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월가의 ‘제2 엔비디아’ 찾기가 계속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는 올 상반기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 공포를 이겨내고 증시 상승을 이끈 ‘AI 대장주’다. 엔비디아는 AI 연산에 사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의 90% 이상을 공급한다. 5월 31일 뉴욕 증시에서 다섯째로 시가 총액 1조 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올해만 주가 상승률이 189.46%에 이른다.

현재 1조 달러를 넘어선 몸값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애플·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다. 이들 기업들은 ‘시대를 주도하는 신기술과 혁신’의 상징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기술을 확산하며 ‘아이폰 모멘트’를 만들어 낸 애플이 대표적이다.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시총 1조 달러를 달성한 지금 이 시기를 ‘AI 열풍’의 시작으로 보는 이유다.

아이폰 모멘트에 애플뿐만 아니라 수많은 혁신 기업들이 성장의 과실을 누렸듯이 AI 기술이 변곡점을 맞은 지금 엔비디아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이 AI 열풍의 수혜를 누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제2의 엔비디아’로 예상되며 높은 관심을 얻고 있는 기업들이 상당수다. AI 수혜주로 거론되는 대표 주자 톱3를 꼽아 봤다.
AI 핵심 반도체 ‘DPU’ 꽉 잡고 있는 마벨테크놀로지
‘제2의 엔비디아’로 시장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마벨테크놀로지(Marvell Technology)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 6월 마벨테크놀로지의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했고 CNBC와 이코노미스트 등 해외 경제 전문 매체들 또한 ‘넥스트 엔비디아’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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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벨테크놀로지는 엔비디아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다만 엔비디아가 GPU를 중심으로 한다면 마벨은 데이터센터에 탑재된 무수한 반도체들의 데이터 전송을 원활히 하는 칩를 만든다. 데이터 프로세싱 유닛(DPU)이다. 현재 데이터센터·자동차·통신·엔터프라이즈 네트워킹·소비자 등 빠르게 성장하는 여러 시장에 칩을 공급하고 있다.

마벨테크놀로지가 생산하고 있는 DPU는 데이터센터 구동과 AI 처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반도체다. 데이터가 원활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처리장치(CPU)의 부담을 덜어줘 전체 서버 전력 소비도 줄여 준다. 현재 AI와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율 등으로 인한 환경 오염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탄소 중립 중 친환경 규제가 강화될수록 DPU의 중요성 또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마벨테크놀로지는 5월 26일 시장의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이후 주가가 32% 이상 급등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초만 해도 30달러 선이었던 마벨테크놀로지는 7월 3일 기준 61달러 선에 거래됐다.

마벨테크놀로지가 발표한 1분기 매출은 13억2000만 달러, 주당순이익(EPS)은 31센트다. 이는 시장 전망치(매출 13억 달러, EPS 29센트)를 웃도는 실적이다. 매튜 머피 마벨테크놀로지 최고경영자(CEO)는 “AI가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며 “내년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AI 시장 커질수록 주목받는 패키징 기술의 절대 강자 ‘베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5월 29일 ‘AI 골드러시’에서 수혜를 볼 만한 기업들을 소개하며 네덜란드의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장비 제조 기업인 베시(BE Semiconductor Industries)를 예로 들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또한 제2의 엔비디아로 베시를 꼽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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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반도체 분야의 숨은 강국이다. 베시의 시가 총액은 90억 달러 수준이다. 네덜란드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ASML의 시가 총액 2880억 달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매출은 7억7400만 달러로, 반도체업계의 다른 회사들과 비교하면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의 성장성만큼은 그 어느 기업보다 높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베시는 반도체·전자 산업을 위한 반도체 장비를 제조·유통하는 업체다. 사실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 사업은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칩을 서로 결합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를 만드는 이 회사의 기술은 반도체업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그 무엇보다 베시는 이 분야의 ‘퍼스트 무버’로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베시에서 눈여겨볼 것은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칩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크기를 줄이는 첨단 패키징의 한 형태다. 반도체 제품을 조립할 때 칩의 패드와 외부 단자를 도선으로 연결해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칩셋을 혼합하는 것을 말한다. 칩을 연결하기 위해 범프가 필요하지 않고 그 대신 작은 구리 대 구리 연결로 대체해 공간을 줄일 수 있다.

그 결과 상호 연결성이 뛰어나고 메모리 밀도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확장된 대역폭과 더 많은 전력, 향상된 속도와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점점 더 작은 칩 팩에 점점 더 많은 기능을 담을 수 있는 ‘무어의 법칙’의 전형이다. AI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차세대 후공정 공법인 하이브리드 본딩이 업계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회사는 하이드리드 본딩 시장의 4분의 3을 장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AI 기술 확대에 필수 인프라, 데이터센터 임대 ‘에퀴닉스’
건물 내부에 깜빡이는 기계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하이엔드 서버, 네트워킹 장비, 데이터 스토리지 시스템들이 형형색색의 전선들로 얽히고설켜 있다. 머리 위에서는 에어컨 장치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고 엄청난 소음이 건물 안을 가득 채운다.
엔비디아발 AI 열풍 “이제 시작”…차세대 AI 대표 주자 삼인방은?
지난 5월 ‘AI 골드 러시’에 대한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샌호세에 자리한 ‘에퀴닉스’의 데이터센터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AI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서버나 연산 설비가 필수다. 머신 러닝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클라우드가 필수적인데 이 클라우드를 물리적으로 저장하는 것이 데이터센터인 셈이다.

AI 시대에 맞춰 인프라스트럭처의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데이터센터와 관련한 기업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이들의 데이터센터 임대가 급증하며 관련 시장 또한 급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22년 하반기 기준 데이터센터의 공실률은 3%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임대 산업의 대표 주자는 바로 데이터센터 임대를 전문으로 하는 ‘에퀴닉스(Equinix)’다.

에퀴닉스는 70개 대도시와 30개국에 250개의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최고의 글로벌 통신 사업자이자 클라우드 중립 데이터센터 운영 업체다. 데이터센터 부문 글로벌 임대 업체 중 시장점유율 약 20%를 차지하는 최대 기업이다. 미국에서는 넷플릭스·나스닥·엔비디아 등이 에퀴닉스의 데이터센터를 이용한다. 한국에서도 2019년 서울 마포 상암동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했고 KT·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등이 주요 고객사다.

5월 3일 발표한 1분기 실적 또한 데이터센터 사업 분야의 빠른 성장세를 보여준다. 올해 1분기 기준 주당순이익(EPS)은 2.77달러, 매출은 20억 달러를 기록해 각각 직전 분기보다 99%, 7% 증가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