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근로 수당 미지급 혐의
청소 용역 대표에 ‘무죄’ 원심 파기
“근로기준법 취지 무색해져”

[법알못 판례 읽기]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대한항공 항공기. 사진=연합뉴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대한항공 항공기. 사진=연합뉴스
2주 이내의 탄력적 근로 시간제 도입은 취업규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과반수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거쳐야 하는 취업규칙 변경이 아닌 개별 노동자와 약정한 근로계약서만으로 도입된 탄력근로제는 무효라는 취지다.

탄력근로제는 특정 기간의 근무 시간을 연장·단축해 단위 기간의 평균 근로 시간을 주52시간 이내로 맞추는 유연근무제의 일종으로, 노사 합의를 통해 단위 기간을 2주 이내에서 6개월까지 정할 수 있다.

‘탄력근로제’ 쟁점, 하급심 엇갈린 판단

대법원 2부는 2023년 4월 27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청소 용역 업체 대표 A 씨에 대해 무죄를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피고인 A 씨는 인천국제공항 내에서 항공기 기내 청소 용역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 약 400명 규모의 회사를 운영했다. 해당 업무는 원청 업체인 ‘대한항공’에서 조업사인 ‘한국공항’으로, 다시 일부 청소 업무는 도급 업체인 A 씨의 회사로 내려왔다.

A 씨는 2014년 4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135명의 노동자에게 매월 임금 지급일에 연장 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퇴직 노동자들의 미지급 연장 근로 수당을 청산하지 않는 등 총 5200만원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2018년 4월 기소됐다.

A 씨는 또 2014년 4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여객기 청소 업무에 종사하는 남성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정근 수당을 같은 여객기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24명에게는 지급하지 않은 혐의(남녀고용평등법 위반)도 받았다. 여성 노동자에게 미지급한 금액은 약 5억7000만원에 달했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로계약서를 통해 2주 단위의 유효한 탄력근로제가 도입됐으므로 연장 근로 수당 지급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또 “(취업규칙 변경을 통하지 않아) 유효한 탄력근로제가 도입되지 않았더라도 연장 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의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노력, 작업 조건 등의 측면에서 양적 또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노동을 수행하므로 남성 노동자만 정근 수당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1심은 A 씨에 적용된 두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연장 근로 수당 미지급으로 인한 근로기준법 위반 부분을 무죄로 보고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원 처분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에 탄력적 근로에 관한 근로 조건이 공통적으로 기재돼 있어 이를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으로 볼 수 있다”며 “피고인이 근로계약서를 통해 장기간 탄력근로제를 적용해 왔고 연장 근로 수당 미지급에 관한 노동자들의 이의 제기 등이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찰 측은 무죄 판단 부분(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 A 씨는 유죄 판단 부분(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대해 각각 상고했다.

대법 “노동자 개별 동의로는 도입 못 해”

대법원은 A 씨가 받은 혐의들이 모두 유죄라며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2주 단위 탄력근로제는 법률에서 정한 방식인 취업규칙에 의해서만 도입할 수 있고 근로 계약이나 노동자의 개별적 동의를 통해 도입할 수 없다”며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한 원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탄력근로제는 법률에 규정된 일정한 요건과 범위 내에서만 예외적으로 허용된 것”이라며 “근로 계약만으로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수 있다면 취업규칙의 불리한 변경에 대해 과반수 노조 등의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94조 1항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근로기준법은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에 따라 실시 요건을 달리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51조에 따르면 2주 이내를 단위 기간으로 하는 탄력근로제의 경우 단위 기간의 시작일과 종료일, 각 근무일의 근로 시간 등을 취업규칙 안에서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3개월 이내 또는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를 단위 기간으로 할 경우 노동자 대표와 서면 합의로 해당 내용을 정해야 한다. 대법원은 이 같은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A 씨의 업체의 탄력근로제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또 “(이 사건 피고의 회사에) 취업규칙이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근로계약서가 실질적으로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 고의가 없었다는 A 씨의 주장에 대해선 “설령 노동자들이 장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더라도 탄력근로제가 유효하게 도입, 시행됐으므로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2주 이내를 단위 기간으로 하는 탄력근로제는 개별 노동자가 동의하더라도 도입할 수 없고 취업규칙으로만 도입할 수 있다고 판단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돋보기]
‘취업규칙’ 변경 앞서 요건 꼼꼼히 따져야

‘취업규칙’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정한 규율과 근로 조건 등을 명시한 문서로, 10인 이상 사업장에선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최근 취업규칙의 기준이 45년 만에 뒤바뀐 대법원 판례가 나와 산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취업규칙의 기준으로 ‘사회 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사용했는데, 그 대신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를 채택한 대법원 판례가 나온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3년 5월 11일 현대차 간부 사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 이득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사건 일부를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집단적 동의권이 침해됐다면 ‘사회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규칙 변경이 정당화될 수 없고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기존 사회 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하고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가 취업규칙의 새로운 기준이 된 판결이다.

현대차는 1968년부터 전체 직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있었지만 2004년 7월 주5일제가 도입되면서부터는 과장급 이상 간부 사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따로 만들어 시행했다. 간부 사원 취업규칙에는 월 개근자에 지급되는 1일 휴가를 폐지하고 연차 휴가일 수에 상한선 25일을 규정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일부 간부 사원들은 취업규칙이 노조 동의 없이 변경돼 무효라면서 미지급된 연·월차 휴가 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에 현대차는 소송 과정에서 간부 사원 취업규칙을 바꾸면서 간부 사원 89%의 동의를 받았고 사회 통념상 합리성도 있으므로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1심에선 원고들이 패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연·월차 휴가 관련 부분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인데도 노동자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고 사회 통념상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무효”라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결론에선 2심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 다수 의견(7인)은 원심이 ‘사회 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적용한 것은 잘못됐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노동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면 동의 없는 불이익 변경도 유효하다고 인정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례 변경으로 사실상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는 도입될 길이 막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관해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기업들은 집단적 동의 절차를 진행할 때 절차적 정당성 준수 여부에 더욱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