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고진의 반역, 흔들리는 푸틴 그리고 파고드는 젤렌스키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 진격을 멈추고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내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전쟁을 주도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이번 일로 리더십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됐다.

자신이 믿고 쓴 바그너 그룹으로부터 등에 칼을 맞은 데다, 상황 수습도 결과적으론 자신이 부하처럼 대하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손에 맡긴 셈이라 이래저래 면을 구기게 됐다.

특히 이러한 상황을 두고 우크라이나 측의 여론전이 벌어지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는 한치 앞을 알 수 없게 됐다.

24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 CNN 방송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3년간 러시아를 통치한 이래 가장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

CNN은 푸틴이 강철과 같은 권력 장악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몇 달간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군 수뇌부를 공개 비판할 때 푸틴 대통령은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전술의 달인'인 푸틴 대통령이 충성스러운 부하를 내세워 군 수뇌부를 견제하려는 '큰 그림'을 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남부의 주요 군사 거점인 로스토프나도누 군 사령부를 장악하고, 모스크바 200㎞ 앞까지 진격하며 크렘린궁을 위협하면서 이런 시나리오는 무색해졌다.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직후 직접 TV 연설에 나서 프리고진의 반란은 "반역"이라며 강경 대응에 나설 뜻을 밝히면서 상황은 더 명확해졌다.

잠재적 라이벌을 견제하기 위해 엘리트 간 갈등을 용인하고 심지어 조장까지 하면서 궁극적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해 온 그의 통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CNN은 "푸틴이 그동안 유지해 온 독재 체제의 궁극적 장점인 완전한 통제력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엘리트들은 대통령의 흔들리는 정권과 그 정권이 더러운 일을 하기 위해 만든 용병 '프랑켄슈타인' 사이에서 실존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프리고진은 누구
프리고진의 반역, 흔들리는 푸틴 그리고 파고드는 젤렌스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해 바그너 그룹을 적극 활용했다. 바그너 그룹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불리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끌던 ‘용병 기업’이다.

.‘푸틴의 요리사’로 불린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과 같은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절도와 강도, 사기 등 혐의로 교도소를 들락거렸고, 1981년 강도, 폭행 등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9년을 복역했다.

출소이후 가족들과 같이 노점에서 핫도그 장사를 시작한 그는 장사가 잘되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됐다. 이 과정에서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의 식당을 즐겨 찾으면서 가까워졌다.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의 만찬과 크렘린궁에서 열리는 연회를 책임지면서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이 학교 급식 공장을 설립할 수 있도록 막대한 예산지출을 승인하는 등 그를 신임했다.

이후 그는 여론 조작 기관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기관은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때 영향력을 행사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2014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을 설립하면서 프리고진은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바그너 그룹 용병들은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쟁에 투입돼 전투 작전을 펼쳤고, 시리아,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수단 등의 국가의 내전에도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용병들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모습이 온라인상에 드러나기도 했다.

바그너 그룹은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돈바스 지역에 배치되는 등 최전선에 전투를 벌였다. 우크라이나 동부 최대 격전지인 바후무트를 러시아가 장악하는 데도 바그너그룹의 도움이 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프리고진과 러시아 국방부 간 갈등이 심화됐다.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에 대한 러 국방부의 탄약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쇼이구 장관 등 러시아 군 수뇌부를 공개 저격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최대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 철수를 빌미로 러시아 국방부의 추가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에서 내전의 시작을 보고 있다”
프리고진의 반역, 흔들리는 푸틴 그리고 파고드는 젤렌스키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하루만에 끝났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의 최전선에 있던 바그너 그룹의 변화는 전쟁의 향방을 미궁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혼란스러운 러시아의 정세를 틈타 우크라이나 측은 전쟁의 승기를 잡겠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러시아에서 내전의 시작을 보고 있다”는 반응을 내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4일 텔레그램 채널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이 더 길어질수록 러시아에 더 많은 혼란이 생길 것”이라며 “악의 길을 택하는 자는 스스로를 파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푸틴을 향해 “수십 만 명을 전쟁에 내몰았다”고 비판하며 “러시아는 오랫동안 선전을 통해 자신들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감춰왔지만, 지금은 그 어떤 거짓말로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우리가 이야기했던 시나리오에 따라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실제로 내전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작전이 러시아 엘리트를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내부 분열을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이 바그너그룹을 이끄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반역자로 선언하고 특별한 응징을 천명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사실상의 권력 상실”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반격에 더 박차를 가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트위터에 “러시아가 너무 강해서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들은 현 상황을 보라”며 “잘못된 중립성과 확전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모든 무기를 달라”고 촉구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