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만에 저금리 대출로 이동 가능... 은행권, ‘핀테크에 정보력 뺏기지 말아야’
[비즈니스 포커스] 전 세계에서 최초로 15분 만에 대출을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인프라’가 5월 31일 문을 열었다. 대한민국의 전체 은행 19곳, 저축은행 18곳, 카드사 7곳, 캐피털사 9곳 등 53개의 금융사와 23개의 플랫폼이 참여한다.대출 상품을 온라인에서 비교하는 서비스는 해외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주요 금융회사 간 대출을 실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은 한국이 처음이다. 편의성은 물론 보다 낮은 금리로 이동할 수 있다는 면에서 금융 당국은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속내 복잡한 기존 금융권
대환대출 플랫폼은 모바일 플랫폼에서 자신의 조건에 맞는 대출을 조회하고 더 낮은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이 있다면 클릭 몇 번으로 갈아탈 수 있다. 플랫폼을 통해 고객들은 자신이 보유한 대출 상품과 입점 금융사들의 대출 상품 조건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됐다.
옮길 수 있는 기존 대출은 53개 금융회사에서 받은 10억원 이하의 직장인 대출, 마이너스 통장 등 보증과 담보가 없는 신용 대출이다. 기존 대출에서 갈아탈 수 있는 새로운 대출 역시 동일하다. 기존 대출을 서민이나 중저신용자 대상 정책 대출로 갈아타는 것은 보증 여부와 관계없이 가능하다. 다만 연체 대출, 법률 분쟁, 압류·거래 정지 상태의 대출은 시스템을 이용해 갈아탈 수 없어 플랫폼과 금융회사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해당 사실을 안내할 예정이다.
금융권은 대환대출 인프라를 넒히는 것에 당분간 집중할 예정이다. 지금은 신용 대출만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주택 담보 대출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1월 기준 은행 가계 대출 잔액 중에서 주담대가 무려 76%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한국 서민들이 가장 많이 지고 있는 ‘빚’인 주담대까지 폭을 넓힘으로써 범용성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주담대는 금융결제원 시스템을 통해 전산화가 가능한 대출금 상환 외에도 등기 이전이 필요해 금융회사 간 모든 절차를 온라인으로 구현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따라 금융 당국은 온라인으로 주담대 상품을 비교하고 대환대출을 신청할 수 있는 인프라를 우선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환대출 플랫폼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인 금융권의 시각은 상이하다. 테크핀 기업들은 각자 얼마만큼 많은 금융사가 입점했느냐를 알리면서 홍보에 돌입했다. 자사의 플랫폼을 활용하면 이자를 지원해 주는 등 혜택도 별도로 제공했다.
반면 은행·저축은행·카드사 등 기존 금융권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른바 대출 금리의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한 만큼 타 금융사에 소비자를 뺏기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기존 대출을 우리은행의 대출로 옮긴 고객에게 중도 상환 해약금과 인지세를 최대 10만원까지 지원해 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이 밖에 KB국민·하나·신한은행 등은 대환대출 플랫폼 전용 상품을 출시 준비 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시적인 혜택을 주기보다는 타사로 대출을 갈아타는 소비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은 ‘정보성’이다. 가뜩이나 금융업계에서 테크핀의 영향력이 커지는 와중에 자칫하면 대출 상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정보의 힘을 테크핀 업체에 고스란히 넘기게 될 것이라는 노파심이 커진다. 은행권이 대환대출 서비스를 마냥 환영할 수 없는 이유다.
저축은행권과 카드사들은 더욱 속이 탄다. 금리가 더 낮은 상품으로 고객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최근 업황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우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권은 대출 금리를 낮춰야 춰야 하는데 자칫 경쟁으로 번지면 마진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테크핀, ‘더 많은 금융사’ 입점이 관건
금융사와는 달리 대환대출 인프라 홍보에 적극적인 것이 테크핀업계다. 각 플랫폼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는 KB국민·NH농협·신한·우리·하나은행 등 시중 5대 은행이 모두 입점한 대환대출 서비스라는 점을 내세웠다. 1금융권 10개사를 등 총 24개 금융사와 협력을 구축했는데 5월 31일 기준으로 서비스가 가능한 곳은 16곳이다. 나머지 업체들은 순차적으로 입점을 준비 중이다.
네이버파이낸셜에는 총 13개의 금융사가 입접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저축은행중앙회와의 협의를 통해 순차적으로 18개 저축은행들이 모두 입점할 예정이다.
토스는 고객이 새로 대출받을 금융회사만 결정하면 기존처럼 대출이 있는 곳과 새로 받을 곳을 번갈아 방문하지 않아도 되게끔 할 예정이다.
일찍이 대환대출 서비스를 시작한 핀다는 노하우에서 다른 테크핀 업체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내세웠다. 향후 핀다는 사용자가 선택한 상품들만 모아 상세하게 비교할 수 있는 ‘장바구니’, 사용자가 연동한 마이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갈아타기 좋은 상품을 알려주는 추천 기능도 탑재할 예정이다.
다양한 혜택과 장점을 강조하지만 관건은 ‘타사보다 많은’ 금융사들을 입점시키는 것이다. 더 많은 금융사와 상품이 들어와야만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테크핀 업체들로서는 대환대출 서비스를 시작으로 향후 다양한 비대면 금융 상품 서비스가 생겨나기 때문에 고객들의 발길을 붙잡아 두는 게 필요해졌다. 6월에는 여러 금융사들의 금리를 비교해 자신에게 맞는 예·적금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예금 중개 서비스’도 시작된다. 신한은행·네이버파이낸셜·비바리퍼블리카 등 혁신 금융 서비스 지정사들이 먼저 서비스를 출시한다.
관건은 수수료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저축은행중앙회와의 업무 협약을 통해 1%대 미만의 중개 수수료를 책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플랫폼들은 최대한 많은 금융사들이 입점해야 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최대한 줄이면서 입점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시장에서 대환대출 서비스가 자리 잡고 테크핀의 힘이 더 커지면 업체들이 수수료 인상을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사들이 테크핀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다.
대형 테크핀 업체 관계자는 “대환대출 인프라는 수수료 수익을 거두기보다는 ‘대출’이라는 상품군을 확대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보여 주려는 목적이 더 크다”며 “금융 상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보여주는 게 금융 주권과도 관계가 있어 앞으로 이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