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 투자 시장 뉴 트렌드]
‘일학 개미’ 올라탄 일본 증시, 월가의 장밋빛 전망 [투자 시장 뉴 트렌드]
일본 증시가 33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하며 상승 중이다. 월가에서는 1980년대 호황기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에이션과 일본 중앙은행의 초금융 완화 정책, 통화 약세의 혜택이 일본 증시를 끌어올렸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보증이 더해져 전 세계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버핏 회장을 따르는 ‘일학 개미’들이 급증하고 있다.33년 만에 최고치“대만보다는 일본에 투자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5월 6일 버핏 회장은 벅셔해서웨이 주주 총회에서 일본에 대한 투자 의견을 밝혔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1분기까지 대만의 TSMC 지분을 모두 팔아 치우고 2020년부터 투자한 미쓰비시상사·미쓰비시물산·이토추상사·스미모토상사·마루베니 등 일본의 5대 종합 상사 지분을 7.4%로 늘렸다. 5월 11에는 일본을 방문해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주식에 대한 추가 투자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버핏 회장의 일본에 대한 관심은 올해 이슈가 아니다. 그는 경제 블록화에 따라 공급망이 미국과 중국 진영으로 나눠지면 자원을 확보한 기업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 몇 년 전부터 일본 상사주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일학 개미’ 올라탄 일본 증시, 월가의 장밋빛 전망 [투자 시장 뉴 트렌드]
그의 발언이 기름을 부었을까. 올해 들어 지금까지 일본의 벤치마크인 토픽스지수는 14% 가까이 올랐고 일본 우량 기업을 추적하는 닛케이225지수(이하 닛케이지수)는 17% 가까이 뛰었다. 이 두 지수는 같은 기간 동안 8% 상승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유럽 스톡스600지수를 앞질렀다.
거대 헤지펀드 맨 그룹의 자회사인 맨 GLG의 투자 매니저 제프리 애서튼은 “시장에 몸담은 지 33년이 됐지만 지금보다 더 긍정적으로 보였던 적은 없었다”고 일본 주식 시장을 평가했다.
지표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닛케이지수는 5월 30일 도쿄 주식 시장에서 전날보다 94포인트(0.30%) 상승한 31,328로 장을 마감하며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거품 경제 시기인 1990년 7월 이후 약 3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도쿄 증시 1부를 모두 반영한 토픽스 또한 1990년 8월 이후 3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 증시를 끌어올린 주된 원인은 엔화 약세다. 주요국들이 지난해 경기 부양책을 거두고 긴축에 나선 것과 달리 일본은 나 홀로 완화 정책을 유지했다. 외국인들은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강력한 엔화 방어 의지를 발표한 지난해 10월 말부터 일본 증시 순매수 기조를 이어 갔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일본 증시는 엔화 변곡점이 만든 긍정적 환경을 그대로 누린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 약세는 그대로 기업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일본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SMBC닛코증권이 금융사를 제외한 일본 상장 기업 1308곳의 2022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실적을 분석한 결과 상장사들의 매출은 580조3000억 엔으로 1년 사이 14.2%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2% 증가한 39조1000억 엔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했다.

일본 현지 매체를 포함한 주요 외신은 지난해 엔화 가치가 3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수출이 증가했고 특히 종합 상사들은 외화로 벌어들인 금액을 엔화로 환산하면서 순익이 불어났다고 분석했다. 도요타자동차·소니그룹·미쓰비시상사·미쓰이물산 등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가을까지 150엔대를 넘어서는 초엔저가 진행됐을 때는 원자재 급등에 따른 부정적 전망이 강했다”며 “하지만 에너지 가격의 상승이 주춤해지면서 엔저가 수출 기업의 실적을 끌어올리는 선순환으로 돌아섰다”고 풀이했다.

기업이 회복되자 경기도 살아났다. 올해 1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4% 오르며 3개 분기 만에 성장세로 전환됐다. 엔화 약세의 영향으로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최근 확장세로 돌아섰고 미국과 유로존을 앞서고 있다. 김성환 애널리스트는 “지난 몇 년간 일본이 경기 모멘텀 우위를 가진 적이 없었다. 이는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일본 증시를 재평가할 요소가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온 것도 일본 증시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원인이다. 버핏 회장의 일본 투자 확대 발언 외에도 도쿄증권거래소가 주가순자산배율(PBR)이 1배가 안 되는 상장 기업들에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하는 등 주주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점도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PBR은 상장 기업의 보유 자산을 시가 총액으로 나눈 값으로, PBR이 작을수록 회사가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거래소의 대응책 마련 지시 이후 미쓰비시상사·후지쯔·다이닛폰인쇄는 자사주 매입 계획을 내놓았고 미쓰비시중공업은 배당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 증가 등 회사의 주주 환원 정책이 잇따라 발표되자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일본 닛케이는 “2022 회계연도 일본 기업의 자사주 매입 총액은 9조 엔 규모로, 16년 만에 최대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중 간 긴장 관계가 높아지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속도를 내고 있는 점 또한 일본 증시를 끌어올린 배경으로 지목된다. 신동준 KB증권 WM투자전략 본부장은 “미국은 첨단 산업과 군사력에서 중국에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인데 이를 위한 경쟁력의 핵심에는 반도체가 있다”면서 “미국은 대만과 한국 반도체의 의존도가 상당히 높고 중국·대만 간 무력 충돌 긴장감이 고조됨에 따라 일본을 아시아 반도체 기지로 삼는 전략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었다고 평가되던 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매력이 높아지면서 일본의 존재감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경쟁 흐름이 선단 공정 경쟁에서 후공정(패키징) 고도화 경쟁으로 전환되면서 소부장 기술력을 바탕으로 후공정 고도화 경쟁력을 갖춘 일본이 주목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 정부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5월 18일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 수장을 초청해 보조금 지급 등 통큰 지원을 약속하며 자국 유치에 나섰다. 이에 따라 마이크론·삼성전자·인텔·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잇따라 일본 내 투자 또는 제휴 계획을 밝히면서 미·중 대립 속 일본 공급망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장기적 상승세, 시기상조 의견도 월가에서는 일본 증시의 장기적 상승 추세를 전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도쿄증권거래소가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펴는 등 구조적 개혁이 꾸준히 진행돼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가 강화되면 일본 증시에 대규모 자금이 추가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자의 기대에 따라 진전이 이뤄진다면 일본 증시는 중기적으로 장기적인 상승세를 보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골드만삭스 측은 연말까지 토픽스가 2200에 도달하거나 현재 수준에서 3%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애널리스트인 마사시 아쿠츠와 토니 린 또한 “해외에서 현금성 자산이 추가 유입될 여지가 있다”며 일본 지수의 연말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이들은 “올해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과 현금성 자산 유입으로 시장 랠리를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측은 닛케이지수가 3만2500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고 3만3500까지의 ‘불장’도 예상하고 있다. 이들은 “인플레이션 체제가 정착되고 기업들이 두 자릿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달성할 수 있다면 1989년 고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 회복까지 리스크도 남아 있다. 경제 성장의 지속과 기업 이익의 실질적인 개선 여부다. 특히 닛케이지수가 2021년 2월, 2021년 9월 3만 선 안착에 실패한 이후 각각 6개월, 20개월 동안 하락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3만 선 안착 이후 추세적으로 대응해도 늦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남중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상승 폭이 컸던 일본 증시가 과연 상승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 분석해 보면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일본 증시 강세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리스크는 경제 성장의 연속성 확인과 BOJ 통화 정책의 불확실성 해소다. 4월 BOJ의 통화 정책에서 올해 실질 GDP 성장률은 1.4%로 1월(1.7%) 대비 하향 조정하고 소비자물가(신선식품 제외) 상승률은 1.8%로 이전(1.6%)보다 상향 조정했다. 즉 경제 성장의 하방 위험이 아직 남아 있는 만큼 8월 중순 발표되는 2분기 GDP가 하반기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을 낮춰줄 것이란 전망이다.

둘째는 BOJ의 통화 정책 불확실성 해소다. 4월 BOJ 통화정책회의에서는 대규모 금융 완화에 대해 유효성과 부작용 등 다각적인 검증에 착수한다고 밝혀 ‘피벗’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문 애널리스트는 “2분기 GDP 발표 시점인 8월 중순 이후 BOJ 정책 수정이 예상되는 3분기가 돼야 일본 증시가 추세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박스> IT·산업재·소비재…투자 전망도일본 증시 활황에 일학 개미들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5월 들어 5월 29일까지 한국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순매수 금액은 6044만 달러(약 799억원)로 지난 1월 2870만 달러 대비 110% 정도 늘었다. 이 기간 한국의 일본 주식 투자자들이 선택한 종목은 ‘글로벌X일본 반도체 ETF’, ‘아이셰어스 20+미국채 ETF(엔화 헤지)’, ‘넥스트 펀즈 나스닥 100 ETF(환노출)’, ‘아식스’, ‘니덱’, ‘신에츠화학’, ‘미쓰비시’ 순이다.

한국 투자자와는 별개로 닛케이지수 상위 30개 종목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도쿄일렉트론(반도체), 2위는 오리엔탈랜드(도쿄 디즈니랜드)다. 이 밖에 시가 총액 상위주에서는 키엔스(자동화 설비)와 혼다(자동차)가 주목할 만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정보기술(IT)·산업재·필수 소비재·경기 소비재 업종을 주목하고 있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의 경제 활동 정상화와 외국인 유입 수혜가 기대되는 업체로 구성돼 있는 만큼 2~3분기에는 소비재 업체를, 글로벌 수요 회복에 따른 매출 증가가 기대되는 산업재·IT 기업은 3~4분기 선호 업종으로 제시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경기 소비재 업체 중 자동차·부품 업체로 도요타·혼다·브리지스톤·파나소닉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12MF EPS) 전망치가 1개월, 3개월 전 대비 모두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급망 재편에 따라 기술력을 기반으로 높은 시장 지배력을 보유한 산업재와 IT 기업들의 이익 전망치도 상향 조정됐다. 엔화 강세 압력에도 제품 수요 회복에 따른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업체다. 대표적으로는 다이킨공업·화낙·야스카와전기·도쿄일렉트론·오므론 등이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선택한 종합 상사도 빼놓을 수 없는 유망 종목이다. 하인환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 종합 상사들은 2013~2015년부터 비자원 부문에 대한 투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변화의 역사를 거치며 사업 구조를 다각화했고 그것이 안정적인 이익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안정적 이익과 함께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통해 배당도 우상향하는 중이다. 그것이 버핏 회장이 선호하는 이유이고 우리도 참고해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일학 개미’들의 순매수 종목 톱10>
단위 : 달러
순위종목명순매수결제
1GLOBAL X JAPAN SEMICONDUCTOR ETF16522299
2ISHARES 20+ YEAR US TREASURY BOND JPY HEDGED ETF11,066,600
3NEXT FUNDS NASDAQ 100(R) (UNHEDGED) ETF6,692,135
4ASICS CORP2,180,202
5NIDEC CORP1,688,644
6SHIN-ETSU CHEMICAL CO LTD1,638,782
7MITSUBISHI CORP1,534,307
8ROHM CO LTD1,386,649
9ITOCHU CORP1,319,680
10YASKAWA ELECTRIC CORP1,076,063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