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도’에 이어 ‘헌터부츠·락포트’까지 파산
어중간한 위치, 포트폴리오 부족 등이 문제로
구조 조정 성공해도 소비자 선택 받을지는 미지수

[case study, 실패에서 배운다]
최근 글로벌 신발 브랜드들이 파산하고 있다. (사진=헌터부츠)
최근 글로벌 신발 브랜드들이 파산하고 있다. (사진=헌터부츠)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신발 브랜드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 미국 신발 회사 락포트와 영국 부츠 제조사 헌터부츠는 최근 한 달 새 연달아 파산 소식을 알렸다. 캐나다의 신발 회사 알도는 2020년 파산 보호 신청 이후 지난 2년간 구조 조정을 진행했다.

이들 브랜드는 신발 시장 내 어중간한 위치로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또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중심의 신규 고객을 유치하지 못한 것도 파산의 원인이 됐다. 여기에 포트폴리오 부족,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 등도 영향을 미쳤다. 경영난 겪는 신발 브랜드들‘편안한 착용감’을 내세우며 규모를 키운 미국 신발 회사 락포트가 경영난을 겪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락포트는 지난 6월 미국 델라웨어 주 파산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른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락포트가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락포트의 부채는 1억 달러(약 1300억원) 수준이고 상위 5개 채권자에 4700만 달러(약 614억원)를 빚진 상태다. 전체 채무액 가운데 60%는 당장 오는 8월까지 납부해야 한다.

미국 파산법 11조는 한국의 법정 관리와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부채 상환 여력이 없는 기업의 채무 이행을 한시적으로 중단하고 자산 매각을 통해 기업을 정상화하는 절차다.

2018년 1월부터 락포트를 이끌어 온 그레그 리밧 최고경영자(CEO)는 사임했다. 다만 마르케세 최고수익책임자(CRO)의 회사 운영을 돕기 위한 자문에는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락포트는 지난 2018년에도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사진=락포트)
락포트는 지난 2018년에도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사진=락포트)
락포트의 파산 신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5월에도 델라웨어 주 윌밍턴 파산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2015년 락포트의 모회사가 아디다스그룹에서 뉴발란스·버크셔파트너스로 바뀌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이 락포트에 전가됐다. 이로 인해 쌓인 부채는 2억8700만 달러(약 3000억원)에 달했고 락포트는 사모펀드인 찰스뱅크캐피털로 넘어가게 됐다.

현재 락포트는 60개 이상의 국가에 1100개 이상의 판매 지점을 보유하고 있고 파트너 회사들은 30개 이상이다. 구조 조정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매장이 문을 닫을 것으로 보인다.

파산 신청을 낸 것은 락포트뿐만이 아니다. 영국 왕실에도 제품을 납품해 온 부츠 제조사 헌터부츠는 지난 6월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파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1856년 설립 이후 170년간 사업을 이어 왔지만 최근 들어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헌터부츠는 2017년(2018년 제외)부터 매년 적자다. 2017년 당시 헌터부츠는 650만 파운드(약 10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 520만 파운드(약 87억원)의 이익을 냈지만 이듬해 적자 규모가 1360만 파운드(약 230억원)까지 늘어났다. 2020년과 2021년에도 각각 1390만 파운드(약 233억원), 520만 파운드(약 87억원)의 적자를 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헌터부츠의 부채는 1억1280만 파운드(약 1890억원)에 달한다.

헌터부츠의 소유권은 미국 회사로 넘어갔다. 6월 3일 미국 브랜드 매니지먼트 전문 기업 어센틱브랜즈그룹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헌터부츠의 지식재산권(IP)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어센틱은 “헌터의 강력한 DNA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계속 성장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수 금액은 1억 파운드(약 1600억원)로 관측된다.

캐나다의 신발 브랜드 ‘알도’는 2020년 5월 캐나다 회사채권정리법(CCAA)에 따라 퀘벡 법원에 파산 신청서를 제출했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매출이 급감하며 경영난이 심화돼 사업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알도는 매장 직원 약 6000명과 본사 직원 50%를 해고했다.

알도는 2020년 9월 버밍엄 기반의 투자회사 부셸인베스트먼트그룹에 인수됐고 지난 2년간 구조 조정을 진행했다. 알도는 지난해 7월 “2020년 5월 시작된 구조 조정 절차를 이제 종료한다”며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알도는 2년간의 구조조정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사진=알도)
알도는 2년간의 구조조정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사진=알도)
락포트·헌터·알도, 왜 파산했나 이들 브랜드가 실패한 이유는 어중간한 포지션, 포트폴리오 부족,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 등이 꼽힌다.

우선 락포트와 알도의 파산에는 공통점이 있다. 신발 시장에서 충성도 높은 팬을 확보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위치’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기업과의 차별화가 어렵고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락포트는 1930년 ‘허버드 슈 컴퍼니’로 처음 설립됐지만 규제 강화로 1970년 도산했다. 창업자의 아들인 솔 캐츠가 1972년 다시 재설립하며 지금의 ‘락포트’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락포트는 33년 전 한 마라톤에서 이름을 알리며 사업 확장의 기회를 얻었다. 1990년 락포트 당시 부사장이던 토니 포스트는 뉴욕 마라톤 대회에 ‘락포트 드레스포츠 정장화’를 신고 참여해 완주했다. 락포트는 ‘마라톤도 뛸 수 있는 구두’라는 호평을 받았고 이후 ‘가성비 좋고 착화감도 좋은 기능성 신발’이라는 마케팅을 앞세워 영향력을 확대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며 ‘구두도, 운동화도 아닌’ 모호한 디자인으로 젊은층의 신규 고객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락포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캐주얼 상품 확대, 젊은 소비자 유치 등의 비즈니스 전략을 세웠지만 통하지 않았다. 외신에 따르면 락포트의 매출은 2019년 2억7500만 달러(약 3500억원)에서 2020년 41.4% 감소한 1억6200만 달러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2억3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수익성은 악화됐다. 락포트는 최근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줄어든 수익 수준에 비용을 맞출 수 없었다”고 파산 보호 신청 이유를 밝혔다.

알도도 마찬가지다. 알도는 ‘비즈니스 캐주얼 신발’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비즈니스 캐주얼은 구두와 같은 정장화보다 편하지만 격식을 갖출 때 신을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연한 근무 환경이 조성되면서 알도의 전략도 타격을 받았다.

알도는 캐주얼화되는 신발 시장에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섰지만 실패했다. 실제 데이비드 벤사던 알도 최고경영자(CEO)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소비자들은 어디에서나 운동화를 신고 있다”며 “이런 변화가 신발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캐주얼 복장을 수용하면서 우리는 이제 운동복 제조사와도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터부츠의 파산은 ‘포트폴리오 부족’의 영향이다. 헌터부츠는 장화(레인부츠) 외에도 운동화와 가방 등을 판매하지만 매출 비율은 높지 않다. 장화의 판매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유럽과 미국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판매가 줄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헌터부츠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 공급망 문제에 시달렸는데 최근 들어 기온이 높아지면서 수요가 줄어 매출이 감소했다”고 전했다.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도 파산으로 이어진다. 락포트가 최근 경영난이 심화한 이유 중 하나다. 미국 지역 매체 보스턴글로브는 “락포트는 지난해 상반기에 매출 증가를 예상하고 가을·겨울 시즌 재고를 크게 늘렸지만 현실은 달랐다”며 “도매 고객들이 주문을 취소하거나 주문량을 줄였다. 결국 상당한 초과 재고를 보유하게 되면서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