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포드부터 GMC·지프까지 수입차 ‘출사표’
KG모빌리티 가성비 앞세워
기아도 다시 도전장

[비즈니스 포커스]
화물+도심 주행+캠핑에 제격? 꿈틀대는 픽업트럭 시장
#직장인 A(40대) 씨는 지난 명절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오랜 만에 고향인 충남 예산에 내려갔다. 그런데 예년과 다른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도로 곳곳에 픽업트럭이 지나다니고 있던 것. A 씨는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차량을 한국에서도 보니까 눈길이 가더라”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경기 포천에서 331㎡(100평)짜리 철물점을 운영하는 B(60대) 씨는 최근 차를 하나 뽑았다. 바로 픽업트럭이다. B 씨는 “기존처럼 소형 트럭을 구매할까 고민하다가 아들이 일상생활에 타고 다녀도 괜찮은 차를 추천하더라. 일반 트럭보다 승차감도 좋고 도심 주행도 편해 일석이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C(40대) 씨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캠핑이다. ‘캠핑은 장비빨’이라는 생각에 할인 소식이 들릴 때마다 캠핑 용품을 사 모았다. 그런데 이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는 장비를 적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C 씨는 “픽업트럭은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으면서도 데크 상단을 루프톱 텐트 설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 최근 관심 있게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픽업트럭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KG모빌리티·기아 등 한국 완성차 업체뿐만 아니라 픽업트럭의 명가로 꼽히는 포드와 GM 등 미국 브랜드들도 잇달아 한국 픽업트럭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픽업트럭이 인기라고?
픽업트럭은 SUV에 화물 운송 기능을 접목한 차량이다. 쉽게 말해 승합차의 기능과 트럭의 기능을 동시에 갖췄다.

그동안 한국은 픽업트럭의 불모지였다. 택배 인프라가 잘 깔려 있는 데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마트가 있어 적재함을 탑재한 차량이 필요하지 않았다. 워낙 차가 커 서울 등 도심에선 주차할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외면받았다.

하지만 연비(연료 효율성)가 개선된 신차들이 줄줄이 나오고 화물차로 등록돼 세금 혜택도 좋아 픽업트럭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부쩍 늘기 시작했다.

또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 추세 속에 캠핑 문화가 확산되면서 오토캠핑(텐트를 차에 싣고 이동해 즐기는 야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 같은 레저 문화의 수요는 픽업트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포드와 GM 등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픽업 모델을 속속 내놓는 배경이다.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바탕으로 차종별 판매 현황을 집계하는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픽업트럭 시장은 2018년 4만1466대, 2019년 4만2825대, 2020년 3만8929대, 2021년 3만902대, 2022년 2만9685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나빠지며 주춤하기도 했지만 매년 3만~4만 대가 꾸준히 팔렸다.

소비층은 비교적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고 대형 차량을 모는 데 부담이 없는 40~60대 남성이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KG모빌리티의 픽업 모델인 렉스턴 스포츠는 40~60대 남성이 전체 판매(2만5388대)의 57.9%를 차지했다. 수입차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법인 차량을 제외한 3485대의 신규 픽업트럭 중 40~60대 남성의 차량이 2253대로 64.6%를 차지했다.

지난 한 해 가장 많이 판매된 지역은 경기 지역이었다. 국산차(렉스턴 스포츠)는 전체 구매자의 26%(6601대)에 해당했고 수입차 역시 전체의 34%(1186대)가 판매됐다.

경기도는 접근성이 좋고 자연 경관도 아름다워 캠핑 명소로 꼽힌다. 2022년 말 기준 경기도 내 야영장은 799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약 25%를 차지한다. 이는 5년 전인 2017년 말 471곳에서 328곳(69.6%) 증가한 것이다.

이어 서울 지역의 픽업트럭 판매량은 10%를 차지했다. 도심지역 픽업트럭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픽업의 한반도 상륙 작전은 통할까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한국의 픽업트럭 시장은 KG모빌리티의 독무대였다.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무쏘’, ‘액티온’ 등 주요 모델들의 이름에 ‘스포츠’를 붙여 픽업트럭으로 출시했고 2018년부터 ‘렉스턴’의 픽업트럭 버전인 ‘렉스턴 스포츠’를 앞세우고 있다.

최근엔 렉스턴 픽업트럭에 고급 품목을 기본으로 탑재한 ‘쿨멘(Culman)’ 시리즈를 선보였다. 칸 쿨멘의 전장과 전폭, 전고는 각각 5405mm, 1950mm, 1855mm다. 엔진 제원은 최고 출력 202마력, 최대 토크 45.0㎏·m이다. 픽업트럭의 매력인 적재 용량은 1262리터다. 1리터짜리 벽돌이 1262개 들어간다는 얘기다. 최대 700kg의 무게를 견딘다. 토레스에서 선보인 12.3인치 풀 디지털 클러스터도 탑재했다. 가격은 선택 품목을 모두 포함해도 4000만원대 초반에 불과하다. 품목은 업그레이드됐지만 여전히 ‘가성비’ 넘치는 차량인 셈이다.

수입 픽업트럭의 경우 2003~2011년 정식 수입됐던 닷지의 다코타를 제외하고 한동안 이렇다 할 모델이 없었다. 그러다 2019년 한국GM의 쉐보레가 ‘콜로라도’를 들여오면서 시장을 다시 열어젖혔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콜로라도의 판매량은 2926대(전체의 71%)로 수입 픽업트럭 중 가장 잘나가고 있다.

국산차보다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수입차 업체들은 ‘큰 차’를 선호하는 마니아 층과 오프로드·레저·캠핑 등 취미 생활을 즐기며 경제력도 있는 소비자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GMC 시에라 이미지. 사진=한국GM 제공
GMC 시에라 이미지. 사진=한국GM 제공
한국GM은 올해 2월 아예 상용차 전문 브랜드 GMC를 론칭했다. 동시에 프리미엄 픽업트럭 ‘시에라 드날리’도 내보였다. 시에라는 1987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됐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오는 차량은 최신 5세대 모델이다. 전장이 5890mm, 전폭과 전고가 각각 2065mm, 1950mm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9000만원대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40대 남성 고객을 중심으로 수요가 몰렸다. 출시 이틀 만에 첫 선전 물량 100대가 완판됐고 이후에도 수요가 몰려 지난 3월까지 추가로 확보된 물량 126대가 더 팔렸다. 지역별 구매 비율은 수도권 41%, 경상남도 11%, 충청북도와 충청남도가 각각 5% 등으로 나타났다.

픽업의 시초인 포드도 출사표를 던졌다. 2021년 ‘레인저’를 한국에 선보인 데 이어 올해 4세대 완전 변경 모델 ‘넥스트 제너레이션 레인저’의 ‘와일드트랙’과 ‘랩터’ 등 두 모델을 출시했다. 신모델의 외형은 C자형 헤드램프 디자인 등이 포드 인기 모델인 F150과 비슷하게 닮았다. 2.0리터 디젤 엔진을 탑재해 205마력, 51토크의 힘을 낸다. 10단 자동 변속기를 탑재했고 3500kg을 견인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가격은 부가세를 포함해 와일드트랙이 6350만원, 랩터가 7990만원으로 GMC의 시에라 드날리보다 다소 저렴하지만 콜로라도(4000만원대)보다는 비싸다.

기아도 픽업트럭 시장 문을 다시 두드린다. 노동조합과 합의해 경기 화성 오토랜드 화성공장에서 내년 12월부터 픽업트럭(프로젝트명 TK1)을 양산하기로 했다. 연간 6만5000대 생산이 목표다. 호주를 중심으로 판매하되 한국에도 출시한다. 기아가 한국에서 픽업트럭을 생산하는 것은 1981년 브리사를 단종한 이후 처음이다.
포드의 레인저 랩터. 사진=한경비즈니스
포드의 레인저 랩터. 사진=한경비즈니스
돋보기
미국에서 픽업이 인기있는 이유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차종은 세단도 SUV도 아니다. 바로 ‘픽업트럭’이다. 광활한 북미 대륙과 직접 생필품을 사다 나르는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 등을 고려하면 픽업트럭은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실제 미국에선 신차 5대 중 1대가 픽업트럭일 정도로 인기다.

픽업은 첫선을 보인 지 100년이 넘었다. 초창기 일반 승용차 뒤쪽에 나무로 만든 짐칸을 추가한 형태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체가 높아지고 사륜구동이 일반화되면서 현재와 같은 픽업트럭의 모습이 됐다.

미국의 교통 환경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면 픽업트럭이 가장 적합한 형태의 자동차로 꼽힌다.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 전반을 가로지르며 영토가 뻗어 있다. 이동 거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포장도로의 비율이 크게 낮아지고 마트도 멀리 떨어져 있다.

인건비가 높아 소비자들이 문짝 등을 직업 운송해 교체하는 경우도 많다. 대량의 생필품과 커다란 물건을 실어 나르는데 적재함을 갖춘 픽업트럭만큼 적합한 차량이 없다. 여기에 승차감을 확보해 오프로드 활동에도 이용된다. 레저 문화에도 픽업트럭의 활용도가 유용하다는 얘기다.

또 미국은 한국에 비해 기름값이 절반이다. 기름값이 싸다 보니 연비 걱정도 없다. 바꿔 말하면 연비가 좋은 차보다는 비포장도로를 거침없이 달릴 수 있고 외부 충격에 강한 차량이 인기가 많다. 픽업트럭이 많이 팔리는 이유다. 승용차에 비해 판매 가격이 저렴한 점도 픽업 트럭 시장 성장에 영향을 줬다.

자동차업계에선 풀 사이즈 픽업트럭이 미국 경제의 지표로 여겨진다. 도로에 풀 사이즈가 늘어나면 경기가 살아났다고 본다. 더 많은 차량이 상용차로 활용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났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포드 F-시리즈(65만3957대)와 GM 쉐보레 실버라도(52만936대), 램 픽업(46만8344대) 등 픽업트럭이었지만 경기가 나빠지면서 전년 대비 판매량이 각각 10%, 2%, 18%씩 빠졌다.
포드 F-150. 사진=한국경제DB
포드 F-150. 사진=한국경제DB
한편 미국 픽업의 대명사로 통하는 차량은 포드의 F-시리즈다. 데뷔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미국의 픽업 시장을 지켜 왔고 지난해까지 미국서 무려 46년 연속 판매 1위를 달성했다. 특히 F-150은 미국 시장에서 매년 베스트셀링 모델로 꼽힌다.

F-시리즈는 동급의 다른 브랜드보다 합리적인 가격과 다양한 파워트레인과 옵션 등을 제공해 인기를 누렸다. 또 포드는 코로나19 사태로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을 때 반도체 관련 부품과 자재들을 모조리 F-시리즈 생산 라인에 배정하는 등 애정을 쏟았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