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 혐오 불구하고 강력한 리더십 갖춘 인물·거대 양당과 차별화된 목표와 가치 안 보여
홍영식의 정치판 ‘3 대 3 대 3.’ 한국의 진보·보수·중도층을 나누면 대략 이런 분포를 보인다. 두 거대 정당이 3분의 1씩 차지하고 중도 표심이 3분의 1 정도 된다. 여론 조사를 보면 양당이 이런 고정 지지층을 가지면서 중도층을 누가 더 끌어들이느냐가 관건이다. 이 중도 표심을 보통 ‘스윙 보터(swing voter)’라고 부른다. 선거 때마다 판세는 이 ‘스윙 보터’에 좌우된다.스윙 보터들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지하는 강도가 약하다. 좌·우, 진보·보수라는 이념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그때그때의 정치 상황이나 이슈,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의 행태, 자신들이 관심을 갖는 정책을 어느 정당이 더 잘할 수 있느냐 등에 따라 선택한다.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얘기다. 정치적인 변수에 따라 언제든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지지를 보내 정권을 바꾸거나 재창출하는 동력을 제공해 준다. 조지 레이코프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중도는 어떤 문제에는 보수적이고 어떤 문제에서는 진보적”이라고 한 그대로다.
스윙 보터, 선거판 좌우하지만 제3 정당 성공 못해
특히 양당 체제가 공고하게 형성됐다면 스윙 보터의 선택에 따라 선거판이 좌우될 때가 많다.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것도, 이명박 정권을 출범시킨 것도,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문재인 정권을 만든 것도 중도층의 선택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3당 합당을 한 것도,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한 것도 중도층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런 중도층만을 따로 떼어내 정치 세력화하는 것은 어떨까. 이른바 제3지대론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양강 구도를 헤집고 중도층 결집을 노린 사례는 많다. 대선 때만 되면 제3지대·제3후보가 으레 등장했다. 하지만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정도의 정치 거물을 제외하고 대선에 성공한 예는 없다. 정치 신인은 더욱 그랬다. 기존 양당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기반으로 등장해 중도를 노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는 1992년 대선 때 바람을 몰고 왔지만 16.3% 득표에 그쳐 김영삼 민자당 후보와 김대중 민주당 후보에게 뒤졌다. 박찬종 신정치개혁당 후보도 찻잔 속 미풍에 그쳤다. 1997년 대선 때 신한국당 경선에서 패배하자 탈당해 국민신당을 만들어 출마한 이인제 후보는 19.2%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그의 출마는 결과적으로 보수표를 분산시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39만여 표(1.6%)차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2년 대선 때는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제3후보로 나섰지만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 경선에서 패했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한 제3후보로 떠올랐지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고 전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고 한 뒤 지지율이 하락했고 이듬해 1월 뜻을 접었다. 유한킴벌리 사장을 지낸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도 제3후보로 나섰지만 득표율 5.8%에 머물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제3지대 운만 띄웠다가 중도 포기했다. 안철수 현 국민의힘 의원도 중도를 파고들었다가 실패, 결국 양강 정당을 오갔다. 이들이 만든 정당도 거대 양당 벽을 허무는 데까지 가지는 못했다. 18대 국회에선 창조한국당(3석), 자유선진당(18석), 친박연대(14석)가, 20대 국회에선 국민의당(38석)이 선전했지만 결국 1회성 정당으로 끝났다.
최근에도 제3지대론이 등장하고 있다. 거대 양당의 비호감 정치에 중도층이 늘어나면서다. 중도층 증가는 여론 조사 수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022년 12월 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구체적인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국민의힘 36%, 더불어민주당 33%, 무당층 25%를 기록했다. 무당층은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여 최근 30%에 육박하고 있다. 민주당 돈봉투 파문이 한창이던 4월 셋째 주엔 31%까지 치솟았다. 특히 20~30대의 무당층 증가가 두드러진다. 5월 셋째 주 조사에서 20대는 46%, 30대는 37%가 무당층이었다. 다른 업체 여론 조사에서도 최근 중도층은 증가세를 보였다.
중도층이 증가한 것은 거대 양당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민주당은 돈봉투 사건과 ‘김남국 코인’파문에 연이어 터지면서 중도층이 등을 돌렸다. 한 여론 조사 전문가는 “민주당은 그렇지 않아도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내로남불’ 이미지, 입법 횡포 등 때문에 중도 표심에 상처를 내면서 30% 박스권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덕성 논란이 겹쳐 스윙 보터를 떠나게 했다”고 지적했다. 한 정치 평론가는 “‘개딸’과 같은 강성 이 대표 지지층이 당의 여론을 좌지우지하고 당 지도부도 무기력하게 이들에게 끌려다니면서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때 민주당을 지지했던 중도층을 떠나게 하고 있다”며 “특히 2030세대 이탈은 민주당으로선 뼈아픈 부분”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나 국민의힘도 최고위원들의 발언 파문, 당내 민주주의 실종, 일방 통행식 리더십 등으로 중도층의 표심을 확 끌어당길 만한 강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태섭 전 의원, 수도권 30석 목표 제시했지만…
이 때문에 중도층을 겨냥한 제3지대 신당론도 등장하고 있다. 불을 지핀 사람은 금태섭 전 의원이다. 그는 제3지대 신당 창당을 공식화하고 수도권 30석을 목표로 제시했다. 금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30석은 300석의 10%를 의미한다. 이 정도면 실험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 전 의원을 지지하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국민이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에 염증을 느끼고 있어 제3지대 신당이 만들어지면 상당한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KBS 라디오에 나와 “수도권이 121석인데 국민의힘 17석, 나머지는 전부 민주당에 가 있다. 새로 출발하는 정당이 참신하고 능력 있는 후보자를 낸다면 30석이 넘는 숫자도 당선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다만 “양당 공천에서 탈락되는 사람들을 주워 모아 정당을 만들면 성공할 수 없다”며 새로운 인물로 신당을 꾸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당 체제가 불신받는다고 해서 제3세력이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관건은 중도층을 흡인할 수 있는 걸출한 리더와 그를 떠받치는 참신한 인물들이 있느냐다. 역대 총선에서 정주영·문국현·안철수 등 대선 주자급 쟁쟁한 인물들이 선전한 바 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조차 거대 양당을 깨는 데는 역부족이었고 대선 고지를 오르는 데도 실패했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양당에서 밀려난 인물들로서는 신당의 동력이 되기 힘들다. 특히 양당에서 떨어져 나온 2030세대를 잡기 위해선 기존 정치판 언저리에 있던 기성 정치인들보다 바람을 일으킬 신진 세력 발굴이 중요하다. 기존 정치에 때묻지 않은,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들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금 전 의원이 신당의 운을 띄운 만큼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비주류가 가세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 정도만으로는 양당 체제를 깨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야당에서 밀려난 낙천자 등 정치 낭인들을 주워 담아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거대 양당과는 차별화된 목표와 가치를 제시해야 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뚜렷한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 양당에서 떨어져 나온 2030 세대를 잡기 위해선 이들의 앞길을 진정으로 열어줄 수 있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도 보여야 한다. 선동적인 포퓰리즘이 아니라 대안 세력으로서 강단 있는 비전을 보여줄 때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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