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셀프 계산대에서도 팁 요구
코로나19 사태가 팁 더 많이 주는 문화 가속화

[비즈니스 포커스]
미국 내 식당에서 요구하는 팁의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내 식당에서 요구하는 팁의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에서 ‘팁’과 관련해 화제를 모은 사건이 하나 있다. 한 여성이 공항에 있는 마트에서 셀프 계산대를 사용해 샌드위치와 물 한 병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여성은 직원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키오스크를 통해 신용카드로 물건을 결제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에 ‘팁을 얼마나 줄 것이냐’는 안내 문구가 떴다. 당시 그가 구매한 제품의 총가격은 약 23달러였다. 셀프 계산대는 그에게 이 가격의 15%, 18% 또는 20% 팁을 선택해 남길 것을 요청했다.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옵션도 있었지만 이 여성은 ‘셀프 계산대에서 팁을 요구하는 자체가 당황스럽다’며 레딧에 글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에 5000여 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렸다. 반응들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이제 기계에도 팁을 줘야 하나’, ‘직원 도움 없이 셀프로 계산했으면 오히려 물건값을 깎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미국의 과도한 팁 문화를 비판하는 글들이 많았다.

팁 문화를 두고 현재 미국에서는 논쟁이 한창이다. 여기저기에서 팁을 낼 것을 제안하고 있고 요청하는 팁의 비율 또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애플 스토어’ 직원들이 처음으로 노조를 결성한 뒤 팁을 받겠다는 제안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있다.

이를 빗대 ‘팁플레이션(tipflation : 팁+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지금 모두가 팁을 원한다”특히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할 때도 팁을 요구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나타나며 소비자들의 원성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뉴욕에 사는 에린 브라운은 지난해 가을 지역의 한 사과 농장을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사과를 따기로 마음먹었다. 온라인으로 농장 방문 예약을 진행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온라인에서 10%에서 20% 사이의 팁을 남겨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 브라운은 “이 제안을 거절했지만 팁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매체 복스(Vox)가 ‘지금 모두가 팁을 원한다(Everyone wants a tip now)’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소개한 내용이다. 복스는 과거엔 술집이나 식당 등에서만 줬던 팁이 현재는 온라인과 무인 업종 등 사람과의 상호 작용이 없는 모든 서비스 업종에서 요구하기 시작하며 논란이 불거지고 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마이클 린 코넬대 소비자 행동학 교수는 “팁을 지급하는 것이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직업으로 확산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미국의 최저임금 체계와도 연관이 있다. 미국에서 팁 문화가 생긴 것은 남북전쟁 이후부터다.

노예였던 흑인들이 해방돼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팁 문화가 널리 퍼졌다. 이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는 대신 팁에 의존하게 한 것이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앙 정부가 정한 연방 최저임금과 각 주가 정한 주별 최저임금 중 더 높은 것을 적용한다.

현재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약 9365원)인데 노동자의 나이나 거주지·학력 등에 따라 고용주가 지불해야하는 법적 최저 시간급을 변경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팁을 받는 노동자의 연방 최저임금은 2.13달러(약 2750원)에 불과하다.

팁을 받는 노동자와 받지 않는 노동자에게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팁을 받는 노동자는 고용주가 줄 임금의 상당 부분을 손님들의 팁으로 채워 온 것.

하지만 팁 요청이 온라인 구매 등에도 적용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내가 내는 팁이 과연 누구에게 지급되는 것이냐’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린 교수도 이를 꼬집었다. 린 교수는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은 대부분 식당 종업원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주는 팁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태블릿 확산으로 팁 가격도 가팔라져
다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식당 등에서 종업원들이 요구하는 팁의 비율마저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는 나주원 씨는 “과거엔 10달러짜리 음식을 먹으면 10%의 팁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현재는 최소 15%, 많게는 30%까지 팁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팁을 더 많이 주는 문화를 가속화했다고 입을 모은다. 스마트폰을 통해 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애플리케이션 ‘업팁(Uptip)’을 개발한 에릭 플램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소비자들이 관대해졌다”고 분석했다.

많은 자영업자와 종업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소비자들이 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팁을 이전보다 더 많이 주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기본 팁의 비율도 올라가게 됐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태블릿 결제’ 시스템의 확산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엔 팁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식사 후 접시 아래에 지폐를 놓거나 결제할 때 팁이라고 쓰인 유리병에 돈을 넣는 등의 방식이었다. 신용카드로 결제할 경우에도 팁을 얼마를 줄 것인지 영수증에 적어 넣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대부분의 식당이 터치스크린 형태 단말기나 휴대용 태블릿을 사용해 계산과 팁을 동시에 결제하도록 한다. 대면 접촉을 줄이기 위해 태블릿을 도입한 것이다.

나주원 씨는 “종업원이 직접 태블릿을 가져와 결제를 요청하는데 팁을 얼마 줄 것인지 묻고 팁 입력을 마쳐야 결제가 완료되는 방식”이라며 “앞에 종업원이 계속 서 있다 보니 팁을 조금 주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디지털 결제 수단을 운영하는 최대 기업인 스퀘어에 따르면 2022년 3분기에 식당의 팁은 전년 동기 대비 25.3%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미국은 물가 상승으로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팁플레이션까지 더해지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세계의 팁 문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팁 문화는 어떨까. 우선 유럽 국가에서는 팁을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프랑스만 보더라도 팁을 주는 것이 필수는 아니다. 계산서에 이미 15%에 달하는 서비스 차지가 붙기 때문이다. 독일도 15%의 서비스 차지가 붙는다. 따라서 따로 팁을 주고 나올 필요는 없다. 이탈리아와 덴마크 등의 국가는 팁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서비스 차지도 따로 없다. 하지만 한국처럼 훌륭한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되면 팁을 지급하기도 하며 종업원들도 이를 거절하지 않는다.
아시아는 유럽과 다르다. 우선 일본은 팁을 주고받는 일을 당황스럽고 어색한 일로 받아들인다. 팁을 주면 불쾌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식당 직원에게 팁을 주기 위해 테이블에 돈을 놓고 갔는데 직원이 쫓아와 돌려주는 일도 흔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중국도 한때는 팁을 주는 것이 금지돼 있었고 무례한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이드나 바텐더 등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받았다면 소소하게 팁을 주는 것은 괜찮아졌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에는 ‘박시시(baksheesh)’라고 불리는 팁 문화가 있다. 식당 종업원과 택시 운전사, 여행 가이드, 호텔 직원, 문을 열어주는 사람, 화장실 안내원, 보안 요원, 상점 주인 등에게 팁을 주는 것이 흔한 일이다. 물론 팁을 주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미국처럼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으로 강제하지는 않는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