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직접 찾아가 ‘눈높이 소통’
권위 내려놓고 셀카 찍고 유튜브에 등장
“요플레 뚜껑 핥아먹나요” SNS 질문에 댓글도
우수 인재 확보하기 위한 포석

[비즈니스 포커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5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갓생 한 끼’에서 MZ세대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전경련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5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갓생 한 끼’에서 MZ세대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전경련 제공
재계 총수들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열공’에 나섰다. 기존엔 그룹 내 2030세대 직원들과의 소통에 그쳤지만 최근엔 대학 캠퍼스를 직접 찾아가고 젊은 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유튜브 영상에도 출연한다.

MZ세대가 기업 문화 전반을 바꾸는 주류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보수적이고 무거운 이미지에서 탈피해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의선, 연대생들과 소맥·햄버거 미팅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5월 11일 송호성 기아 사장 등과 함께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서 이무원 경영대 석좌교수의 ‘조직학습 : 기회와 함정’ 수업을 참관했다.

이날 강의는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의 비전·혁신을 심층 분석한 사례 연구 ‘현대차그룹 : 패스트 팔로어에서 게임체인저로’를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정 회장이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수업 현장을 찾은 것이다.

정 회장과 주요 경영진은 수업이 끝난 후 100여 분간 이어진 현대차그룹의 신사업과 비전, 기업 문화, 도전 과제 등에 대한 학생들의 토론까지 경청했다.

이후 수업 뒤풀이에도 참석해 학생들과 소맥을 겸한 대화도 이어 갔다. 정 회장은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현대차그룹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놀랍고 고맙다”면서 “현대차그룹이 앞으로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소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중시해 온 정 회장은 틈 날 때마다 MZ세대와의 만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갓생 한 끼’ 행사에 참석해 MZ세대들과 햄버거를 함께 먹으며 ‘갓생’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2022년엔 모교인 고려대 학위 수여식에서 새로운 도전을 앞둔 졸업생들에게 영상 축사를 보내 “어떤 실수보다 치명적인 실수는 도전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신입사원들과 구내식당에서 MBTI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HD현대 제공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신입사원들과 구내식당에서 MBTI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HD현대 제공
‘홍보맨’ 변신한 정기선, 유튜브까지 진출

MZ세대 경영인 중에선 정기선 HD현대 사장의 소통 행보가 눈길을 끈다. 1982년생인 정 사장은 HD현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밸런스 게임에 도전해 자신을 “민초(민트초코)파에 성격유형검사(MBTI)는 ‘용의주도한 전략가(INTJ)’”라고 소개했다. 정 사장이 올해 상반기 중 출연한 HD현대 유튜브 영상은 총 3개다. 그중 2개 영상을 통해 신입 사원들과 MBTI를 주제로 격의 없는 소통을 보여줬다.

정 사장은 창립 50주년을 계기로 현대중공업그룹에서 HD현대로 그룹명을 바꾸고 전통 제조업 이미지에서 탈피해 첨단 기술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판교 글로벌연구센터(GRC)를 설립한 뒤 고급 인력 유치를 위해 직원 자녀의 유치원 교육비를 1인당 600만원씩 3년간 지원하는 파격적인 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자사 유튜브 채널인 LS티비에 카메오로 출연해 “이거 다 LS 없인 안 돌아갑니다”라는 대사 한마디를 던져 화제를 모았다. 해당 동영상은 공개된 지 4주 만에 조회 수 137만 회를 돌파했다.

이 대사는 구 회장이 지난 1월 세계 가전 전시회(CES)에서 취재진에게 LS그룹의 CES 참가 여부 질문을 받고 “우리는 여기하고 제품 종류가 좀 다르지 않느냐”면서 “하지만 여기 보면 ‘모든 사물의 전기화(Everything Electricfication)’다. 우리 없으면 여기 다 안 돌아간다”고 답했던 것에서 착안한 대사다.
삼성SDS 직원들이 2022년 8월 30일 서울 신천동 본사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운데)과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SDS 직원들이 2022년 8월 30일 서울 신천동 본사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운데)과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MZ세대 78%, 소통형 리더 ‘좋아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도 MZ세대와의 접점을 넓히는 데 공을 들여 왔다. 이 회장은 2022년 회장 취임 이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MZ세대 직원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셀카를 찍고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등 활발한 소통을 이어 가고 있다.

이 회장의 소통 행보는 총수 이미지(CEO PI)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취임 200일을 맞아 진행된 데이터앤리서치 빅데이터 조사에서 이 회장의 순 호감도는 취임 전 9.61%에서 취임 후 200일 동안 13.91%로 증가했다.

최 회장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젊은 세대와의 소통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 2021년 6월 인스타그램을 개설한 최 회장은 한 팔로워에게 “혹시 회장님도 요플레 뚜껑 핥아 드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자 “네, 그렇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아 그룹 총수답지 않게 친근한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 회장도 취임 이후 고객 가치 창출에 주력하며 각종 정책과 기업 문화 개선에 MZ세대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구 회장은 2019년부터 LG어워즈를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 LG어워즈에서는 MZ세대 고객 심사단을 꾸려 직접 심사에 참여시켰다.

구 회장은 매년 발표하는 신년사 영상에도 MZ세대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실용주의 경영을 추구하는 구 회장은 전 세계 임직원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를 비롯한 전 직원에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취지로 오프라인 시무식을 없애고 다른 그룹들보다 일정을 앞당겨 신년 인사를 디지털 영상으로 대신하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23년 4월 열린 LG어워즈에서 최고상을 받아 환호하는 LG디스플레이팀에게 축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23년 4월 열린 LG어워즈에서 최고상을 받아 환호하는 LG디스플레이팀에게 축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
포스코는 1999년부터 회사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회를 본떠 ‘영보드’ 제도를 만들어 MZ세대와 소통하고 있다. 영보드로 대리급 이하 직원들을 뽑아 최고경영자(CEO)와 직접 소통하며 다양한 부서의 목소리를 전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 영보드는 CEO와 MZ세대 직원들의 가감없는 소통에 가교 역할을 한다.

전경련이 MZ세대 827명을 대상으로 ‘MZ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리더 스타일’을 조사한 결과 ‘소통형’이 77.9%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이들은 최근 주요 그룹 CEO들의 소통 행보에 대해 ‘긍정적(70.2%)’이라고 평가했다. 부정적 평가는 7.9%에 불과했다.

주요 그룹 CEO들이 MZ세대와의 소통을 늘리는 이유는 기업의 경쟁력, 미래 인재 확보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MZ세대는 전체 인구의 3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소비 권력으로 부상했고 주요 기업 직원의 약 60%가 MZ세대로 추산된다.

재계 관계자는 “멀게만 느껴졌던 그룹 총수가 MZ세대와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면서 기업(브랜드) 이미지도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선 MZ세대 사원들의 활약이 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2030세대 직원 6명으로 구성된 CJ제일제당의 사내 벤처는 푸드 업사이클링 사업을 발굴해 깨진 조각쌀과 콩비지가 함유된 ‘익사이클 바삭칩’을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GS25의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갓생기획은 유명 베이커리 ‘노티드’, MZ세대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최고심’ 등과 협업한 트렌디한 상품을 기획해 매출 160억원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