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에게 들어 본 '해지해선 안되는 보험'은
암 보험, 보장 여부 잘 따져봐야…병원 자주 간다면 전 세대 실비 유지 권고

[비즈니스 포커스]
묵혀 둔 보험 해지해도 2009년 이전 가입한 암 보험은 유지해야
‘30대 후반 직장인 A 씨는 가계부를 살펴보다가 보험을 해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월세와 전기요금 등 공과금, 식비와 생활비가 모두 올랐지만 월급은 작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수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항목을 제외하고 A 씨가 현재 줄일 수 있는 것은 당장 필요해 보이지 않는 보험료밖에 없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약 10년간 가입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막상 해지하려니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고물가로 인해 서민 경제가 휘청이면서 보험 해지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보험사 신규 계약 건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줄었지만 보험사 약관 대출과 해약 규모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 7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생명보험사 23곳, 장기 보험을 취급하는 주요 손해보험사 15곳의 지난해 약관 대출은 생보사 50조4537억원, 손보사 17조6418억원으로 총 68조95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63조58억원과 비교하면 5조897억원 늘어난 규모다. 약관 대출은 보험 가입자가 보험 해지 환급금 범위에서 대출받는 상품이다.

또한 보험 해약 건수도 2019년 1145만3354건에서 지난해 1165만3365만 건으로 약 20만 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이전 가입한 암 보험 확인 필요

보험연구원은 올해 초 보고서에서 “경기 침체기에는 소비자들의 보험료 납입 여력이 줄어들면서 보험 상품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져 해지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향후 경기 변화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중·하위 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보험 계약 유지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부터 물가 상승과 함께 각종 경기 지표가 부진을 보이면서 이러한 예측은 실제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그간 들어 왔던 보험들의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필요해졌다. 보험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꼭 붙들고 있어야 할 상품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37년간 한국 국민의 사망 원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은 ‘암’이다. 이 때문에 암 보험은 실손 보험, 자동차 보험 등과 함께 대부분의 국민이 가입하는 보험으로 자리 잡았다.

암은 시대와 연령에 따라 발병 원인과 시기가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최근의 암 보험은 보장 범위가 점차 세분화되면서 암 관련 세부 특약을 동시에 가입해야만 넓은 범위의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은 2009년 이전에 나온 암 보험은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2009년 이전 암 보험은 한 담보 내에서 보장하는 신체 부위별 암 범위가 넓고 비갱신형 상품이 많은 데다 현재보다 적용 이율(예정 이율)이 높아 납입보험료 대비 보장비율이 크기 때문에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예전 암 보험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가입했다는 장점이 있고 요즘 나오는 상품들은 치료에 필요한 다양한 항목들을 보장한다”며 가입 시점에 따라 보장 내용이나 보험료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메트라이프생명 상품 전문가는 “지금의 암보험 상품은 의료 기술 발달에 따라 신의료 기술 트렌드에 맞게 담보가 다양하고 고객의 건강 상태에 따라 여러 형태의 간편 가입형 상품도 가입할 수 있어 고객 선택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암 보험을 비롯한 보장성 보험은 새로 가입할 때 현재 유지 중인 보험보다 보장의 범위나 크기가 줄어드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과거보다 현재 가입하고자 할 때 보장의 범위가 축소된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장암의 경우 특정 시점 이전에는 일반 암으로 분류됐지만 현재는 소액암으로 따로 분류돼 보장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고금리 상품은 보험에서도 소중해

지난해 보험 해지의 물결 속에서 가장 타격을 입은 보험 중 하나는 ‘저축성 보험’이다. 2022년 은행권이 기준 금리 인상에 따라 수신 금리를 조금씩 인상하면서 저축성 보험 해지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저축성 보험의 경우 과거의 금리가 높았을 때 ‘확정 금리’로 가입한 상품은 그냥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재혁 교보생명 광화문 재무설계센터 웰스매니저는 “고금리 시절 가입했던 상품은 현재의 금리 수준에서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좋은 상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변액 보험은 주식 시장이 부진해 수익률이 낮을 때 해지를 고민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 따라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축성 보험과 함께 연금저축보험도 해지 목록에 상위권에 늘 오르는 보험 리스트다. 하지만 연금저축보험은 중간에 해지할 때 받은 세제 혜택을 토해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신중히 해지를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금저축에 가입할 때 연간 400만원 한도로 세액 공제를 해 주는 혜택을 보고 가입을 결정했을 것이다. 한 매니저는 “기본적인 전제는 55세 이후 연금을 수령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전에 연금저축보험을 해약한다면 15%의 기타소득세가 과세가 돼 받은 세액 공제 이상을 토해내야 한다”며 해약 전 확인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실손보험은 2021년 7월 이후 출시된 4세대로 갈아타느냐, 마느냐가 큰 관심사다. 4세대 실손보험의 최대 강점은 저렴한 보험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4세대 실손보험은 의료 기관 방문이 잦을수록 본인 부담금이 늘어나는 자기 부담 비율이 급여와 비급여(특약) 각각 20%, 30%로 전 세대 상품들보다 높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전문가들은 “병원 방문이 잦지 않은 고객이라면 4세대로 옮겨 가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특히 오는 6월까지 4세대 실손보험으로 옮기면 정부에서 50%의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다만 나이가 젋더라도 만성 질병이 있거나 큰 수술 경력을 보유했거나 병원 방문이 잦은 경우는 기존 실손을 유지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품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보험료를 낼 자금조차 없어 해약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럴 때는 보험료의 납입을 잠깐 멈추는 등 다양한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납입 유예는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납입하지 않고 보험 계약을 유지하는 제도다. 해지 환급금에서 계약 유지에 필요한 위험 보험료, 사업비 등을 차감한다. 보험 가입 금액의 보장 금액을 줄이고 보헙료를 낮춰 보험 계약을 유지하는 ‘감액 제도’도 고려해 볼 만하다. 보험사는 감액된 부분을 해지한 것으로 처리해 해지 환급금을 지급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