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스러워진 가격에 소맥 인기 시들
소주·와인·위스키 ‘반사 이익’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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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만나면 평소 소맥을 즐겨 마셨던 직장인 김주홍(38·가명) 씨는 요즘 식당에 가면 고민이 많아진다. 마음 같아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맥을 마시고 싶지만 부쩍 오른 소주와 맥주 가격 때문에 선뜻 주문하기가 망설여진다. 김 씨는 “소맥을 마시면 술값이 너무 많이 나온다”며 “주머니 사정이 부담돼 요즘에는 소주만 마시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더 이상 ‘서민의 술’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됐다. 가격이 오른 ‘소맥’ 얘기다. 요즘 서울 시내의 대부분 술집과 식당에서 판매하는 소주와 맥주 가격은 5000~7000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소맥 가격이 높아지면서 요즘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소맥을 마시는 것이 ‘부의 상징’이 됐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김 씨처럼 소맥 대신 소주만을 찾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가성비’로 다시 뜨는 소주‘소주 7000원·맥주 7000원.’
4월 18일 찾은 서울 한남동에 있는 한 고깃집 메뉴판에 붙여진 소주와 맥주 가격이다. 이 식당은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소주와 맥주를 가각 6000원에 판매했었다.

하지만 소주와 맥주의 출고 가격이 오르면서 자연히 가격을 올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소주와 맥주를 섞는 ‘소맥’을 마시기 위해 최소 1만4000원이라는 돈을 써야 하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1인분에 2만원이 넘는 고기까지 사람 수에 맞춰 시키다 보면 ‘삼겹살에 소맥 한잔’ 하기 위해선 1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소맥 값이 부담스러울 만큼 오르자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소맥을 찾지 않는 움직임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날 고깃집 인근 식당에서 만난 이민지(31·가명) 씨도 원래 ‘소맥파’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주만 마실 때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이 씨는 “소맥을 함께 시켜 먹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 요즘에는 주로 소주만 시켜 먹는 편이다. 맥주는 도수가 낮아 잘 취하지도 않고 많이 마시면 배가 부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류업계의 동향에서도 최근 소주의 인기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하이트진로의 주력 상품인 ‘참이슬 후레쉬’가 대표 격이다.

참이슬 후레쉬는 지난해 2월 가격을 약 7% 올렸다. 그럼에도 지난해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10년간 연평균 5%씩 성장해 온 참이슬 후레쉬의 지난해 판매량은 2021년 대비 9% 증가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유흥 시장 판매량이 전년 대비 23% 늘어나며 역대 최다 판매 경신을 이끌었다.

대박을 터뜨리는 소주 신제품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도 소주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롯데칠성음료가 지난해 9월 출시한 ‘처음처럼 새로(이하 새로)’는 출시 7개월여 만에 누적 판매 1억 병을 돌파하기도 했다.

올해 1월까지만 하더라고 새로의 판매량은 약 5000만 병이었다. 그런데 불과 3개월여 만에 5000만 병이 더 팔리며 누적 판매 1억 병을 돌파했다.

가수 박재범 씨가 출시한 원소주도 잘 팔린다. 원스피리츠에 따르면 그가 론칭한 ‘원소주(오리지널 기준)’의 올해 1분기 국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200%나 늘었다.

세븐일레븐과 임창정 씨가 협업해 내놓은 ‘소주 한잔’도 초도 물량이 완판되는 등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가성비’ 술로 소주가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맥 가격이 높아지면서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착시 효과’를 내고 있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와인과 위스키 열풍이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로 두 술이 인기인데 여기에는 높아진 소맥 가격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관세청 무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전년 대비 3.83% 증가해 역대 최대치인 5억8127만 달러를 기록했다. 위스키류 수입액은 2억6684만 달러였다. 전년 1억7534만4000달러보다 52.2% 증가한 수치다. 와인이나 위스키를 찾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맥 ‘2만원 시대’ 오나지금보다 소맥 가격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소맥의 인기는 앞으로 더욱 시들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맥주에 부과되는 주세가 4월부터 3.57% 올랐다. 기획재정부가 연초에 발표한 ‘세제 개편 후속 시행령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비싸서 안 마셔요”...요즘 젊은이들이 소맥에서 멀어진 이유
이에 따라 현재 맥주에 붙는 세금은 리터당 30.5원 올라 885.7원이 됐다. 맥주 세금 인상은 일반적으로 주류사의 출고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2021년에도 주세가 0.5% 오르자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맥주 출고가를 평균 1.36% 올린 바 있다. 지난해에는 주세가 2.49% 오르자 맥주 출고가를 7.7∼8.2%까지 올렸다.

주요 맥주 업체들은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원가 인상 압박에 못 이겨 맥주 업체들이 또 한 번 가격을 올리면 식당에서 맥주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맥주 8000원’ 시대가 올 날이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소주도 마찬가지다. 주요 생산 업체들이 받는 가격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다. 소주병을 제조하는 제병 업체들은 지난해 말 소주 생산 업체에 병값 인상을 통보하고 올해 2월부터 순차적으로 180원에 납품되던 병값을 220원으로 22.2% 올렸다.

대한주정판매는 4월 18일 주정(에탄올) 가격을 평균 9.8% 인상하기로 했다. 소주의 주정을 만드는 원료인 타피오카 전분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에서다. 주정은 전국 10개 주정 제조업체가 만든 뒤 이들 업체가 지분을 가진 주정 판매 업체인 대한주정판매에 일괄 납품한 후 소주 업체에 판매되는 구조다.

즉 대한주정판매가 한국에서 주정을 독점 유통하고 있다. 이런 주정이 소주 한 병 값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5%다. 그만큼 소비자 가격 압박도 세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주류업계는 그동안 주정 값이 오르면 어김없이 가격을 올렸다.

지난해에도 대한주정판매가 주정 가격을 7.8% 올리자 소주 회사들은 일제히 소주 가격 인상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소주 업체들은 고물가를 고려해 주정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소주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제까지 가격을 올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잇단 원가 인상에 따라 맥주와 소주의 가격이 다시 한 번 오르면 ‘소맥’을 한 번 즐기는데 최소 2만원에 육박하는 돈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