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에 ‘미래성장 TF’ 만들어
미래 먹거리 발굴·원롯데 시너지 확대
그룹 내 존재감 커지는 3세 신유열 상무
아르노 LVMH 회장 접견 때도 동행

[비즈니스 포커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총괄회장이 3월 20일 서울 잠실 롯데 에비뉴엘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를 만났다. 사진=연합뉴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총괄회장이 3월 20일 서울 잠실 롯데 에비뉴엘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를 만났다. 사진=연합뉴스
롯데그룹이 한국과 일본에 쌍둥이 조직을 신설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롯데지주는 최근 이훈기 ESG경영혁신실장(사장) 산하에 ‘미래성장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수석급 팀장을 포함해 4명으로 구성된 이 조직은 롯데그룹의 중·장기 비전과 관련한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조직 역량을 강화하는 업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롯데홀딩스 산하에도 같은 TF가 꾸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미래성장TF에 대해 “각종 신사업을 발굴하고 한·일 롯데의 협업과 시너지를 검토하는 성격의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자본과 일본 자본이 공존하는 롯데그룹의 특성상 일본 롯데와의 교류와 협업은 필수로 꼽힌다. 신동빈 회장은 2020년부터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을 겸직하며 ‘원 롯데’로 대표되는 한·일 통합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재계에선 TF를 계기로 신 회장의 원 리더 체제 굳히기가 본격화됐다고 보고 있다.

한·일 양국에 ‘쌍둥이 TF’ 만들어

일각에선 한·일 쌍둥이 TF가 향후 롯데그룹의 승계 작업 준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TF는 ‘신유열 TF’로도 불리고 있다.

신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는 2020년 신격호 창업자의 장례식에서 처음 얼굴을 보였다. 이후 공식 석상에 나서지 않다가 2022년 8월 신 회장의 베트남 출장에 동행하면서 경영 수업이 본격화했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외 주요 사업장을 둘러보며 글로벌 네트워크 쌓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었다.

베트남은 롯데의 새로운 핵심 거점지다. 중국 시장에서 철수한 뒤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는 8월 하노이 최대 규모의 복합 쇼핑몰인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오픈을 앞두고 있고 베트남의 경제 수도 호찌민에는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스마트 시티를 구축하는 ‘투티엠 에코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베트남 출장에서 신 회장은 응우옌 쑤언 푹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 등 현지 고위급 인사들과 만나 신 상무를 직접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글로벌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총괄회장이 방한해 신 회장과의 회동을 위해 롯데백화점 잠실점을 찾았을 때 신 상무도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그룹 내 입지도 빠르게 다지고 있다. 지난 1월 신 회장 주재로 열린 롯데그룹 사장단 회의인 VCM(Value Creation Meeting)에도 처음 참석했다. 5월 호텔롯데 창립 50주년 기념식에도 등장했다. 호텔롯데는 롯데지주와 함께 한국 롯데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핵심 계열사다.

지난해 10월엔 신 회장 없이 롯데쇼핑의 김상현 부회장, 강성현 부사장, 정준호 백화점대표 등과 함께 롯데마트 제타플렉스와 롯데백화점을 방문해 현장 동향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 사진=롯데지주 제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 사진=롯데지주 제공
3세 승계 본격화…국적·지분 확보 등 과제도

신 상무는 1986년생으로 올해 38세다. 신 회장과 동일한 경영 수업 코스를 밟고 있다. 신 회장은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대, 미국 컬럼비아대 MBA를 거쳐 노무라증권 런던지점, 일본 롯데상사를 거쳐 35세 때인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고 한국 롯데그룹에 입성했다. “남 밑에서 고생해 봐야 사회를 배울 수 있다”는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의 생각에 따른 것이다.

신 상무 역시 일본 게이오대, 미국 컬럼비아대 MBA를 거쳐 2008년 노무라증권 싱가포르지점에서 근무했다. 2020년 말 한·일 롯데그룹의 모태인 일본 롯데·롯데홀딩스에 입사했고 그해 한국 롯데케미칼에 입사했다. 2022년 1분기에 상무보에 오른 지 7개월 만에 연말 정기 인사에서 상무로 진급했다.

신 상무는 현재 일본 롯데홀딩스에서는 기획 담당 업무를 맡고 있고 한국 롯데케미칼에서는 상무로 일하면서 한·일 롯데 모두에 발을 담그고 있다. 롯데케미칼 도쿄지사 소속이지만 석유·화학부문뿐만 아니라 유통·호텔·건설 등 다른 사업군의 주요 행사에 참여하며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다만 신 상무는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에 아직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국적과 병역 문제가 남아 있어 승계 실행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롯데 관계자는 “신유열 상무는 미래성장TF에서 어떤 보직도 맡고 있지 않다”며 “승계를 논하기에도 이른 시기”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유통 사업의 부진과 화학 사업의 성장이 맞물려 그룹의 핵심 축이 유통에서 화학으로 기울고 있다. 신 회장은 주력 사업의 새판을 다시 짜기 위해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높이며 새로운 성장 기틀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재계에선 신 회장이 1955년생으로 70세를 바라보고 있는 만큼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 롯데그룹의 2차전지소재·수소·바이오·전기차 충전 등 미래 핵심 사업에 대한 투자를 승계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보는 이유다.

신 회장은 10대 그룹 총수 중 허창수 GS 명예회장(1948년생),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1951년생),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1952년생)에 이어 넷째로 나이가 많다. 이들 총수의 자녀들이 이미 경영 전면에 나서 미래 사업을 통해 경영 능력을 입증하고 있어 신 상무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 미국 시러큐스 공장 전경. 사진=롯데바이오로직스 제공
롯데바이오로직스 미국 시러큐스 공장 전경. 사진=롯데바이오로직스 제공
37조 쏟아부어 ‘잃어버린 5년’ 만회

롯데그룹은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절실한 상황이다. 문제는 그룹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수년간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실적이 부진했고 2023년 자산 순위에서 포스코에 밀려 ‘재계 5위’ 타이틀도 내려놓게 됐다.

2015년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을 시작으로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2016년에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부지를 국가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불매 운동을 겪었고 3조원 이상의 손실을 보고도 사실상 퇴출되다시피 중국 사업을 접어야 했다.

특히 신 회장이 국정 농단 사태로 법정 구속되면서 해외 사업과 인수·합병(M&A), 상장 등을 통한 그룹의 모든 성장 전략이 사실상 멈췄던 2018년부터는 ‘롯데의 잃어버린 5년’으로 평가된다.

2019년에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인 ‘노재팬’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롯데 계열사들이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소비 침체가 덮치며 직격탄을 맞았다. 2022년 말에는 롯데건설발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반을 흔들며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올해를 퀀텀 점프의 해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시장 확대와 사업 경쟁력 강화 기반을 구축해 잃어버린 5년을 만회할 계획이다. 그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바이오·2차전지 소재 등 신사업 분야에서 M&A와 대규모 투자도 본격화했다.

미국 시러큐스에 있는 BMS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을 1억6000만 달러에 인수했고 배터리 소재 동박을 생산하는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2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신 회장은 지난 1월 VCM에서 “올해는 재도약을 위해 지난 몇 년간 준비했던 노력을 증명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롯데그룹은 올해 초 헬스 앤드 웰니스, 모빌리티, 지속 가능성, 뉴라이프 플랫폼 등 4가지 신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2026년까지 4가지 신사업과 화학·식품·인프라 등 핵심 사업군에 37조원을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이 중 신사업에만 무려 40%를 쏟을 예정이다. M&A를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시장 지배력을 빠르게 확대한다는 목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