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능력 잃어, 이 대표 물러나고 비대위 전환을” “기승전 대표 사퇴인가”. 혼돈의 민주당

홍영식의 정치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6월 12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김병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6월 12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김병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위기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계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대선 뒤 이재명 대표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 선거 출마, 대표 출마, 대장동 사태, 이 대표 기소와 기소 시 당직 정지 규정을 담은 당헌 80조 개정 등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상당수 이탈표가 나오자 친명계에서 ‘수박 색출’ 작업을 벌이는 바람에 내홍은 더 깊어졌다. 최근엔 돈봉투, 김남국 사태, 이래경 혁신위원장 지명과 철회, 정청래 의원이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맡는 문제 등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표적 비명계 이원욱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물러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대선·지방 선거 패배 평가했다면 출마 못했을 것”

△민주당 당내 분란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다. 본인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하니 당내 여러 문제들이 불거져도 아무런 얘기를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선과 지방 선거에서 다 지고도 패배 원인에 대한 평가도 못했다. 만약 평가를 했다면 이 대표가 (인천)계양을에 출마할 수 있었겠나. 평가를 했다면 당 대표 경선에 나올 수 있었겠나. 모든 문제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자신의 방탄을 한 게 위기의 원인이다. 본인이 떳떳하지 못하니 계속되는 의원들의 실언에도 제동을 걸지 못하는 것 아닌가. 김남국 코인 사태가 나도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가 대선 패배 이후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보나.
“국회의원에 나서지 말았어야 한다. 계양을에 출마한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정 국회의원이 하고 싶다면 분당에서 출마하는 정면 승부를 했어야 했다. 자신이 시장을 한 정치적 고향에서 나서야지 거기 떨어질 것 같으니 연고도 없는 계양을로 나오는 게 말이 되나.”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한다고 보나.
“혁신위원회가 만들어지면 미뤄 왔던 대선과 지방 선거 평가를 해야 한다. 이 대표 책임에 대한 평가도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을 혁신위원장으로 앉혀야 한다. 그런데 자기 쪽 사람(이래경)을 혁신위원장에 앉히려고 했으니 말이 안 된다.”
△이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보나.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전권을 위임해야 한다.”
△친명계에선 ‘기승전 이재명 책임’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면 누구 책임인가.”
△만약 끝까지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단해서 미리 말할 수는 없다.”
△김남국 사태 대응이 잘못됐다는 비판을 많이 했다.
“단호하게 풀었어야지. 탈당하지 못하게 막으라고 했더니 그다음 날 탈당해 버렸다. 당에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탈당 못하게 했어야 했다. 당이 나서 징계 절차에 들어가는 등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국민의힘은 사법적 문제도 아니고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아 징계했다(잇단 설화 논란을 일으켜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김재원·태영호 전 최고위원). 저쪽 당은 그렇게 하는데 우리 당은 사법적 문제가 터졌음에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자정 능력을 잃었다.”
△혁신위원장 선정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최소한 최고위원회에서 논의했어야 했다. 이런 사람으로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니면 좋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 달라고 했어야지.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면 조금 더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이다.”
△친명-비명 대결 구도가 끝이 안 보인다.
“이 대표가 물러날 때까지 그럴 수밖에 없다. 아니면 이재명이 잘해서 당 지지율을 확 끌어올리든지….”
△이 대표 체제로 내년 총선이 힘들다고 보나.
“지금 167석인데 이걸 사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당 혁신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야 하는 게 우선이다. 이미 얘기한 대로 대선 지방 선거 패배 평가부터 해야 한다.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고 어떻게 쇄신과 혁신이 가능하겠나. 지금 제일 큰 문제는 친명계가 강성 팬덤에 기대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의원들이 입을 닫아 버리고 집단지성은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조국 사태 때도 모두가 다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얘기 못하는 바람에 공정 가치를 뺏겨 버리고 대선 패배의 원인이 된 것이다.”
△심리적 분당 상태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당을 나가야 한다면 이재명이 나가야 한다.”

비명계 이상민 의원도 “이 대표는 리더십을 잃고 신뢰의 위기가 막장까지 갔기 때문에 대표직을 고수한다면 민주당은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라며 “하루빨리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초선 의원은 “2016년부터 4년 동안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승을 거두면서 오만에 빠졌다”며 “지난 대선과 지방 선거에서 패했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는 착각에 빠져 반성의 기회를 잃은 게 민주당 위기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과거 민주당 지도자들은 희생과 헌신의 리더십이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 이 대표는 자기 한 몸 건사하기 위해 당을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 최고 당 지도자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찾기 어려우니 당의 기강이 서겠나”라고 비판했다.
돈봉투, 혁신위원장 낙마에 책임 지는 사람 없어

익명을 요구한 중도파 의원의 진단이다. “책임 정치가 실종된 게 가장 큰 위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표는 혁신위원장 낙마 사태와 관련해 무한 책임을 지는 게 당 대표라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실천해 오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돈봉투, 혁신위원장 낙마 사태 등 고비 때마다 유야무야 넘어가고 누구 하나 책임 지는 사람이 없다. 대선과 지방 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표에 대한 신뢰의 위기는 진작부터 제기됐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다. 도덕성 파문까지 겹쳤지만 검찰 기획 수사 탓으로만 돌리고 내부의 쇄신엔 눈감아 버렸다. 분란이 생길 때 책임을 지는 대신 당 대표 개인을 위해 당헌을 바꾸고 불체포 특권을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으면서 신뢰를 잃고 질서를 망가뜨려 버렸다. 당내 친명·비명계가 1년 넘게 지루하게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있지만 당 중진은 뒷짐만 진 채 누구 하나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자칫 팬덤의 공격 목표가 될까 두려워 당내 문제에 대해 입을 닫아 버리고 있다. 민형배 의원 탈당을 두고 여론은 ‘꼼수’라는 비판이 거셌지만 결과를 위해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 앞에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민주화라는 거대한 이념을 좇던 과거 민주당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친명계 의원들은 비명계가 당의 모든 일에 대해 따져보지고 않고 ‘기승전 이 대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비명계 의원은 “혁신위원장 문제만 해도 발탁 권한은 당 대표에게 있다. 과거에도 혁신위원장 한 사람 정도는 당 대표가 전권을 가지고 인선을 했다. 대표가 어떻게 혁신위원장 과거 발언을 샅샅이 검증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그는 “이 대표가 물러나면 대안은 있나”라며 “사안마다 대표를 흔들고 분란의 늪으로 끌어들인데 대한 책임은 비명계가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 핵심 측근인 김영진 의원은 “모든 당무에 대해 기승전 대표 사퇴를 해야 한다면 대표를 한 달에 한 번 뽑아야 할 것”이라고 했고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은 “대표를 사퇴시키고 다시 전당대회를 열자고 하는 것은 당을 더 큰 위기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및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