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위 꿰찬 총수 없는 포스코의 반란
포스코에 밀리고 한화에 치이는 ‘샌드위치 롯데’
뺏느냐 뺏기느냐 재계 순위 지각변동

[비즈니스 포커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2022년 10월 세계철강협회 총회에서 세계철강협회장으로 취임했다. 사진=포스코그룹 제공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2022년 10월 세계철강협회 총회에서 세계철강협회장으로 취임했다. 사진=포스코그룹 제공
요지부동이었던 재계 순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2022년 SK가 2위였던 현대차를 제치면서 12년 만에 5대 그룹 순위가 뒤바뀐 데 이어 1년 만에 6위였던 포스코가 롯데를 밀어내고 5위를 꿰찼다.

총수 없는 기업인 포스코는 삼성·SK·현대차·LG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포스코의 2023년 공정 자산 총액은 132조660억원으로 롯데(129조6570억원)를 약 2조4090억원 앞질렀다. 위로는 포스코, 아래에선 한화가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롯데가 순위 탈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차전지 돌풍, 롯데 순위 끌어내려

공정위가 최근 발표한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서 포스코와 롯데의 순위가 뒤바뀌면서 재계 빅5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포스코는 최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등 양대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들에게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월 한 달 동안 개인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포스코홀딩스(3조1283억원)가 1위, 포스코퓨처엠(3337억원)이 2위를 차지했다.

포스코는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퓨처엠을 중심으로 니켈·코발트·리튬부터 전구체와 양·음극재까지 모두 중국을 배제하고 내재화가 가능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 지침에 따르면 니켈·리튬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을 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조달하더라도 한국에서 50% 이상 부가 가치를 더하는 형태로 가공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포스코의 수혜가 예상된다. 2023년 3월 말 미국의 IRA 세부 지침이 발표되면서 수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5대 그룹은 기업엔 대기업 지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 간 만남이나 국가적인 행사에서도 이 순위에 따라 의전이나 자리 배치 등이 정해진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2년 5월 취임식에 5대 그룹 총수들을 초청했었다. 앞으로 대통령 행사에 5대 그룹 총수가 참석한다면 의전 순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그래픽=권지혜 기자
그래픽=권지혜 기자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서 정의선(왼쪽 둘째부터) 현대차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손뼉을 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서 정의선(왼쪽 둘째부터) 현대차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손뼉을 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유통·화학 동반 부진 늪…5대 그룹 탈락

롯데의 5위 탈락 배경으로 실적 및 주가 하락, 신성장 동력의 부재 등이 꼽힌다. 롯데의 공정 자산 규모는 매년 늘고 있지만 4대 그룹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신동빈 회장이 국정 농단 사태로 법정 구속되면서 그동안 신 회장이 주도하던 해외 사업, 인수·합병(M&A), 상장 등을 통한 그룹의 성장 전략이 올스톱된 영향이 컸다.

다른 대기업들이 ‘제2 반도체’로 낙점하고 경쟁적으로 뛰어든 2차전지 소재 시장 진출도 한 발 늦었다. 롯데는 2차전지 소재와 연관성이 높은 화학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을 두고도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10대 그룹 중 2차전지 관련 사업에 뛰어들지 않은 곳은 HD현대·농협이 유일하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사태로 캐시카우였던 유통·화학 사업이 직격탄을 맞자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2차전지 소재에 뛰어들었다. 4대 그룹은 이미 반도체·배터리·바이오·모빌리티·로봇·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 신사업에서 체질 변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 수요 부진에 공급 과잉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석유화학 사업 비율이 높은 롯데케미칼은 1분기까지 4분기 연속 적자가 유력하다. 증권가에선 1분기 1000억원대의 영업 손실을 낼 것으로 예측했다.

오랫동안 지켜 온 유통 강자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한국 딜로이트그룹의 ‘글로벌 유통업 강자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유통 기업 250위권에 오른 한국 기업 중에선 이마트(60위)가 선두를 지켰고 쿠팡(74위)이 롯데쇼핑(91위)의 순위를 앞질러 매출액과 성장세를 뛰어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3년 1월 18일(현지 시간) 다보스 아메론 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3년 1월 18일(현지 시간) 다보스 아메론 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우조선 품은 한화, 롯데와 6위 쟁탈전 예고

롯데는 헬스앤웰니스·모빌리티·지속 가능성·뉴라이프 플랫폼 등 4가지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2023년 상반기 사장단 회의에서 “올해는 재도약을 위해 지난 몇 년간 준비했던 노력을 증명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롯데가 5위를 탈환하기 위해 부심하겠지만 재계가 신사업을 본격화하고 일부에선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는 만큼 5~10위권 순위 다툼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7~9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화(83조280억원)·GS(81조8360억원)·HD현대(80조6680억원)의 공정 자산 총액 격차가 크지 않아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뒤바뀔 수 있다.

순위 추월이 유력한 곳은 한화다. 37위인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재계 6위로 도약할 가능성이 예상된다. 한화와 대우조선해양의 공정 자산 총액(12조3420억원)을 더하면 94조원대까지 늘어나게 된다.

롯데의 공정 자산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한화는 김동관 부회장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 재편에 한창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기존의 우주·지상 방산에서 해양까지 아우르는 ‘육해공 통합 시스템’을 갖춰 글로벌 방산 기업으로의 성장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태양광 모듈 시장 1위인 한화솔루션도 IRA 세액 공제 효과가 올해 1분기부터 실적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면서 IRA 수혜가 가시화되고 있다.

김 부회장이 전략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K-방산 수출 호조에 힘입어 1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5% 늘어난 1조9270억원, 영업이익은 385% 급증한 2285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분기 방산 수출액이 처음으로 내수 매출액을 앞질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한화그룹 제공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한화그룹 제공
에코프로 회장은 신흥 주식 부자 등극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신규 지정된 곳은 LX·에코프로·고려에이치씨·글로벌세아·DN·한솔·삼표·BGF(CU편의점)다. LG그룹에서 5개 회사(LX홀딩스·LX인터내셔널·LX하우시스·LX세미콘·LX MMA)를 떼어내 계열 분리한 LX그룹은 출범 3년 차에 대기업집단에 신규 진입했다.

LX그룹의 공정 자산 총액은 11조2730억원으로, 단숨에 재계 44위에 올라섰다. 30여 년간 LG그룹에 ‘1등 DNA’를 심어 주며 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던 구본준 LX홀딩스 회장은 LX그룹에서도 M&A를 통한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구사했다.

LX인터내셔널은 ‘한글라스’로 알려진 한국유리공업 지분 100%를 5904억원에 인수하고 친환경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운영하는 포승그린파워 지분 63.3%를 인수했다. LX인터내셔널의 자회사인 LX판토스는 북미 지역 물류 회사 트래픽스에 311억원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LX세미콘은 한국 차량용 반도체 설계 회사인 텔레칩스 지분 10.9%를 취득했는데 시장에선 전장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LG그룹과의 시너지를 예상하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2차전지 소재 등을 생산하는 에코프로그룹과 전기차용 방진 부품 등을 생산하는 DN그룹도 공정 자산 총액이 1년 전보다 각각 59%, 76% 급증해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에코프로는 유상 증자와 총차입 증가 등으로 공정 자산 총액이 6조9350억원을 기록했다.

2차전지 광풍으로 에코프로그룹 창업자이자 에코프로의 최대 주주인 이동채 회장은 한국의 주식 부자 7위에 오르기도 했다.

고평가 논란에도 에코프로그룹주가 급등하면서 주가가 2022년 말과 비교해 7배 가까이 뛰어올라 이 회장의 주식 재산도 올해 초 5358억원에서 지난 3월 말 2조5031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최태원 SK 회장(2조2401억원)과 구광모 LG 회장(2조780억원)의 주식 보유 평가액보다 많은 수준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