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정면 돌파 나선 100인의 CEO, 미래 재도약 위한 2023 경영 키워드는[2023 100대 CEO]
절박함이 묻어난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경영 환경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개척은 늘 어려운 도전 과제였다. 그럼에도 이번 만큼은 기업들이 마주하고 있는 위기의 심각성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지금의 세계는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불확실성과 복합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끝나가고 있지만 지난 3년의 시간은 시장 환경과 소비자 행태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위기와 3고 현상(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지속되고 있고 기후 위기와 관련한 경고음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위기는 언제나 존재해 왔지만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도전 정신으로 무장하고 경쟁력을 높여 왔다. 2023년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100인의 CEO들은 올해도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CEO들은 한목소리로 ‘위기 정면 돌파’를 외치고 있다. 비용 절감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이지만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모습이다. 기업의 미래를 위해 그 무엇보다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CEO들도 많다. 팬데믹 이후 기후 위기와 관련한 글로벌 규범이 강화됨에 따라 친환경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시장을 읽는 전략가도, 숫자에 밝은 재무통도, 혁신을 주도하는 기술 전문가도 위기 대응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가 대한민국 대표 CEO 100인의 경영 방정식을 살펴봤다.
CEO 경영 방정식1- 위기에도 미래 위한 ‘공격적 투자’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 경영진에게 당부한 이 한마디는 이후 삼성전자를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출발점이 됐다. 위기의식과 변화를 강조한 삼성전자의 ‘신경영 선언’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반도체 한파’라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한 삼성전자는 위기 극복을 위해 다시 한 번 ‘변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완전히 달라진 ‘뉴 삼성’을 그리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글로벌 CEO들과 회동을 이어 가며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미래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일론 머스트 테슬라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과 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스시 회동을 하는가 하면 모더나의 공동 설립자인 누바 아페얀 회장과는 다섯 차례 이상 온·오프라인을 통해 바이오산업 육성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의 ‘뉴 삼성’을 현실화할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 CEO들 또한 ‘미래 먹거리’인 첨단 미래 산업에 대해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정보기술(IT)로 일상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캄테크(calm tech)’ 비전을 구체화해 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21년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240조원 투자를 밝힌 AI와 로봇이 미래 성장 동력의 핵심이다. 한 부회장은 주주 총회에서 “지난해 출범한 로봇사업팀을 통해 올해부터 걷기 운동 웨어러블 로봇 등 다양한 로봇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지난 4월 신규 투자 협약식을 개최하고 2026년까지 4조1000억원을 들여 충남 아산에 최첨단 IT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라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클라우드 사업에서 연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황성우 삼성SDS 사장 또한 클라우드와 디지털 물류 사업 부문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를 위해 선제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진행 중이다. 향후 10년간 전기차 전환과 소프트 웨어 중심 자동차(SDV), 로보틱스, 첨단항공모빌리티(AAM) 등 미래 사업 추진을 위해 110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특히 최근 모빌리티업계에서 소프트웨어 기반 디지털 전환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SDV로 전환할 방침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체질 개선을 지휘하고 있다면 현장에서 이를 이끌어 가며 주도하는 인물은 장재훈 현대차 사장이다. 정 회장의 신뢰를 받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2021년부터 정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현대차를 이끌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 회장은 올해 상반기 롯데그룹 사장단 회의인 VCM(Value Creation Meeting)에서 지난해 투자한 BMS 미국 시러큐스 공장, 일진머티리얼즈 등 사례를 들었다. 그는 “좋은 기업 인수는 불황 때 하는 것이다. 다가올 위기를 미래 성장의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CEO 경영 방정식 2- 사람이 경쟁력이다, 일하기 좋은 회사 만드는 ‘인사 혁신’
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사람’이다. 특히 위기를 마주했을 때일수록 창의적이고 능력 있는 직원과 협력사 등은 기업에 더욱 큰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를 맞고 있지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멈출 수 없다. 그 혁신을 이끌어 가는 가장 큰 원동력인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는 데 많은 CEO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다. 우수한 인재를 찾아서 영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임직원들과 자주 소통하며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들어 가기 위해 기업 문화 개선에 적극적인 것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구광모 LG 회장은 취임 후 5년간 ‘인재 경영’에 꾸준히 공을 들이고 있다. 나이·성별·출신과 무관하게 글로벌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수혈해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다양한 경험과 경영 노하우를 쌓은 ‘글로벌 전략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 등 잠재력이 큰 해외 시장을 직접 방문해 현지법인 임직원들과 소통을 넓혀 가는 등 현장 경영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또 정철동 LG이노텍 사장은 실시간 온라인 소통 채널인 ‘CEO 라이브’를 통해 주요 경영 현안을 임직원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초격차 역량 확보를 위해 최고 인재 양성을 최우선 경영 과제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CEO다. 4대 성장 엔진(컬처·플랫폼·웰니스·서스테이너빌러티)을 중심으로 최고 인재들이 오고 싶어 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기존 임원 직제를 과감하게 개편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 가고 있다. 최은석 CJ제일제당 대표는 임직원 누구나 아이디어와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문화를 내재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실무자’가 아닌 ‘전문가’로 존중하며 자기 주도적 업무 추진과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인사 혁신에 적극적이다.

HD현대는 최근 들어 ‘가족 친화 기업 문화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및 HD한국조선해양 사장은 ‘사람이 미래 경쟁력’이라는 판단 아래 직원들의 육아 부담을 줄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HD현대의 전 계열사는 초등학교 입학 전 3년간 임직원 자녀의 유치원 교육비를 자녀 1인당 최대 18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또 전 계열사가 유연 근무제를 실시해 직원이 자유롭게 근무 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CEO 경영 방정식 3 – 글로벌 친환경 규제 강화, 생존 키워드가 된 ‘탄소 중립'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트렌드가 된 지는 오래다. 한동안 뜨거웠던 ‘ESG’라는 용어에 대한 관심은 식어 가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에 지속 가능한 친환경 경영 활동은 점점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높아지면서 경제적인 영향력 또한 커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은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고 이는 한국 기업들에 중요한 경영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넷 제로와 같은 친환경 경영에 가장 적극적인 그룹은 SK다. 최태원 SK 회장은 역동적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며 기존 정보통신, 에너지·화학 중심에서 반도체·소재, 바이오, 그린 에너지, 디지털 등 4개 사업 영역으로 대전환에 성공했다는 평이다. 최 회장의 지휘 아래 건설회사였던 SK에코플랜트는 3년 전부터 아파트·플랜트 사업 대신 자원 재활용·폐기물 사업에 뛰어들며 그린 사업으로 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 중이다. 또 SK실트론·SK머티리얼즈 등은 반도체 첨단 소재 기업으로, SKC는 2차전지 소재를 주력으로 하는 글로벌 유수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기존 정유·화학·윤활유 사업 중심에서 ‘그린 에너지·소재 회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설정하고 그린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가속화해 나가고 있다. 서석원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사장은 원유·석유 제품 전문 트레이딩 기업의 본업은 물론 탄소 감축 전략을 바탕으로 한 그린 비즈니스 모델 확립을 주도하고 있다.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은 주요 사업에서 온실가스를 저감하고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활동을 넘어 자체 기술 역량 강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다양한 기업·기관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수소, 폐플라스틱 순환 경제, 바이오 사업 등 저탄소 신사업 가속화로 자원 효율화와 탄소 저감 순환 경제를 구현해 나간다는 포부다.

김경배 HMM 사장은 탄소 중립을 위한 친환경 사업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