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략]
 인텔 창업자 앤디 그로브, 전략 경영의 틀을 바꾸다[박찬희의 경영 전략]
전략은 전쟁을 위한 계책이다. 공동체와 구성원의 존망이 걸린 일이니 허황된 꾸밈이나 한가한 이론이 낄 자리가 없다. 하지만 한자리 얻어 권세를 휘둘러 보려는 얼치기는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어 그럴듯한 말과 글로(혹은 신기한 연출을 더해) 멍청한 군주의 눈길을 끌고 군대와 나라를 망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황당한 명분론까지 끼어들면 전쟁을 이긴 장군이 ‘사술(詐術)로 나라의 존엄을 더럽혔다’며 책상물림들에게 탄핵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경영 전략을 접하는 사람들은 ‘신출귀몰한 병법의 지혜’를 기대했더니 뻔한 상식을 외우기 좋게 조립해 놓았다며 투덜대기도 한다. 사실 경영학의 개념과 기법이 상식을 체계적으로 다듬은 면이 있고 교과서는 원래 외워서 시험보기 좋게 짜맞춘 것이니 당연한 얘기다.

다만 주먹보다 칼이 낫듯이 현실의 문제를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정의해 푸는 데 도움이 된다면 쓸모가 있다. 그런데 아무 쓸모도 없고 오히려 현실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드는 얼치기 이론들이 난무하니 진짜 문제다.

경영학도 학문 세계의 틀에 맞추다 보니 이론을 위한 이론을 논문으로 만들고 이런 이론만 머리에 가득한 학자들끼리 평가받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일이 대세가 되면 쓸모있는 전략은 뒷전이 되고 뻔한 말과 글을 외운 얼치기들이 경영의 현실을 엉망으로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말에 주목한다. 전쟁 영웅에게 전쟁의 지혜를 구하듯이….걱정과 고민에서 기회를 찾다경영 전략 분야의 발전은 ‘생각하는 경영자’들이 주도해 왔다. 당시 체스터 버나드 벨 사장은 1930년대 통신사 현역 사장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출강했는데 그의 강의 노트를 모은 ‘경영자의 역할’은 경영학의 고전으로 여겨진다. 1950~1960년대 경영 전략 분야의 틀을 잡은 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 작전의 경험을 토대로 했고 그 일원인 로버트 맥나마라는 포드 자동차 사장을 거쳐 미국 국방장관으로 일한 바 있다.

인텔의 실질적 공동 창업자 앤디 그로브 역시 ‘생각하는 경영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헝가리계 유대인 이민자로 어렵게 공부하며 공학 박사까지 마친 그는 컴퓨터 프로세서의 세상을 열고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번영을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공학자로서 상당한 수준의 연구도 달성했지만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직접 가르치고 미디어를 통해서도 세상에 알린 그의 생각들은 경영 전략 분야의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앤디 그로브는 사업의 성공은 언제든 몰락의 씨앗이 될 수 있고 ‘이만하면 됐다’고 마음 놓는 순간 실패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경영자는 언제 어디에서 무슨 변화가 있을지 모를지 몰라 걱정하는 ‘편집증 환자(paranoid)’가 돼야 하고 제품과 기술뿐만 아니라 고객과 판매망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실험적 시도들을 계속해야 한다.

특히 세상의 변화에는 ‘변곡점’에 해당되는 중요한 지점이 있는데 전략과 체제를 변화에 맞춰 가는 것이 리더십이고 이를 통해 기회를 잡고 위협을 막을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경쟁의 압박과 공포는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누구든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다툴 수 있는 ‘건설적 불협화음’이 필요한데, 이는 열린 소통이 받쳐줘야 한다.

앤디 그로브의 ‘팀장 같은’ 사무 공간은 그 상징적인 예다. 실제로 인텔의 주요 회의는 매우 상세한 사업적·기술적 내용으로 진행됐다. 목표는(공허한 숫자가 아니라) 항상 구체적이었고 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아닌 ‘자리의 힘’으로 찍어 누르는 일은 철저히 배척됐다.

새로운 차원의 제품과 기술이 기존의 강자를 무너뜨리는 ‘파괴적 혁신’은 그로브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데 실제로 그 주창자인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은 인텔이 그로브 스타 만들기에 파트너로 띄워진 면이 있다.

리타 맥그래스는 ‘일시적 우위(Transient Advantage)’만 가능한 시대에 특정 산업에 대한 역량에 집착하지 말고 여러 관련 사업들의 연결과 변화를 읽고 다양한 실험적 노력을 하라고 강조했는데 이 역시 그로브의 혁신에 대한 생각을 이어 받은 것이다.
혁신은 사업 활동 전반에서그로브는 2010년 블룸버그에 직접 기고한 글에서 혁신 기업들의 성공이 미국 사회 전반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용 측면의 효과에 주목하면서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과 할 일이 없는 다수의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었다. 그리고 혁신은 사업 활동 전반에서 일어나므로 원가만 고려해 생산 과정을 해외로 이전하는 방식은 혁신의 성과를 제약하고 경제 자체의 확대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런 생각에는 생산과 연구·개발(R&D)의 현장을 직접 맡았던 그의 체험이 반영됐다.

인텔은 정보기술(IT) 생태계 전반의 요구를 담아 변화를 주도해야 하고 관련된 사업 활동 전반을 프로세서에 반영한다. 프로세서 설계와 같은 첨단의 실리콘밸리 사업에만 집중할 때 다수 대중의 삶과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고민한 점은 어려웠던 이민자 체험이 투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그의 주장은 이후 미국의 산업 노동 정책에 대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의 개념으로 정립됐고 최근 바이든 정부의 ‘미국 내 생산’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로봇 사용자에게 세금을 거둬 사회 복지에 쓰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IT의 발전으로 산업의 구조와 생산 방식이 달라지고 직접 생산 원가의 비율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더 높은 수준의 전략적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숫자 맞추기에 급급해 공장을 외국으로 내모는 기업 관료들의 아둔함을 깨우친 것이다.

모바일의 확대와 프로세서업계의 변화로 인텔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지만 1970년대~2000년대 IT 산업의 형성과 발전에서 그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회사를 ‘권세의 수단’으로 삼는 기업 관료를 배격하고 허황된 말이 아닌 기술과 사업의 혁신으로 미래를 만드는 실리콘밸리의 정신 역시 그를 통해 자리 잡았다.

그로브는 인텔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면서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20년 넘게 직접 출강하며 여러 개의 사례들을 출간했다(사실 1960년대에 이미 반도체 기술에 대한 교과서를 쓰고 버클리대에 출강했고 1983년에도 경영 관련 저서를 낸 바 있다).

컴퓨터와 IT 사업의 생생한 현안을 다룬 사례와 수업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그의 베스트셀러 저서에 반영됐는데 최선의 답을 향해 몰아붙이는 그의 경영 스타일이 그대로 이어졌다. 작은 성공에 취해 세상만사 다 안다고 자만하는 경영자나 대충 분위기 맞춘 말과 글로 우겨대는 학자들이 부끄러워 할 일이다.

경쟁의 압박을 혁신의 원동력으로 보고 치열한 생존을 강조한 그의 경영은 ‘착하게 돕고 상생하는’ 중소 벤처 정책의 막연한 이미지와 다르다.

국내 생산 기반을 버리지 않고 일이 없어지는 다수 대중의 삶을 챙기자는 얘기는 중소 벤처는 약자이니 무조건 돕고 살리자는 뜻이 아니고 창업을 테마로 여기저기 나랏돈 나눠 쓰는 지원 정책과는 전혀 다르다. 열린 소통, 일대일 대화는 정확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토론이어야 한다.

회사에서 음악이나 잡담도 금지한 인텔의 정책은 ‘벤처는 다르다’며 회사를 동아리방으로 아는 철없는 생각과 거리가 멀다.

그로브의 성공을 숭배함이 아니라 그의 생각과 실천을 보고 반성의 계기로 삼자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으므로….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