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수상한 거래’ 고도화된 주가 조작 [비즈니스 포커스]
2007년 ‘슈퍼 개미’ 표 모 씨는 소액 주주들의 모임을 결성한다. 모임명은 ‘행복한 주주포럼’이다. 건전한 주식 투자 문화 정착과 투자 이익의 사회 환원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결성된 이 모임은 2년 뒤 은밀한 거래를 시작한다.

“저평가된 기업을 사는 거예요.” 표 씨는 매집 후 엑시트까지 얼마나 걸릴지 묻는 회원들에게 최장 5년을 약속했다. 그리고 증권사 직원 박 모 씨를 소개하며 회원들의 주식 거래를 일임하도록 했다. 그들이 투자하기로 한 종목은 시설 관리 용역과 임대업을 주업으로 하는 코스닥 상장사 A. 표 씨는 A사의 재무 구조가 튼튼하지만 유통 주식 수량이 적다는 점을 이용했다. 안정적인 순이익이 나오면서도 거래량이 적은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사 모으면 주가 조작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A사 주식을 사 모은 다음 주가를 관리하다가 인위적으로 올려 다른 개미 투자자들이 들어오면 엑시트해 시세 차익을 취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가 계획한 주가 조작 기간은 최장 5년이었다. A사 주식을 사 모으기 위해 교회 교인, 동문회 구성원, 소액 주주 모임의 회원들을 끌어들였다.

표 씨 일당은 이렇게 투자자를 유치하는 동시에 A사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계획 2년여 만인 2011년 이들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A사 주식의 60% 정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A사에 대한 시장 지배력을 얻은 이후부터는 표 씨 놀음이었다. 이들은 A사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추가 유치한 투자금으로 고가 매수에 나서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웠다. 두 사람 이상이 미리 주식의 가격과 물량을 짜고 매매해 가격을 올리는 이른바 ‘통정매매’로 주가를 끌어올렸다.

A사의 주가는 2009년 6월 12일 5190원이었지만 2012년 6월 13일 3만6900원까지 급등했다. 시가 총액도 500억원대에서 3600억원대로 뛰었다. 당시 코스닥 상장사 중 시가 총액 순위 45위였다. 이 기간 대단한 호재는 없었다. 대주주가 지분을 늘리거나 기관투자가가 주식을 많이 산 것도 아니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큰 변동이 없을 만큼 큰 성장도 없었다. 당시 A사에서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의 주가가 왜 계속 오르는지 우리도 궁금하다”고 밝힐 정도였다.

표 씨 일당이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주가는 2014년 8월 8만8000원까지 올랐다. 매출 100억원 남짓한 회사의 주가수익률(PER)이 120배나 달했다. 표 씨의 목표 주가는 10만원이었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해 9월 들어 주가가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별다른 실적이 없는데도 과도하게 주가가 오르자 매스컴을 타기 시작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개미 투자자들이 빠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하락세에 표 씨 일당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목표 주가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엑시트에 돌입하자 주가 하락이 더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6일 연속 하한가에 8만원대였던 주가는 2만원대까지 떨어졌다. 표 씨는 30만~40만 주에 달하는 주식을 단 1주만 남기고 모두 처분해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겼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장장 6년에 걸쳐 이뤄진 ‘슈퍼 개미’의 주가 조작 사건의 전말이다.업그레이드된 통정매매그로부터 10년 후인 2023년 4월 24일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무려 8개 종목의 주가가 하한가로 마감되는 수상한 거래였다. 이날 하한가를 기록한 대성홀딩스·서울가스·선광·삼천리·세방·다우데이타·하림지주·다올투자증권 등 8종목 모두 프랑스계 증권사인 소시에떼제네랄(SG) 창구에서 대량 매도 주문이 나왔다. 폭락 사태는 4월 27일까지 이어졌고 나흘간 하락 폭은 42%에서 최대 76%에 달했다. 8개 종목의 시가 총액 8조2000억원이 증발했다.

이들 종목 주가는 작년 4월 이후 강세를 보이며 지난 4월 초까지 꾸준히 오르다가 순식간에 급락했다. 시장에서는 주가 조작 세력이 금융 당국의 조사를 눈치채고 급하게 매물을 던지면서 급락 사태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주가 조작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표적이 된 8종목은 공통점이 있다. 작년 4월 이후 강세를 보이다 급락한 것 외에도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아 유통 주식이 많지 않다는 특징이다. 2009년 표 씨가 유통 주식 수량이 적은 A사를 표적으로 삼았듯이 이들 8종목 역시 소량의 거래로도 주가를 끌어올리기 쉬운 구조다. 나흘 연속 하한가를 맞은 서울가스와 대성홀딩스의 유통 가능 주식 비율은 각각 17%와 27%에 그쳤고 선광(35%), 다우데이타(33%), 삼천리(45%)도 50% 이하였다.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주가 폭락 직전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과 김영민 서울가스 회장은 각각 605억원, 477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두 사람 외에도 관련 종목 최대 주주와 기관투자가들은 일찌감치 주식을 매도해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일각에서 이들 경영진 또는 최대 주주가 주가 조작을 사전에 인지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주주들은 해당 주식 매도가 적법하게 진행됐고 주가 조작 세력과 연계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즉각 부인에 나섰다.

신용 거래 융자도 쉬운 편이었다. 8종목의 신용 거래 증거금률은 30~40% 수준으로 통상 40~50% 수준보다 낮아 적은 돈으로 ‘빚투’가 가능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는 파생 금융 상품인 차액 결제 거래(CFD : Contract for Difference)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봤다. 주가 조작 세력이 CFD를 활용해 주가를 띄웠고 금융 당국 조사가 시작되자 매물을 던졌다는 가설이다.

이번 주가 조작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라덕연 H투자자문사 대표는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수법 대신 2~3년간 장기간 주가를 조금씩 올리는 방법을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투자자들 명의로 200여 개의 휴대전화를 개통해 모바일 계좌를 만든 뒤 H사가 대신 매매하는 방식을 썼다. 2011년 표 씨 일당의 장기간, 일임 매매와 같다. H사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곳에서 대량 거래를 하다가 들키는 것을 피하려고 투자자의 휴대전화를 들고 투자자 집·사무실 근처 등으로 이동해 매매했다.

라 대표는 의혹을 일절 부인했지만 녹취록 등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SBS에 따르면 라 대표는 재작년 9월 투자 설명회에서 “그냥 핵폭탄, 핵전쟁 나듯이 막 빠바방 다 올라가겠죠. 모든 종목들이 다 올라가요”라며 “세상에 이슈를 만들어 버리면 이런 회사들은 거의 주가가 10배, 20배, 30배 올라간다. (중략)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이제 한 몇 백억씩, 몇 천억씩 버시겠죠”라며 주가 상승을 호언장담하는 발언을 했다. JTBC가 공개한 녹취록에서도 라 대표는 지난해 12월 서울 신사동 한 건물에서 의사들을 상대로 투자 설명회를 열고 “제가 들고 있던 것 일단 넘겨주고 그다음에 저는 비싼 가격에 계속 사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제가 가지고 있던 것 넘겨드리고 비싼 가격에 저는 또 사기 시작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사실상의 통정매매 방식이다.

금융 당국은 매매 가격 등을 사전에 짜고 거래하는 통정매매나 미공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투자하는 선행매매 혐의로 라 대표 등을 조사 중이다. 이 과정에는 연예인, 의사, 중견기업 회장, 정치인도 거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H사는 이들에게 접근해 고수익을 약속하는 한편 새로운 투자자를 데려오면 그에 따른 추가 수익을 공유해 주는 일종의 다단계 방식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피해를 호소한 가수 임창정 씨는 투자 행사에 참여해 투자를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하는 모습이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국은 임 씨를 비롯한 거액의 투자자들이 단순 피해자인지 아니면 시세 조종을 후원한 전주(錢主) 역할을 했는지 가려낼 예정이다.
‘수상한 거래’ 고도화된 주가 조작 [비즈니스 포커스]
탐욕의 시장 탐욕이 만든 주가 조작 사건은 이전에도 수차례 시장을 교란하며 사회 문제로 나타났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2002년 델타정보통신 사건, 2005년 나노 이미지 센서 사건, 2006년 루보 사태, 2011년 다이아몬드 게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당시에는 학연에 의한 선후배 관계가 세력화되고 조직화되며 명문 실업고였던 덕수상고·고려대 출신들이 유명 ‘타짜’로 불릴 만큼 지엽적으로 이뤄졌다.

지금은 보다 광범위하고 전문적이다. 연예인·슈퍼개미·인플루언서·고위 공직자·정치인 등 유명인은 대개 얼굴마담 역할을 한다. ‘주가 조작 모르면 주식 투자 절대로 하지 마라’의 저자 안형영 씨는 “유명인은 자금력이 풍부한 데다 기업을 알리는 홍보 효과가 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투자자의 탐욕을 자극한다”며 “특히 유명인은 남들보다 정보가 더 빠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도 ‘묻지 마 투자’에 불을 붙인다”고 설명했다. ‘유명인 OOO도 투자했는데 그 사람이 손해 보고 투자했겠느냐’는 메시지가 투자자들의 마음을 흔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 씨는 “유명인 대부분이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주가 조작 세력과 결탁돼 있거나 그들에게 이용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반 투자자들도 알게 모르게 주가 조작 행위에 공범이 될 수 있다. 일명 ‘주식 리딩방’을 통해 이 같은 시세 조종이 이뤄지는데 유사 투자 자문 업체 또는 유명인들이 텔레그램이나 오픈 채팅방, 유튜브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불법 과장광고 메시지(SMS)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그러모은다. 마치 2007년 표 씨의 ‘행복한 주주포럼’ 모임이 주가 조작에 악용된 것처럼 불법 주식 리딩방에 엮이게 되면 주가 조작 행위에 공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번 8개 종목의 주가 폭락 사태 역시 주식 리딩방 형태가 진화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고액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한 점과 CFD를 이용하고 장기간 시세 조종을 했다는 점이 이전의 리딩방 주가 조작 사건들과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불법 리딩방은 지금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통정매매와 같은 시세 조종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금융 투자 상품의 가치에 대해 조언하고 거짓 정보로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현혹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투자 리딩방 사기 접수 사건은 760여 건에 달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수익을 보장한다거나 투자 손실을 보상해 주겠다며 투자를 권유하면 사기일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