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6월 4일 CNN에 출연해한 발언이다. 지난 4월 브루킹스연구소의 연설에서 ‘디리스킹’을 언급한 이후 두 달여 만이다. ‘디커플링(decoupling)’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으로,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전략 기조의 전환을 공식화하고 있다.
디커플링이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개념이라면 최근 강조하고 있는 디리스킹은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다. 중국과의 공생은 이어 가되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핵심 부분에 대해서는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디리스킹 전략에 대해 “청정 에너지 기술이나 반도체와 같은 핵심적인 산업과 관련해 탄력성 있는 공급망을 확보해 한 국가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디리스킹을 강조하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은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 미·중 관계가 정치·경제·외교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강조하고 있는 디리스킹 전략의 의미와 함께 미국의 대중 전략 전환의 배경을 짚어봤다.
G7에서 공식화, 디리스킹은 어떻게 진화했나
디리스킹이라는 용어는 지난 5월 일본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G7 정상들은 5월 20일 채택한 공동 성명에서 경제 안보를 위한 조치로 “경제적 회복력과 경제 안보를 위한 접근을 다각화, 국가 간 파트너십 심화,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으로 조정한다”고 합의했다.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 간의 경제 안보를 위한 논리와 행동을 설명하며 통용되던 디커플링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탈위험화’ 혹은 ‘위험 완화’로 개념을 바꾼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5월 20일 “디리스킹이 새로운 유행어가 되고 있다”며 “중국에 대한 대응 논의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화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디리스킹이라는 용어를 언급한 사람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다. 그는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대중 관계 전략을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 뒤 지난 3월 유럽정책센터 연설에서 유럽이 구상하는 디리스킹의 개념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중국과 유럽의 관계는 흑백이 아닌 만큼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디커플링은 실행 가능하지도 않고 유럽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중국 측과 개방적이고 솔직한 대화를 통해 외교적 위험을 완화한 후 경제적 위험을 제거하는 2단계 전략으로서의 디리스킹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후 4월 5일부터 7일까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 뒤 4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방중 결과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존스홉킨스대 초청 연설에서 디리스킹을 언급한 것 또한 우연은 아닐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옐런 장관은 “오늘날 미·중 관계는 명백한 긴장 국면에 있다”면서도 “중국의 경제 성장이 미국의 경제적 리더십과 양립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옐런 장관이 언급한 디리스킹 전략은 명확하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두 경제를 완전히 분리(디커플링)하는 것은 세계를 불안정하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건전한 경쟁은 양쪽 모두 공정할 때 지속 가능하다. 따라서 특정 상황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고 불공정한 경제 관행에 대해 중국을 압박하며 다른 동맹국들과 함께 조치를 취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이 4월 27일에 이어 6월 4일 디리스킹을 언급하며 강조한 개념 또한 옐런 장관의 설명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향후 미국 정부 인사들이 중국 측 카운터 파트너와 계속 만날 것이고 바이든 대통령도 언젠가 다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중국과의 대화 채널을 살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는 “경제와 기술 등에서 경쟁하는 것과 그 경쟁이 갈등이나 대립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고 강조했다.
너무 커져버린 중국의 존재감, 디커플링 반대하는 기업 CEO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중국은 냉전이 지속된 20여 년간 미국과 거의 접촉이 없었다. 미국과 중국이 첫 해빙 모드를 맞게 된 것은 1971년 ‘핑퐁 외교’다. 1971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던 미국 선수단 15명이 중국 선수단의 초청으로 일주일간 방중했고 이어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며 미국과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양국 간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상하이 코뮈니케’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핑퐁 외교로 시작된 미·중 관계는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해빙 무드를 맞는다. 당시 중국은 철저하게 ‘경제 부흥’을 우선적인 가치로 내세우던 때였고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글로벌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존재감을 키워 간다. 1989년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6% 수준이었고 이는 1990년대 후반까지 10%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8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미국 등의 국가들이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는 동안에도 중국은 고도 성장을 거듭했고 2010년 중국의 GDP는 미국의 40%에 다다르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된다. 중국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경제적 자신감으로 무장한 시 주석은 미국을 넘어 세계 패권 국가가 되겠다는 야망으로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경제 벨트), 위안화 국제화 등을 시도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급격히 커지며 미국의 견제 또한 이 무렵부터 점차 강화되기 시작한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틀어진 계기는 2018년 중국이 발표한 제조업 부흥책인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구상이다. 중국이 2025년까지 첨단 의료 기기·바이오·로봇·항공우주·전기차·반도체 등 하이테크 제조업 분야에서 기술 자급자족을 달성하고 미국을 제치고 제조업 초강대국으로 발전하겠다는 전략이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선전 포고’로 받아들였다. 미국은 상당수의 중국 수입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물리고 중국 통신 장비 업체인 화웨이를 공격했다. 미국과 중국 무역 전쟁의 시작이다.
미국의 대중 전략에서 디커플링이 본격화된 것도 이 무렵이다. 바이든 대통령 또한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 기조를 이어 갔다. 중국산 배터리 부품 사용에 불이익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일본·대만과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를 통한 공급망 재편에도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미국의 전략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전 세계 각국은 글로벌 공급망과 관련해 ‘세계의 공장’ 중국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 시장’을 갖춘 중국의 존재감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중국 경제가 망가지면 중국의 소비 시장이 망가지고 이는 글로벌 수출 시장에 직격탄이 되는 구조다. 라이엔 EU 집행위원이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못 박고 나선 배경이다.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모두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은 미국 기업의 CEO들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인물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다. 지난 5월 30일 중국을 방문한 그는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 CEO는 방중 기간 동안 “미국과 중국의 이익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샴 쌍둥이처럼 얽혀 있다”며 “테슬라는 디커플링과 단절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 또한 5월 31일 중국을 찾아 첸지닝 상하이시위원회 서기 등과 만났다. 그 역시 “JP모간이 해외 기업이 상하이에 투자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며 “중국과의 무역이 줄기는 하겠지만 디커플링은 아니다”는 방침을 확실히 했다. 팀 쿡 애플 CEO,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 등도 “중국과 관계 단절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연일 내놓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 정부 또한 대중 전략을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급선회했다. 하지만 정책 기조의 변화가 미·중 관계의 안정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도체 등 핵심 분야에서 중국과 연관된 수출 통제나 제재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확고하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양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에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전략 변화에 대한 중국의 반응 또한 냉랭하다. 중국 관영통신 신화는 사설을 통해 “미국이 오래된 포도주를 새 병에 담아 냈을 뿐이다”며 “미국의 대중 전략 목적은 여전히 다른 나라를 강요해 중국을 억제하는 것으로 기존과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우려에도 미국이 중국에 손을 내민 만큼 첨예한 양국 사이의 갈등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커지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으로서도 리오프닝에도 정상화되지 못하는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과 강경 일변도의 대립만 고집할 수 없다”며 “긍정적 시나리오지만 하반기 미·중 갈등이 다소 완화되면서 중국 경제의 정상화가 가시화된다면 중국은 물론 미국 등 글로벌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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