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장, 4단계 절차 거쳐 조병규 후보 낙점…시간 소요·계열사 수장 공백은 숙제

[비즈니스 포커스]
우리금융그룹은 5월 26일 은행장 선임 프로그램 종료 후 임종룡 회장과 은행장 후보자 4명이 간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강신국 기업투자금융부문장, 박완식 우리카드 대표, 임종룡 회장, 조병규 은행장 최종 후보자, 이석태 국내영업부문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우리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은 5월 26일 은행장 선임 프로그램 종료 후 임종룡 회장과 은행장 후보자 4명이 간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강신국 기업투자금융부문장, 박완식 우리카드 대표, 임종룡 회장, 조병규 은행장 최종 후보자, 이석태 국내영업부문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우리금융그룹)
지난 연말부터 대규모 인사를 한 금융권은 ‘관치 논란’과 함께 깜깜이 인사라는 잡음에 시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금융그룹의 새로운 수장이 된 임종룡 회장의 선택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그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장 인사는 향후 우리금융그룹의 색깔과 함께 임 회장의 인사 원칙을 볼 수 있는 첫 무대였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취임한 임 회장은 우리은행장을 선정하는 데 3개월, 날짜로는 64일을 썼다. 이는 우리금융그룹이 ‘공개적 오디션’이라고 명명한 인사 프로그램을 가동했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내부에서는 이를 ‘전에 없던 인사 시스템’이라고 부르고 있다.

회장 선임 때도 오디션은 계속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은행장에 선임된 인물이 조병규 우리금융캐피탈 대표다. 우리금융그룹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자추위)는 ‘지주는 전략, 계열사는 영업’을 중시한다는 그룹 경영 방침에 따라 은행장 선임 기준을 ‘영업력’에 최우선적으로 뒀다고 밝혔다.

조 우리은행장 후보자는 본점기업영업본부 기업지점장(2012년), 대기업심사부장(2014년), 강북영업본부장(2017년)을 거쳐 기업그룹 집행부행장(2022년)에 이르기까지 기업 영업부문에서 경험을 축적하며 능력을 보여줬다. 지점장 초임지였던 상일역지점을 1등 점포로 만들었고 본점 기업영업본부 기업지점장 근무 시 전 은행 성과 평가 기준(KPI) 1위와 2위(2013년, 2014년)를 각각 수상하며 영업 역량을 입증하기도 했다.

공개 오디션을 끝낸 5월 26일 임 회장과 은행장 후보자 4명은 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간담회는 선의의 경쟁을 펼친 후보자에 대한 격려, 차기 은행장에 추천된 후보자에 대한 축하, 화합을 다짐하는 자리로 임 회장이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회장은 “후보자들께서 업무를 병행하는 강행군 속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줘 감사하다”며 “서로 존중하며 공정하게 경쟁해 주신 덕분에 프로그램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여기 계신 네 분 모두는 저와 함께 우리금융의 미래를 만들어 갈 동반자”라며 “오늘 함께 찍은 사진이 우리금융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이자 유산이 될 수 있도록 협력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64일간 이어진 공개 오디션은 총 4단계 절차로 진행됐다. 3월 24일 우리금융은 후보군 롱 리스트 4명을 확정했고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단계 외부 전문가 심층 면접, 2단계 평판 조회, 3단계 업무 역량 평가를 통해 쇼트 리스트 2명을 추려냈고 4단계 심층 면접을 통해 최종 은행장 후보를 확정하는 새로운 경영 승계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러한 인사는 그간 금융권에서 자추위 내부 논의 만으로 은행장이나 최고경영자(CEO)를 결정해 오던 관행을 탈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외부 전문가의 심층 인터뷰를 포함해 동료·부하들의 인터뷰, 사외 이사를 대상으로 한 업무 보고 등이 포함됐다. 실력부터 내·외부 평가까지 모든 것을 살펴보겠다는 의지다.

‘4대 금융지주’ 자존심엔 상처…왜?

이번 인사는 임 회장이 취임 전부터 각오로 내세웠던 우리금융의 새로운 조직 문화 혁신을 위한 것이다.

우리은행은 1998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탄생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라는 이름도 까마득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금융 인사철에는 ‘한일 출신이냐, 상업 출신이냐’는 화두가 여전히 반복됐다.

특히 우리금융의 핵심 계열사인 우리은행장 자리는 더욱 그랬다. 역대 행장들의 이력만 살펴봐도 한일과 상업 출신이 번갈아 가면서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때문일까. 임 회장은 3월 취임 당시 “분열과 반목의 정서를 멈추자”며 새로운 기업 문화를 만들 것을 최우선 과제로 내건 바 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조병규 신임 우리은행장 후보자의 취임은 7월 초로 예정돼 있다. 오디션 자체에도 석 달이 소요됐는데 취임까지 1개월이 더 남았다. 이원덕 전 행장이 3월 초에 이미 사임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는 데만 무려 4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여기에 조병규 후보가 우리금융캐피탈 대표직에 오른 지 두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도 계열사의 경영 공백을 우려하게 한다. 당초 조 후보가 우리금융캐피탈 대표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행장 선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 후보의 행장 낙점에 따라 우리금융캐피탈 역시 새로운 대표를 빨리 선임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편 우리금융은 선정 프로그램을 회장 선임까지 적용할 계획이다. 이정수 우리금융지주 전략부문 상무는 5월 31일 기자 간담회에서 “자추위 내부 논의만으로 은행장과 자회사 CEO를 선발하는 게 금융업계의 관행이었다”며 “앞으로는 경영 승계 프로그램을 그룹의 CEO·은행장 등 비중 있는 리더를 뽑는 과정에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경영 승계 프로그램의 안착을 위해 본부장급 간부부터 차기 리더로 육성할 계획도 밝혔다. 본부장급 2~3년 차를 대상으로는 연간 50시간 이상의 연수도 도입한다. 인재 풀을 확대해 향후 주요 인사 때 활용하겠다는 ‘큰 그림’이다.

우리은행장 선임을 마무리 지은 임 회장은 향후 그룹의 경영 성과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4월 25일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를 100% 자회사로 편입한 통합 메리츠금융지주가 공식 출범했다. 이후 메리츠금융지주의 시가 총액이 9조원을 훌쩍 넘기면서 우리금융지주를 제쳤다. 그간 4대 금융지주 자리를 지켜 온 우리금융지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우리금융은 증권사와 보험사 등 비은행 부문을 키워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그간 인수·합병(M&A) 의사를 꾸준히 밝혀 왔고 매물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5월 26일에는 우리금융지주가 우리종금·우리벤처파트너스와 각각 주식 교환을 공시했다. 기존에 지주가 각각 59%, 52% 보유했던 양사를 완전 자회사로 만든다는 복안이다. 이러한 결정은 그룹의 수익성 제고는 물론 그룹 계열사 간 영업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증권가는 주식 교환이 우리금융지주가 추후 증권이나 보험 등 비은행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