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모두에게 저금리 기본 대출·반값 교통비·학자금 대출 이자 면제 등 여야 앞다퉈 내놔
홍영식의 정치판 2024년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1년 앞두고 정치권에서 ‘반값’과 ‘기본 시리즈’가 다시 등장했다. 포퓰리즘병이 다시 도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현안에 대해선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여야가 퍼 주기에서만큼은 손을 맞잡은 형국이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주요 공약으로 활용한 ‘기본’을 다시 꺼내 들었다. 기본 대출부터 던졌다. 성인 누구나 최대 20년 기한으로 1000만원까지 제1 금융권 수준의 저금리로 대출을 받게 하고 정부가 보증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 대표는 4월 4일 자신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기본사회위원회의 토론회에서 “금융이란 국가 정책의 소산이기에 그 혜택은 모든 이들이 최소한 일정 부분을 함께 누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도 청년들에게 저금리로 최대 1000만원을 빌려 주는 기본 대출을 공약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능력 있는 사람은 저리로 빌릴 수 있지만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고리가 부과된다”고 했으나 금융에 대해 몰상식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신용이 높다면 저금리, 신용이 낮다면 고금리를 적용하는 게 금융의 ABC라는 점에서다. ‘고신용자에게 낮은 이율을, 저신용자에게 높은 이율을 적용하는 구조적 모순’을 거론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의 비상식적 인식이라는 것이다.
저축은행 부실 채권 비율 적용하면 국민 부담 12조원
정부가 보증하면 막대한 재정은 어떻게 감당할지에 대해선 말이 없다. 단순 계산으로 성인 3000만 명이 1000만원씩 대출하면 300조원이 된다. 지난해 말 돈을 떼일 확률이 높은 부실 채권 비율이 4.1%인 저축은행의 경우 기본 대출에 적용하면 정부 부담은 12조3000억원에 이른다. 대부 업체의 부실 채권 비율 6%를 적용하면 18조원에 이른다. 이 돈을 혈세로 채워야 한다.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 1인당 빚이 5700만원에 달하고 국가 채무가 지난해 1000조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도덕적 해이, 신용 불량자 양산도 낳을 수 있다. 이 대표 스스로 가계 부채 문제가 삼각하다고 지적해 놓고 이율배반이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시중은행이 금리 상승기에 얻는 이자 수익의 일부를 국가에 출연하게 하는 법안도 내놓았다. 대출 금리에 반영된 각종 부대 비용을 차주에게 돌려주도록 하는 입법도 추진하고 있다. 일종의 ‘은행 횡재세’다. 민병덕 의원이 발의한 은행법 개정안은 은행이 예금 보험료와 지급 준비금 등 법적 비용을 대출 이자에 포함시켜 거둔 이득을 대출자에게 돌려 주도록 했다.
민 의원은 ‘은행의 사회적 책임법’이라고 하지만 은행의 금리 산정 자율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은행이 목표 수익률을 올리는 식으로 대응하면 결국 금융소비자에게 부담이 돌아가 ‘조삼모사’다. 민주당은 이미 정유·반도체·자동차 산업에도 횡재세를 적용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기본 금융을 시작으로 기본 주거, 기본 소득도 본격 추진할 방침이고 이 대표도 취임 1주년을 맞는 오는 8월 기본 사회 비전을 발표할 계획이다.
야당들은 반값 대중교통도 내세우고 있다. 정의당은 매달 3만원을 내고 지하철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3만원 프리패스(반값 정기권)’를 도입하겠다며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장기적으로는 무상 교통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정미 대표는 “무상 교통 시대를 이끌어 갈 ‘3만원 프리패스’를 도입해 시민 부담을 덜고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수조원에 달하는 대중교통 적자에 대해선 대책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폐지된 ‘청년동행카드’를 복원, 중소기업 청년 노동자에게 교통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동행카드는 산업 단지에 입주해 있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만 15~34세 청년에게 매월 5만원의 교통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버스와 지하철비 절반을 환급해 주는 ‘반값 교통비 지원법’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20·30 청년층의 표심 잡기를 위해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통비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어 총선을 앞두고 ‘반값 교통비’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역시 청년 표심을 겨냥해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취업 전 발생한 대학 학자금 대출 이자를 면제해 주고 그 대상을 가구당 월소득 1024만원 이하까지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의힘은 재정 부담과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반대하고 있지만 국회 교육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해당 법안을 처리했다. 이재명 대표는 “대학생 학자금 이자 감면, 일방 처리해서라도 꼭 관철하겠다”고 했지만 연소득 1억원이 넘는 고소득 가구에게까지 면제해 주는 것은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다. 대학에 가지 않고 취업한 청년들에 대한 역차별 지적도 제기된다.
청년 표심만 노리는 게 아니다. 고영인 민주당 의원은 소득 하위 70%에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만 65세 이상 노인 전체로 확대하는 기초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향후 5년간 총 73조2000억원이 소요된다고 국회예산정책처는 분석했다.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현행 8세 미만 아동에게 매달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 수당 지급 대상을 13세 미만까지로 확대하고 지원 금액도 20만원으로 올리는 아동수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세 미만 유아에게는 현행 50만원에서 80만원으로 지급액을 늘리는 내용도 있다. 여야는 통신비 인하에도 나서고 있다.
‘대학생 1000원 아침밥’도 포퓰리즘으로 변질
‘대학생 1000원 아침밥’도 여야 간 지원 확대 경쟁이 벌어지면서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포퓰리즘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00원 아침밥’은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 시작했다. 아침 결식률이 50%를 넘는 대학생들에게 싼값에 식사를 제공해 쌀 소비를 진작하자는 게 당초의 사업 취지였다. 최근 청년 표심 경쟁이 벌어지면서 여야가 지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청년층 지지율이 급락한 국민의힘은 4월 9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1000원의 아침밥 사업을 희망하는 전 대학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지원액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민주당도 정부 지원을 1500~2000원으로 확대해 전국 전문대와 대학 모두 방학에도 하루 두 끼 제공 등 방안을 내놓았다. 안민석 의원은 이 사업을 전국 대학으로 확대하기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재정이 어려운 대학은 추가 지원 부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게다가 대학가 인근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반발하고 있다.
특별법 형식으로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국비 지원을 늘리는 중부내륙발전지역지원 특별법(충북), 전남의대설치 특별법(전남), 대도시광역교통 특별법(전북) 등도 발의돼 있다. 재난지원특별법 등 법의 효력이 특정한 사람 또는 사물, 행위에 한해 말 그대로 특별하게 적용하는 특별법이 표를 얻기 위해 남발되면서 그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크다. 대규모 재정이 소요되는 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 조건 완화에 나섰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관련 법안 처리를 연기했지만 다시 추진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한국전력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인상 결정을 미루고 세수 펑크 우려에도 유류세 인하를 연장하는 것도 총선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및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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