욱하는 마음이 조절되지 않습니다” [안주연의 ‘다시, 연결’]
Q. 내면의 화가 순간적으로 욱 하고 나오면 컨트롤이 안 됩니다. 현재 회사에 입사하고 5년 차부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못하면 점점 공격적으로 변하고 제가 해야 할 업무가 아닌 걸 시키면 화부터 납니다.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자기방어도 심해지고 화를 쉽게 내게 된 것 같아 괴롭습니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생각해 보면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닌데 그 순간과 상황에서 욱하게 되고 화를 내게 됩니다.

“너그럽게 그냥 넘어가라”, “들어도 그냥 한 귀로 흘려라”는 조언을 받는데 잘 안 되네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마인드맨션의원 제공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마인드맨션의원 제공
A. 안녕하세요 미희 님.

솔직한 이야기 보내줘 감사합니다. 미희 님의 편지는 매우 특별하고 또 위급함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업무 중의 감정적 어려움은 더 위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미희 님도 관리자로서의 역할 비중이 높아지면서 다른 팀원들과의 소통 중에 자주 화가 난다는 것에서 스트레스의 무게가 전해져 옵니다. 화의 시작과 강도가 잘 조절되지 않는 상황에 굉장히 심란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너그럽게 넘어가라, 들어도 한 귀로 흘려라는 조언을 받는데 그것이 잘 안 돼 방법을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미희 님이 애쓰고 있는데 잘되지 않는 상황이니 더 깊이 있는 질문과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희 님의 화의 상황을 들여다보고 그 뒤에 있는 마음까지 헤아려 대응책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미희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료실에서 혹은 사석에서 “저, 분노조절장애인 것 같아요”라고 걱정스레 이야기하는 많은 분들이 떠올랐어요. 분노조절장애라는 단어는 요사이엔 줄여서 ‘분조장’이라고 부를 만큼 널리 사용되는데 정확한 정신의학적 진단명은 아닙니다. 굳이 비슷한 정식 진단을 찾는다면 충동이 잘 제어되지 않아 파괴적인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를 생각해 볼 수는 있어요. 사실 이 진단명은 타인을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는 등 과격한 행동일 때만 적용됩니다. 최근 들어 물리적 파괴가 없더라도 폭언이나 위협적 행동이 자주 나타나면 진단할 수 있도록 개정됐지만 이를 적용하더라도 다수의 질문자들이나 미희 님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희 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왜 분노가 잘 조절되지 않아 문제(장애)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1) 분노가 부정적인 감정이니 이를 밖으로 드러내는 자체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2) 설사 화가 날 만한 상황이라고 해도 서서히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이나 상황에 욱 하고 갑자기 솟아올라 당황스럽고 화의 강도를 조절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3)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화 조절도 못하는 내가 부끄럽고 또 예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성격이 나빠진 것 같아서)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이런 전제를 가지고 걱정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제 경험상 감정 조절이 안 되고 공격적인 언행을 해 주변을 힘들게 하는 분들은 이런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요. 오히려 무난히 잘 지내다가 어떤 이유로 화가 조절이 안 되는 분들이 과하게 후회와 자책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 탓이오’, ‘제가 문제인 것 같아요’라는 자기 검열과 책임감은 그 말을 가장 덜 해도 될 분들이 짊어지는 때가 많은 것이 인간사의 아이러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 좀 덜 내고 싶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지금 삶의 스트레스 정도가 어떠냐고 물어봅니다. 열에 아홉은 최근 스트레스가 심해졌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 일들을 해 온 지 오래돼 피로가 극에 달한 상태일 때가 많아요. 이렇게 피로 상태일 때는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여러모로 나빠져요. 특히 긴장과 이완 모드를 조절해 주는 자율 신경계의 활동이 교란돼 쉴 때는 편히 이완하지 못하고 일할 때 적당히 집중할 수 없어집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을 쉬기 불편하거나, 식은땀이 나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하면서 몸이 편하지 않고 긴장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신경성 장애라고 불리는 다양하고 미묘한 신체적 불편들을 경험하게 되고 전반적 컨디션에도 기복이 생기면서 돌발적인 상황에 대응하고 감정을 조율하는 일이 어려워집니다.

여기에 더해 미희 님의 분노는 팀원들에게 책임 문제나 각 업무의 질을 지적할 때, 상사가 내 일이 아닌 것을 지시할 때, 일에 집중 중인데 어머니가 부르셨을 때처럼 업무와 관련돼 있을 때 주로 나타납니다. ‘일이 무섭게 느껴지는’ 마음이 지속되면서 실수하면 안 되고 잘해야 한다는 긴장 상태에서 소통하다 보니 더 예민한 반응이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미희 님이 분노 표현이 과했음을 인지하더라도 바로 조절하거나 주변에 환기나 이해를 요청할 여력조차 없다 보니 이런 상황들이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해요. 즉 미희 님은 번아웃 증후군의 증후인 정서적 소진, 업무 효능감 저하, 냉소 등을 경험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어떨 때 화가 날까요. 일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부당하거나 억울할 때, 감정적으로 상처받았을 때…. 화가 나는 것은 그 뒤에 미희 님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있다는 뜻입니다. 짐작해 보면 중압감이 심한 책임자 역할이 지속되고 동료들의 실수를 매뉴얼 등으로 줄여 갈 시스템이 미흡하면서 화가 쌓여 갔을 듯합니다. ‘이렇게 계속 일할 수는 없다’, ‘업무의 강도와 책임이 적절하게 분산됐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서 정서 조절이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요.

이런 상황을 사장님을 비롯한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보면 좋겠어요. 전에도 고충을 토로했을 수도 있고 업무를 분담하려고 해도 여건이 안 돼 지레 포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희 님의 업무와 관련된 마음의 어려움을 상사들과 공유하는 것은 회사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구성원이 지쳐 감정 조절이 안 될 정도의 직역이 존재한다면 결국 유능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다가 갈려 나가게 돼 업무의 지속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미희 님의 기억에는 아버지의 불같이 화내던 모습이 좋지 않게 남았을 것이고 화를 표현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가 치밀어도 표출하지 않으며 지냈을 듯합니다. 그런데 미희 님, 감정을 수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절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정적 억압이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같은 말로 스스로를 억누다가 퇴근하면 술이 당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서 되살아납니다. 화를 전혀 내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그동안 쌓인 것이 터져나와 오히려 강하게 화를 내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이 같은 답장이 올라오는 화를 잘 조절하고 싶다는 미희 님의 질문에 즉각적인 해법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표면으로 드러나는 분노를 억제하는 것 이상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미희 님의 화를 진지하게 들여다봤습니다. 미희 님,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습니다. 감정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길잡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앞의 분노에 대한 전제들은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1) 화는 나의 숨겨진 욕구를 찾게 해주는 중요한 신호이며
2) 어느 순간 화가 갑작스럽게 나고 조절되지 않는 것은 내가 지쳤다는 뜻이기도 하며
3) 특히 업무나 관계에서 비롯된 화는 혼자 조절하거나 해결하기 어려워 소통과 업무 조절을 통해 원인을 줄여나가야 한다

지금 미희 님은 개인적으로 또 관리자로서도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감정 지능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평가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가까운 지인과 솔직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나아가 심리 상담도 고려해 보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자기의 다양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여 주고 편안해질 때 타인과도 좀더 솔직하게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습니다. 미희 님의 건강한 화와 눈물과 웃음을 응원합니다.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경비즈니스는 ‘안주연의 다시, 연결’을 연재하며 독자에게 상담 편지를 받고자 합니다. 직장인 마음 상담을 주제로 다양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 직접 답하겠습니다. 하단 링크로 직접 사연을 작성하거나, poof34@hankyung.com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