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 기업을 표적 삼아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첫 반격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최근 1~2년 새 화웨이 제재, 반도체 수출 제한,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 공급망 재편 등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왔다. 그 무엇보다 중국의 이번 조치가 5월 21일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폐막 직후 발표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G7이 정상회의 공동성명(코뮈니케)을 통해 중국에 대한 경제·안보·대만 문제를 망라한 전방위적인 견제 조치를 취한 데 대해 사실상 보복에 나선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번 조치와 관련해 동맹국들과의 공조를 강화하며 중국에 맞설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향후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 백악관은 5월 24일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일축하며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2021년 8월 ‘미국 반도체 칩과 과학법(The US CHIPS and Science Act, 반도체법)’ 시행 이후 자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주도해 왔다. 미국은 특히 올해 들어 반도체 생산 장비 기업인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니콘 등이 대중 수출 통제에 동참하도록 조치하는 등 투자 대상에서 중국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추가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전쟁’이 미국 기업들의 손을 묶어 기술 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대만·일본과 함께 중국을 뺀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인 ‘칩4’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중국과 맞서기 위해 ‘동맹국과의 공조’를 강조하고 나서면서 중국의 보복이 미국을 넘어 동맹국들까지 확대될 가능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 미 하원의 마이크 갤러거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미국은 미국 기업이나 동맹에 대한 경제적 강압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중국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한 동맹국인 한국도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한국을 직접 지목하며 경고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최근에는 중국의 ‘한한령(한류 제한령)’이 다시 재현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5월 24일을 기준으로 중국 내 네이버 접속이 사흘째 차단되는가 하면 한국 가수의 방송 출연이 돌연 취소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재 중국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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