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헤드셋 '비전 프로'로 공간 컴퓨팅 시대 여나
456만원으로 다소 고가로 책정... 메타버스 생태계 확산도 관심사

[이명지의 IT뷰어]
6월 5일 캘리포니아에서 팀 쿡 애플 최고 경영자가 신제품 '비전 프로'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월 5일 캘리포니아에서 팀 쿡 애플 최고 경영자가 신제품 '비전 프로'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애플이 지난 6월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파크에서 연례 세계 개발자 회의(WWDC)를 열었습니다. 이 날, 팀 쿡 애플 최고 경영자가 ‘원 모어 씽(One more thing)’을 외쳤습니다. ‘원 모어 씽’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가장 중요한 신제품을 출시할 때 썼던 말이죠.

그리고 나서 애플은 MR 헤드셋 ‘비전 프로’를 선보였습니다. 애플이 하드웨어 기기를 공개한 것은 2014년 애플워치 이후 9년만입니다. 지난 2007년, 애플은 ‘아이폰’ 발매를 통해 IT 시장, 아니 우리의 삶 자체를 바꿔놨죠. 이후 내놓은 애플워치, 애어팟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때문에 9년만에 애플이 발표하는 신작 기기 ‘비전 프로’에 관심은 집중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공간 컴퓨터라 지칭했습니다. 증강현실(AR) 글래스와 유사한 모양새를 지닌 혼합 현실(MR) 기기입니다. 예전엔 컴퓨터 안, 지금은 스마트폰 안에 존재하는 세계를 현실 공간으로 옮겨놨습니다.

‘비전 프로’는 마치 스키 고글처럼 생겼는데 새로운 운영체제 비전 OS에 이용자가 눈과 손, 음성을 통해 기기를 조작할 수 있도록 카메라와 센서를 갖췄습니다. 아이픈과 아이패드의 앱에 접속할 수 있어 디지털 콘텐츠와 물리적 세계의 경계를 없앴죠.

이번 기기 출시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컴퓨팅을 선도한 애플이 이번엔 공간 컴퓨팅의 시대를 열 것이냐는 거죠.

애플은 이번 기기의 출시를 “아이폰 이후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의 시작”이라 평가했습니다. 컴퓨터나 아이폰을 벗어나 3차원 공간에서 컴퓨팅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막이 올랐다는 거죠.

다만 아이폰만큼의 파급력이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우선 가격입니다. 비전 프로의 출시 가격은 3499달러, 한화로는 약 456만원입니다. 다소 고가로 책정됐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사기에는 부담이 있다는 거죠. 여기에 얼굴에 착용하는 형태로 손에 들 수 있었던 기존 기기들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도 파급력을 의심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비전 프로가 메타버스 생태계 확산에 얼마만큼 도움을 줄 것이냐는 거죠. 펜데믹 이후 메타버스는 향후 IT 시장의 판도를 바꿀 산업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IT 시장의 판도는 챗GPT로 대표되는 챗봇 형태의 생성형 AI가 장악했죠.

그런데 애플의 이번 신제품 출시로 메타버스 생태계가 다시 불타오르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메타버스는 3차원 가상 세계를 구현해 그 안에서 교류 등 사회활동을 이루는 형식이죠. 그간 애플이 출시해 온 제품의 파급력을 고려하면, 이번 비전 프로를 통해 다시 메타버스 시장의 성장을 기대해 볼만 합니다. ‘애플’이라는 이름 만으로도 주목을 받는 게 사실이니깐요.

로이터통신은 애플의 비전프로 출시에 대해 ‘아이폰 이후 가장 위험한 배팅’이라 평가했습니다. 그만큼 비전 프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주가 역시 신제품 공개 다음 날 0.8% 하락했습니다. 아직까지 시장이 애플에게 거는 기대는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이네요.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